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조계종 개혁회의 운영과 성과
30. 조계종 개혁회의 운영과 성과
  • 권오영 기자
  • 승인 2014.10.27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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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재정 투명화·직접 민주주의 위한 제도 마련

▲ 조계종 개혁회의는 총 30여 차례에 이르는 공청회 등을 통해 종헌개정을 비롯해 30여개에 이르는 종법을 제개정 했다. 이를 통해 체계적인 종단운영 시스템을 구축했고, 합리적 종무행정의 토대를 마련했다. 개혁회의는 11월25일 제28대 총무원장으로 당선된 월주 스님에게 모든 권력을 이양하고 해산했다.

1994년 8월23일 조계종 개혁회의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원로회의가 종헌개정안 인준을 보류했기 때문이다. 종헌개정안은 4월22일 출범한 개혁회의의 첫 성과물이었다. 종단개혁에 대한 사부대중의 염원을 담아낸 결실이기도 했다.

과도집행부 체제 7개월
공청회 통해 여론 수렴
종헌·30개 종법 제개정
종단운영 체질개선 앞장

교육원·포교원 위상 높여
총무원장 겸직금지 마련
각종 선거제도 변질되면서
오늘날 골칫거리로 남아


종단개혁불사백서(개혁회의, 1994년 11월 발간)에 따르면 개혁회의는 개혁안 성안을 위해 8차에 걸쳐 종책세미나를 개최했다. 5월10일 ‘불교관계 법령제정 방안’을 시작으로 11일 ‘종단운영 방안’, 20일 ‘올바른 계단 정립 방안’, 31일 ‘전통사찰보전법 등 불교관계 법령 개혁 방안’, 6월3일 ‘종토세·토초세 해결 방안 및 종단재무구조 개선방안’, 7일 ‘포교 활성화 방안’, ‘승가교육개혁 방안’, 9일 ‘사회복지활동 강화 방안’을 주제로 관련전문가 등이 참여한 가운데 논의를 진행했다.

개혁회의는 이를 통해 개혁안의 기초를 마련하고 다시 공청회를 열어 이를 공개적으로 검증받았다. 6월14일 서울 조계사에서 ‘종단운영 체제-총무원장의 권한과 선출방식, 중앙종회와 지방종회 구성’을 시작으로 15일 ‘불교관계법령 분석과 대안마련’ 21일 ‘재무구조’, 22일 ‘포교활성화’, 23일 ‘교육개혁’, 24일 ‘불교사회복지활동’ 등을 주제로 공청회를 열어 사부대중의 의견을 수렴했다. 개혁회의는 전국 본말사에서도 공청회를 열었다. 5월10일 봉선사와 용주사를 시작으로 7월11일 동화사, 은해사까지 두 달 여간 총 13차례의 공청회를 열어 종단개혁에 대한 대중들의 공감과 지원을 얻어냈다.

개혁회의는 이를 토대로 종단의 행정과 사법, 교육, 포교 등에 대한 혁신안을 마련했다. 개혁회의가 8월11일 6차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가결한 종헌개정안은 종단의 제도개선을 실현하기 위한 기초 토대였다. 개혁회의는 종헌개정안이 인준될 경우 관련 종법 제개정을 통해 제도개선을 완비한 뒤 늦어도 9월말까지 신임 집행부를 출범시켜 종권을 이양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원로회의가 8월23일 종헌개정안 인준을 보류하면서 일정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날 원로회의는 종헌개정안과 관련해 8개항에 대해 문제를 삼았다. 원로회의는 종헌 전문과 조계종 종지와 법통을 기술한 제1·2·3조의 개정을 주문했다. 전문에서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정혜등지(定慧等持)’로 바꿀 것과 제1조 “본종은 신라 도의국사가 창수한 가지산문에서 기원하여 고려 보조국사의 중천을 거쳐 태고보우국사의 제종포섭으로…”에서 ‘보조국사’를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종헌에서 보조지눌 스님의 흔적을 지움으로써 ‘태고법통설’을 확고히 하려는 의도였다. 이는 1981년 ‘선문정로’를 통해 지눌 스님의 돈오점수를 비판했던 전 종정 성철 스님의 영향을 받은 다수의 스님들이 원로의원으로 포함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원로회의는 원로들의 권한 강화도 요구했다. 종정 선출을 원로의원들에 의해서만 선출하도록 했고, 종단중요정책 조정권 신설을 주문했다. 개혁회의가 총무원장 직선제에 대한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첫 총무원장 선출에 한해 승랍 5년 이상의 승려가 뽑는다’는 종헌 부칙조항에 대해서도 원로들은 거부의사를 분명히 했다.

개혁회의록에 따르면 원로의장 혜암 스님은 8월31일 7차 회의에 참석해 원로회의가 종헌개정안을 보류한 이유를 설명했다. 혜암 스님은 “(종조로) 도의국사를 내세운 것은 구산문중의 법을 처음으로 받았기 때문”이라며 “태고 보우선사는 임제종 18대 손으로 석옥 청공 스님한테 정맥을 이어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스님은 “보조 스님이 중국 정통정법의 맥을 이은 곳이 있는지 아무리 물어봐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며 보조국사를 종헌에 명기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강하게 표명했다. 스님은 총무원장 직선제와 관련해서도 “직선제를 하면 우리가 죽는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원로회의의 종헌개정안 인준 보류로 종단이 술렁였다. 이무렵 개혁회의는 종단 안팎에서 거센 저항에 직면했다. 해종행위자로 지목돼 징계를 받은 스님들이 줄이어 개혁회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집행부는 곤혹감을 감추지는 못했다. 종단 내부적으로도 종정 월하 스님과 개혁회의 총무원장 탄성 스님이 7월11일 청와대에서 김영삼 대통령을 만난 일로 종단개혁을 주도했던 범승가종단개혁추진위(범종추) 소속 스님들과 재가자들로부터 ‘불교자주화를 훼손했다’는 따가운 질책을 받았다. 이런 어수선한 상황에서 원로회의마저 종헌개정안 인준을 보류하면서 개혁회의는 사면초가의 상황에 내몰렸다. 종단 안팎에서 ‘종단개혁은 물 건너갔다’는 자조 섞인 비판들이 쏟아졌다.


개혁회의는 9월3일 오전 10시 제8차 회의를 열었다. 8차 개혁회의록에 따르면 개혁회의의원들은 이날 원로회의에서 인준 거부된 종헌개정안의 수정범위를 두고 논란을 벌였다. 법등·정호 스님 등은 “원로회의에서 지적한 부분에 대해서만 논의를 진행할 것”을 제안했고, 원학·설조 스님 등은 “원로회의에서 인준이 부결된 만큼 종헌 전체에 대해 재논의를 해야 한다”고 맞섰다. 논란은 이어졌다. 그러나 법등 스님이 “종헌 전체를 재논의하기에는 시간적으로 촉박하다”며 의원들을 설득하고 나서면서 장시간의 논란은 수그러들었다. 결국 개혁회의는 종헌기초위원회에서 원로회의가 지적한 내용들만 재논의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오후 3시5분 속개된 회의에서 종헌개정기초위원장 정휴 스님은 논의 결과를 발표했다.

종정 추대와 관련해 원로의원과 총무원장, 종회의장, 호계원장이 참여하고 교육원장과 포교원장은 제외하기로 했다. 종단중요종책조정권도 원로회의 권한에 삽입하도록 했고 △기초선원 삭제 △종학연구소 삭제 △부칙에서 1회에 한 해 총무원장 직선제를 실시하기로 한 내용도 삭제하기로 했다. 다만 논란이 됐던 종헌 전문과 종지와 법통을 다룬 종헌 제1~3조는 원로회의가 개정요구를 철회하면서 원안대로 처리하기로 했다. 개혁회의는 이를 토대로 9월27일 제9차 본회의를 열어 가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그러나 개혁회의가 총무원장 직선제를 폐지한 것을 두고 적지 않은 논란이 일었다. 개혁회의 상임부위원장 지선 스님은 9월5일 “개혁불사에 임하면서 역량의 한계를 통감했다”며 돌연 공개사임서를 제출했다. 스님은 공개사임서에서 “최형우 내무장관의 조계사 방문, 종정 스님의 청와대 방문 등으로 개인적 갈등이 많았다”며 “이로 인해 종단자주화는 실패로 돌아갔다는 진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총무원장 직선제 폐지를 두고도 스님은 “직선제의 폐해를 문제로 들고 있으나 한번 시행해보고 문제가 많다면 다시 개정해도 된다”고 강한 유감을 표했다. 이런 까닭에 자신은 “개혁회의에서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사퇴 이유를 밝혔다. 그럼에도 총무원장 직선제는 ‘종단 혼란이 우려된다’는 다수 스님들의 반발에 밀려 끝내 무산됐다.
개혁회의는 9월27일 제9차 회의를 열어 종헌개정안을 만장일치로 처리했다. 원로회의도 9월29일 회의를 열어 개혁회의가 가결한 종헌개정안을 원안대로 인준했다. 개혁회의가 7월13일 종헌개정에 대해 첫 논의를 시작한지 3개월여 만의 일이었다. 비록 사부대중이 열망한 총무원장 직선제를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개혁회의가 마련한 종헌개정안은 종단의 입법과 사법, 행정에 있어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3권 분리체제를 확립해 중앙종회와 호계원, 총무원의 권한을 명확히 구분했으며 상호견제와 균형을 갖추도록 했다. 교육원과 포교원을 설치해 총무원과 같은 위상을 부여함으로써 3원 체제를 확립했고, 중앙종회의원과 총무원장의 겸직금지 조항을 마련해 권력의 편중을 막았다. 총무원장은 중앙종회에서 선출하던 방식에서 중앙종회의원과 각 교구에서 10명씩 선출한 선거인단에 의해 뽑도록 함으로써 선거인단의 규모를 대폭 확대했다. 중앙종회의원도 각 교구에서 직선으로 선출하도록 해 종단의 직접 민주주의를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본사주지가 중앙종회의원을 겸직하는 것을 삭제했으며 사찰 재정도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해 재정투명화 실현 의지를 담았다.

개혁회의는 이 같은 종헌개정을 바탕으로 세부종법 개정에 착수했다. 개혁회의는 10월10일 제10차 회의를 열어 중앙종회법 개정안, 특별분담금사찰지정법 개정안, 직영사찰법 제정안, 선거관리위원회법 제정안, 총무원장 선거법 제정안, 교구종회의원선거법 제정안, 중앙종회의원선거법 제정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선거법 제정과 동시에 개혁회의는 선거일정을 공고했다. 11대 중앙종회의원 선거는 11월7일, 총무원장 선거는 11월21일로 확정했다. 개혁회의는 이후에도 11차·12차 회의를 열어 종법 제개정안을 처리했다.

그리곤 11월25일 개혁회의는 제28대 총무원장으로 당선된 월주 스님에게 모든 권력을 이양하고 해산했다. 이로써 사부대중의 개혁의지로 의현 총무원장 체제를 무너뜨리고 출범한 과도집행부 개혁회의는 7개월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했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개혁회의가 이룩한 성과는 뚜렷했다. 종헌개정을 비롯해 30여개에 이르는 종법을 제개정함으로써 체계적인 종단운영 시스템을 구축했고, 합리적 종무행정의 토대를 마련했다. 교육원과 포교원을 별원으로 승격해 기초교육과 기본교육, 전문교육 등 교육체계를 확립했으며, 포교의 전문성도 제고했다. 각종 선거제도를 도입해 민주적 방식으로 대표자를 선출하도록 했으며 사설사암의 종단등록을 의무화해 삼보정재의 유실을 막도록 했다.

그러나 개혁회의가 세분화한 종헌종법은 산중공의를 중시하는 승가의 전통을 훼손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특히 종단 민주화를 위해 도입한 각종 선거제도는 그 취지와 다르게 변질되면서 20년이 지난 오늘날 불교의 세속화를 부추기는 가장 큰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267호 / 2014년 10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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