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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뿌리 민주주의와 지역당

우리나라 지방선거에 선거는 있되 지방은 없다. 시민들은 지역정치의 구경꾼에 머물러있다. 시민들의 삶과 관련된 정책결정은 관료와 지방정치인, 지역토호들의 기득권연합이 독점하고 있다. 지역 기득권연합은 주민들의 삶의 질보다는 건설이익 투기이익 등에 더 관심이 많다. 주민들의 뜻보다는 중앙정치인의 의사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과연 지역당은 기득권연합이 좌지우지하는 지역정치를 풀뿌리 민주주의로 바꿔나갈 수 있을까.

21세기는 분권형 사회이다. 앨빈 토플러는 지방분권을 미래의 정치질서라 보고 있다. ‘위험사회’의 저자 울리히 벡은 시민사회의 자율적 조직이 밑으로부터 움직여 자치정책과 지역을 재구성하는 지역중심의 자치와 분권을 내세우고 있다. 정당, 노동조합, 의회와 같은 고전적 정치체제는 이미 소멸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자치와 분권에 초점을 맞추는 건 국가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신축적인 지역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모든 지역의 잠재력을 극대화해야 지속적 국가발전이 가능하다. 그럴려면 지역문제를 지역이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지방정치인들은 자신을 뽑아준 지역(주민)의 이익보다 소속정당의 이익과 당론이 먼저다. 아직 지역정치, 지방정치라는 개념조차 낯설다. 지역을 서울이나 중앙의 변두리 또는 하부 기관으로 보는 낡은 인식,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한 법과 제도, 행정관행들 때문이다.

지역(local)이라는 개념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지역은 변두리나 하위구조가 아니다. 지역주민의 삶이 구체적으로 이뤄지는 삶의 현장이다. 급변하는 대내외 정세 속에서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글로컬(glocal) 정치단위다. 지역정치는 중앙정치의 축소판이 아니라 지역의 일을 지역에서 해결하는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생활정치이다. 이렇게 지역의 실정과 지역주민의 요구를 바탕으로 한 생활정치의 주체가 바로 지역당이다.
생활정치는 선거로 선출된 대표에게 자신의 생활이나 지역의 운명을 전부 맡기지 않고 시민들이 참여해 스스로 결정하자는 것이다. 직업정치가만 했던 정치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시민 스스로가 살고 있는 지역에 책임을 갖고 자치를 해나가자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관심을 갖지 않아 우선순위에서 밀려나있던 생활과제인 쓰레기, 먹거리의 안전, 노인복지, 어린이, 환경 문제 등에 대해 의회에서 따지고 압력을 가하면 지방정부도 정책에 반영할 수밖에 없다.

지역당은 지역주의 정당과 다르다. 지역주의 정당은 유권자들에 대한 지역주의적 호소와 동원에 기초한 지역패권주의 정당이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아니라 풀뿌리 보수주의에 기반한 지역주의 정당들은 지방선거 때는 지역의제를 발굴하고 지역에 근거를 둔 후보를 찾지만 평소에는 중앙정치에 매몰되어 왔다. 이와 달리 지역당은 특정지역의 지방정치 진출을 목표로 한다. 지역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직접 묻고 그 의견에 따라 정치적 의사결정을 내린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역당이 가능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특정지역에만 존재하는 정당이 가능하도록 법을 고쳐야 한다. 아울러 중앙당을 서울에 두도록 한 조항을 바꿔 정당이 원하는 지역에 둘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컨대 제주 강정에 둘 수도 있고, 경남 밀양에 둘 수도 있어야 한다. 지역정치조직(유권자단체나 지역정당 등 지역결사체)도 인정하고, 이들이 후보를 추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특정지역의 지방정치만을 겨냥한 정치조직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다양한 정치세력간의 경쟁을 통해 중앙정치가 지방정치를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구조를 깨뜨리면 얼마나 좋을까. 

손혁재 수원시정연구원 원장 nurisonh@gmail.com

[1261호 / 2014년 9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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