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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광장을 병들게 하는가

세월호 참사가 시나브로 잊혀가고 있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유가족들이 애면글면 농성을 이어가고 있지만, 그들이 요구하는 특별법에 대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내내 모르쇠다. 게다가 ‘세월호 단식’에 반대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이른바 ‘보수’를 자처하는 ‘일베’ 회원들이 피자와 치킨으로 ‘폭식투쟁’을 벌이는 생게망게한 일이 벌어졌다.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이다. 대다수 신문과 방송은 ‘갈라진 광장’이니 ‘좌우로 분열된 광장’이니 ‘증오로 갇힌 광장’ 따위로 광장이 제 구실을 못한다는 보도와 논평을 쏟아냈다. 얼핏 보면 객관적 접근처럼 보인다.

하지만 불교의 중도는 중간을 뜻하지 않는다. 냉철하게 짚어보자. 과연 2014년 9월 광화문 광장의 풍경을 ‘극단과 극단의 충돌’이니 ‘분열’ 따위로 설명해도 좋을까. 아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주장은 결코 극단적인 게 아니다. 유가족들이 처음부터 농성에 들어간 것도 아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과정에서 정부에 분노를 느낀 유족들이 특별법 제정에서 ‘정부의 입김’을 배제하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단식투쟁하는 사람들 앞에서 피자와 치킨을 먹어대는 살풍경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천박하다. 지식인들 가운데 더러는 ‘단식은 고상하고 밥 먹는 건 천박한가’라며 일베를 두남두지만 논점이탈이다. 아무도 밥 먹는 것을 천박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밥을 중시하기에 ‘단식 항의’에 나선 게 아닌가.

그런데 단식하는 사람들 앞에 몰려와서 냄새가 자극적인 피자와 치킨을 먹어댄다면, 이는 몰상식한 행위일 수밖에 없다. 그들을 비호하는 지식인들 가운데는 그 또한 집회와 시위의 자유라고 역설한다. 물론, 누구나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있다. 하지만 그 자유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존중할 때 누릴 수 있다. 세월호와 관련해 광화문에서 단식투쟁을 하는 사람들은 집회와 시위의 권리를 지닌다. 하지만 그곳에 와서 피자와 치킨 따위를 먹어대는 것은 단식하는 사람들의 집회와 시위를 노골적이고 의도적으로 방해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만일 그들 또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주장하려면, 다른 곳에서 하면 된다. 이를테면 시청광장에서 그들의 주장을 시민들과 나누면 될 일이다. 광화문 광장이 보이지 않는 시청광장에서 누가 피자를 먹든 치킨을 먹든 상관한 일이 아니다.

따라서 세월호 유가족이나 관련단체들의 단식투쟁과 그들 앞에서 치킨과 피자를 먹어대는 폭식투쟁을 같은 선상에서 견주며 ‘갈라진 광장’이나 ‘좌우 분열’이니 ‘극단과 극단의 충돌’이니 논평하는 것은 명토박아두거니와 중도는 물론, 객관적 보도가 결코 아니다. 사실 왜곡일뿐더러 폭식투쟁을 벌인 자들 쪽에 선 편향보도이다.

바로 그 점에서 광장을 망치는 주체는 신문과 방송이다. 전혀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는 것들을 마치 객관보도처럼 편집한다. 민주시민들이 촛불을 들면 언제나 같은 날,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이 있다. 고엽제전우회, 어버이연합을 비롯한 자칭 ‘보수단체’들이다. 언론은 바로 그 다음날 두 집회를 동일한 비중으로 보도한다. 그 보도에 만족한 그들은 지난 10여년 넘도록 민주시민을 겨냥해 집회방해 집회, 시위방해 시위를 해왔다.

그나마 일베의 폭식투쟁에 대해 보수쪽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다행이다. 가령 중앙일보가 사설을 통해 일베의 행태를 ‘문명사회의 수치’로 비판했고, 언제나 ‘종북타령’을 일삼던 새누리당 국회의원 하태경도 일베에 대해 언론의 감시를 주문했다.

과연 광장은 살아날 수 있을까. 문제는 폭식투쟁에 나선 젊은이들을 사뭇 세련되게 이용하는 세력이다. 때로는 내놓고 때로는 은근하게 부추긴다. 그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은 ‘피로감’을 자아내며 묻혀간다. 그들은 스스로 ‘성공’을 자축할 수 있겠지만 바로 그만큼 대한민국의 품격은 무장 추락할 수밖에 없다. 불교가 중도의 지혜를 적극 나눠가야 할 이유다. 

손석춘 건국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20gil@hanmail.net

[1262호 / 2014년 9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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