민수씨와 국가의 품격
민수씨와 국가의 품격
  • 김형규 기자
  • 승인 2014.09.15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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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도 눈물이 있다”는 말이 있다. 만인 앞에 평등하고 엄격해야 할 법일지라도 이를 만들고 적용하는 것은 사람이다. 그래서 법에는 인정이 깃들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프랑스의 소설가 빅토르 위고가 1862년 발표한 장편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은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쳤다. 그 죄로 그는 19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누구도 이것이 정의이고 바른 법집행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법에 눈물이 사라지면 정의라는 이름 아래 잔혹하고도 비인간적인 일들이 벌어진다.

법무부, 품행단정하지 않다며
네팔 난민 민수 씨 귀화 불허

법에 기대 소송했지만 패소
외국인에 매몰찬 우리 민낯


그래서 법조인들에겐 법에 대한 지식 못지않게 인간으로서의 양심이 필요하다. 소설 속 장발장이 살았던 당시의 법조인들이 최소한의 양심을 간직했다면 이런 황당한 판결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법조계를 돌아보면 장발장 당시의 상황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약자에겐 고압적이고 강자에겐 관대한 고질적인 병폐가 심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법무부로부터 한국인 국적취득을 불허당한 네팔 출신 티베트 난민 민수씨가 있다. 민수씨는 법무부의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냈다. 그러나 패소했다. 민수씨는 19년째 한국에 살고 있다. 한국 여성과 결혼해 세 아이를 두었고 몸이 불편한 장모까지 돌보고 있는 다섯 식구의 가장이다. 그는 2013년 귀화신청을 해 서류심사와 면접심사를 통과했지만 올 3월 법무부로부터 귀화가 불허됐다. 품행이 단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국적법 5조의 귀화요건에 품행이 단정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민수씨는 500만원의 벌금형을 받은 전력이 있다. 이것이 걸림돌이 됐다. 그러나 품행단정이라는 조항은 기준이 모호하다. 자의적으로 판단해 적용할 가능성이 농후해 2012년 국가인권위는 내용을 구체화하라는 권고를 내린바 있다. 그런데도 법무부는 이를 개선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법을 적용했다.

벌금은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민수씨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2011년 명동재개발 과정에서 자신의 식당이 강제철거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크레인을 막아섰다. 결국 그 혐의로 벌금형이 선고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판결문에 “이 사건 범죄는 방어적이어서 반사회적이거나 파렴치한 것이 아니므로 비난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판시했다. 그런데도 법무부는 품행이 단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귀화를 불허했고 서울행정법원 또한 법무부의 조치가 타당하다고 판결한 것이다. 법무부는 200만원 벌금형을 받은 외국인은 강제퇴거 대상자로 분류해 추방 여부를 판단한다고 한다. 한국인 아이 셋과 아내를 둔 가장으로서 다섯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한 몸부림에 대한 대가로는 너무나 가혹한 처벌이다.

요즘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판결로 나라가 시끄럽다. 사법부는 국정원에 대해 정치개입은 인정하면서도 선거개입은 없었다고 판결했다. 술을 마시고 운전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한 연예인의 궤변이 떠오른다. 지금의 사법부가 장발장 당시의 사법부와 무엇이 다른지 납득할 수 없다.

▲ 김형규 부장
국내 거주 외국인은 현재 20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우리 국민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민수씨 사례는 외국인에 대해 몰인정한 우리의 시선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정부에서는 ‘국격’이라는 말을 자주한다. 풀어쓰면 나라의 품격 정도가 될 것인데 귀화조건에 품행단정을 단서조항으로 단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민수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민수씨의 사례가 이 나라의 품격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지 않을까 싶다.

김형규 kimh@beopbo.com


[1261호 / 2014년 9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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