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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보살 선불장 전등선림

  • 수행
  • 입력 2014.09.22 16:14
  • 수정 2016.02.24 16:47
  • 댓글 1

화두 들고 마음속 아름다운 부처님처럼 사는 법 깨치다

▲ 서울 성북동에는 ‘깨달음의 숲’이 있다. 전등선림(傳燈禪林)이다.

사람냄새가 났다. 서울 성북동 ‘깨달음의 숲’에서 피어올린 향기였다. 사람냄새를 좇으니 전등사 전등선림(傳燈禪林)에 다다랐다. 한 번만 절하라며 웃는 선원장 스님은 허례허식을 뺀 담백함이 묻어났다. 욕심 없고 마음 깨끗한 그 담백함 속에서 사람냄새가 났다.

근대 선지식 해안 스님 설립
40여년 간 수행가풍 이어와
여름·겨울 안거 때 용맹정진
15시간 화두참구…점검 필수
24시간 개방하는 시민선방

선원장 동명 스님 수행 지도
“불성 자리 봤다면 행동하라”

전등사 주지 동명 스님은 1998년부터 16년째 전등선림 선원장으로 수행자들을 지도해오고 있었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화두보살들 선불장으로 유명한 전등선림에서 여름과 겨울 두 차례 안거기간 동안 함께 용맹정진하고 있단다. 결제 대중은 새벽 4시 새벽예불 봉행과 함께 좌복을 펼친다. 오후 9시까지 공양시간을 제외하고는 15시간 이상 화두를 든다. 도심에 있어 출퇴근하면서 수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도 도량에 상주하지 않는 불자들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수행 일정에 동참하는 게 원칙이다. 청규는 단출하다. 묵언과 수행시간 엄수 단 두 가지뿐이다.  정진 열정이 대단해 굳이 청규를 정하지 않아도 선방이 굴러간다. 그래서 산철에는 선방을 개방해 개인별로 정진하도록 배려해도 괜찮다고 했다. 그래도 스님은 안타까워했다. 수행자들이 ‘자기 부처님’만 붙들고 있어서다. 선방 원칙도 조금 느슨해졌다.
“요즘 참선병이 있지요. 옆 사람 애쓰는 것에 대해 고마움을 못 느낍니다. 참 수행자는 길에서 돌을 보면 이 길을 지나갈 사람을 배려해 치웁니다. 수행공동체에서는 청소하고 불도 끄고 서로서로 수행에 도움 되도록 살피는 것도 공부에요. 절엔 한주라는 소임이 있지요. 굳이 소임 맡기지 않아도 덕망 있고 훌륭한 행을 하는 수행자에게 붙는 이름입니다. 늦은 밤 해우소를 갔다가 더러우면 소리 없이 치우는 사람이지요. ‘참선하러 왔지 일하러 온 게 아니다’라는 수행자는 준비가 덜 됐습니다.”

▲ 근대 선지식 해안 스님이 산문을 열고 상좌 동명 스님이 수행자를 지도 중이다.

동명 스님은 스승에게 점검과 탁마를 받지 않는 점도 아쉬워했다. 흙은 물과 잘 섞어야 반죽하기 쉽다. 그래야 만들고 싶은 모양이 나온다. 한데 마음속에 ‘자기 부처님’ 한 분씩 모시고 있어서 흙이 잘 구부러지지 않는다고 했다. 인터넷과 책에 넘치는 수행정보에 기대 글로 배우는 수행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게 스님 생각이다. “부처님을 봤다면 부처님처럼 행해야지.” 스님은 계율을 꺼냈다. 오계가 아니었다. “인드라망처럼 서로 비스듬히 기대어 사는 세상 이치가 부처님 법인데, 더불어 살 줄 아는 지혜와 실천이 있어야지. 이게 계야.”

스님 말씀은 40여년간 재가자들의 선불장이었던 전등선림을 찾는 수행자들에 대한 일침이었다. 수행에 임하는 모든 불제자에게 하는 당부이기도 했다. 전등선림 수행가풍을 묻자 근현대 선지식이자 스승인 해안 스님의 가르침을 꺼냈다.

동쪽에 경봉 스님, 서쪽엔 해안(海眼, 1901~1974) 스님이라 불렸던 스님은 스승을 찾아 14세 때 내소사를 찾았다. 동지섣달 새벽달이 유난히 밝게 창에 비칠 때 달도 희고 눈도 희고 산도 흰데, 새벽하늘 고요한 적막을 흔들어 놓고 은은히 울려 퍼지는 맑은 종소리와 목탁소리에 반했다. 1917년 장성 백양사에서 삭발하고 만암 스님을 계사로 출가했다. 백양사 조실 학명 스님에게 은산철벽 화두를 받고 7일 동안 진행된 선원의 용맹정진 기간 동안 사력을 다했다. 학명 스님은 공부를 점검하고 크게 꾸짖고 방 밖으로 내쫓았다. 분심이 일었던 해안 스님은 문을 걸어 잠그고 화두와 전쟁을 치렀다. 이후 스님은 7일 견성이라는 돈오를 강조했다. 7일이면 견성한다는 확신을 갖고 7일 안에 깨치지 못하면 공부하는 자세가 철저하지 못했다고 일침했다. 한국전행 후 스님은 출가수행자나 재가수행자를 가리지 않고 대중교화에 힘썼다. 1969년 스님 원력으로 발족한 불교전등회는 1970년 전주에 한벽선림(寒碧禪林), 1972년 서울 수유리에 전등선림을 세우고 수행을 지도했다.

▲ 전등선림이 자리한 전등사.

수유리에 있던 전등선림은 1977년 현 위치로 옮겨왔다. 이전 후에도 전등선림은 해안 스님 수행가풍을 그대로 이어왔다. 해안 스님은 정진 때 한 사람씩 불러 문답을 나눈 뒤 잘못된 점은 지적하고 혼을 냈다. 분심과 의심을 일으켜 화두를 챙기도록 하기 위해서다. 상좌 동명 스님이 정기적으로 수행자들을 점검해 경책과 격려라는 처방을 내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제 땐 매달 15일 소참법문으로 불퇴전의 용기를 심어준다.

그래서일까. 평일이었던 9월15일에도 전등선림에는 한 보살이 가부좌를 틀고 화두와 씨름 중이었다. 일산서 왔다는 그는 9월1일부터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화두참구를 하든 여러 도반들에게서 정보를 입수(?)하고 왔단다. 그는 “공부해 본 사람은 안다. 여긴 공부가 잘 된다”고 귀띔했다.

동명 스님은 또 한 번 수행자의 마음을 당부했다.

“본래 깨끗한 청정심인 우리 불성 그 자리에 머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거기에 있기 위해 닦고 닦으며 수행합니다. 아름다운 달을 바라만보면 시인일 뿐 수행자는 아니지요. 아름다운 달이 천개의 강을 비추듯 마음에 담은 달도 주위를 비춰야 합니다.”

전등선림에서 나는 사람냄새는 부처님 말씀에 담긴 향기(法響)로 가슴에 담겼다. 02)762-0643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1262호 / 2014년 9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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