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1. 경주 감은사 사리장엄의 사천왕상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껏 멋 부린 한국 최고 ‘근사남’

 
미술 용어는 아니지만 어떤 모습이 썩 보기 좋다는 뜻으로 ‘근사하다’라는 단어가 있다. ‘그럴 듯하게 괜찮거나 훌륭하다’는 뜻인데 사람이나 사물 어디에든 쓸 수 있다. 어감도 좋아 마치 맛있는 음료를 마신 것처럼 입에 부드러운 느낌이 착 감긴다. 사람한테 이 말을 쓰면 더욱 실감난다. 예를 들어 남자에게 “저 사람 근사한데!”라고 말하면 풍채도 좋고 상대방을 푸근하게 감싸주는 중후한 사람을 뜻하는 것 같다. 적어도 중년 남성에게 이만한 칭찬이 또 있을까? 사실 ‘근사(近事)’란 말은 불교 용어다. 산스크리트 말로 ‘Upa-saka’인데 이 말이 한역(漢譯) 경전에 처음 ‘오바색가(鄔派索迦)’로 음역되었다가 나중에 ‘근사남(近事男)’ 또는 ‘청신사(淸信士)’ 등으로 의역되었다. 예를 들어 ‘근본설일체유부필추니비나야(根本說一切有部苾芻尼毘奈耶)’에 ‘올로가(嗢路迦)’라는 근사남이 나온다.

682년 통일신라 신문왕 건립
서·동탑 수리 때 사리기 발견
동서남북 사방에 천왕상 배치

페르시아 등 서역문화 영향
화려한 의전용 갑옷 착용
요즘 헤어스타일과도 유사
신라의 개방성·진취성 담겨

그렇다면 우리 문화재 중에 ‘근사한’ 작품은 어떤 것일까? 어떤 작품에 이 말을 쓰면 썩 잘 어울릴까?

미술의 여러 분야 중에서 조각이 가장 발달한 시대가 통일신라시대라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다. 불보살상 외에도 여러 종류의 조각이 다양하게 만들어졌는데 그 중 인격이 가장 잘 반영된, 그러니까 인간의 모습과 가장 닮은 부류가 사천왕상(四天王像)이다. 같은 신중이라도 인왕상에게서 받는 느낌은 좀 다르다. 그 사나운 얼굴을 보자마자 기가 팍 죽어버리고, 굉장한 근육질의 몸에선 당장이라도 주먹 한 방이 나올 것 같다. 그에 비해 통일신라의 사천왕상 중에는 한눈에 호감이 들어 자꾸 눈길이 가게 되는 그런 작품들이 있다. 감은사 동서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사리장엄의 외함(外函)에 새겨진 사천왕상이 바로 그러한 예다. 만일 불교미술 중에서 가장 멋지고 매력적인 존재를 하나 들라고 한다면 나는 이 사천왕상이야말로 한국 최고의 ‘근사한 남자’라고 말하고 싶다.

 
 
▲ 감은사지 사천왕상은 우리 미술의 세련된 감각과 멋이 담뿍 담긴 작품이다. 왼쪽은 동삼층석탑 사리외함의 북방 다문천왕. 오른쪽 위부터 아래로 동방 지국천왕, 서방 증장천왕, 남방 광목천왕.

경주 감은사(感恩寺)에 동서로 나란히 자리한 두 삼층석탑은 쌍둥이마냥 크기나 모습이 서로 비슷한데,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라 682년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창건 불사를 시작했으나 다 마치지 못하고 승하하자 아들인 신문왕이 이어서 완공 했다. 서탑은 1959년, 동탑은 1996년 보수할 때 각각 사리장엄이 나왔다. 사리장엄 역시 석탑과 마찬가지로 구성이나 형태면에서 두 개가 서로 많이 닮았다. 사리장엄의 구성은 맨 바깥에 사각형 외함이 있고 그 안에 전각(殿閣) 모습으로 된 내함이 놓인 다음 내함 중앙에 사리를 담은 사리병이 차례로 봉안된 형식이다. 그런데 서탑 사리장엄에는 사리가 단 하나만 나온데 비해 동탑 사리장엄에선 사리병에 좁쌀처럼 자그마한 사리가 50과가 넘게 담겨 있었다. 이를 두고 서탑에는 진신사리가 봉안된 것이고 동탑의 그것은 감은사의 창건주 문무왕의 사리가 아닐까 하는 추정도 나왔다.

사천왕은 이름 그대로 동서남북 사방에 배치된 천왕이다. 천왕의 이름은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 서방 증장천왕(增長天王), 남방 광목천왕(廣目天王),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이다. 사천왕은 기본적으로 불법을 옹위하는 무장(武將)이다. 호위무사에 걸맞은 진지한 얼굴 표정 그리고 무장(武裝)한 모습은 어느 시대 어느 곳의 사천왕서나 늘 나타나는 ‘트레이드마크’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근엄한 얼굴 속에 따뜻한 표정이 숨겨 있고, 몸에 걸친 갑옷도 그냥 딱딱한 갑옷이 아니라 요즘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브랜드 슈트에 결코 못잖은 세련된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천왕들의 자세도 딱딱하게 굳어 있지 않고 유연한 제스처를 하고 있다. 천 년이 훨씬 넘게 오래된 작품이건만 현대적 감각에 전혀 뒤지지 않는 근사한 모습이라는 게 놀랍기까지 하다. 동서 석탑에서 나온 두 사리장엄이 외형상 아주 비슷하므로 둘 중에서 근래에 발견되어 보존처리가 좀 더 나은 동탑에 표현된 사천왕상을 예로 든다. 물론 사천왕마다 개성이 다 다르게 표현되었지만 그래도 천왕으로서의 동질성을 잘 아우른다면 네 상을 한데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머리부터 치장이 굉장하다. 머리카락은 앞쪽을 위로 빗어 넘겨 2단으로 둥글게 말아 올렸고 뒷머리는 그대로 늘어뜨렸는데, 둥글게 말아 올린 머리 중앙에 꽃무늬 장식을 꽂고 그 좌우에 가발까지 얹어 머리카락을 위로 뻗치게 했다. 요즘에도 이렇게 머리카락을 위로 뻗치게 하는 헤어스타일이 있으니 바로 그 원조 격인 셈이다. 이런 형태의 머리 모습을 의계(義髻)라고 하며 요즘의 붙임머리와 같다. 인도 미술 중에서 화려함이 극도로 발전한 6세기 이후에 나타나는 머리장식으로 알려져 있다. 7세기의 신라가 얼마나 국제적 유행에 민감했는지를 알 수 있다.

얼굴을 보면 두 눈의 눈두덩이 두툼하고, 눈초리는 위로 치켜 올라간 데다 눈동자도 앞으로 튀어나온 게 첫인상은 신장답게 근엄하고 엄숙한 편이다. 길고 넓적한 코는 콧날이 오뚝하고 콧등은 휘어진, 보통 말하는 매부리코다. 그런데 얼굴 근육을 움직여 일부러 이마 한가운데 두 줄 주름이 깊게 패게 하고 입가에는 가는 미소를 머금은 표정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이를 현대 감각으로 해석해 ‘느와르’적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눈이나 코의 생김새가 우리나라 사람의 모습과는 달리 ‘서역풍’인데, 이는 분명 페르시아 같은 중동 지방에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 7세기 후반부터 신라의 서울 경주는 국제도시로서의 위상을 갖추고 있었다. 역사 기록에도 경주에 중동인들이 꽤 많이 거주한 것으로 나와 흥덕왕릉을 지키는 석인상도 서역인의 모습으로 표현되었을 정도다. 신라 미술에 등장한 서역인은 이 감은사 사리기에 새겨진 사천왕상이 시조라고 해도 될 것 같다.

얼굴 아래의 목은 짧고 굵은 편으로 아마도 이 부분이 평균적 한국인의 모습에 가장 가깝게 표현된 곳인 것 같다. 목부터 아랫배까지는 갑옷을 입고 있는데 이 갑옷도 보통 화려한 게 아니다. 흉갑(胸甲)은 가슴 양쪽에서 각각 둥글게 휘어지며 두 가슴을 감싸는 멋진 스타일이고, 옷깃부터 시작해 갑옷의 모든 자리마다 꽃무늬와 구슬을 빼곡히 넣어서 장식했다. 어깨와 팔뚝의 견갑(肩甲)은 하나로 된 게 아니라 얇고 작은 여러 조각을 연결한 것이라 갑옷 아래 입은 옷이 살짝 드러나게 되어 있다. 팔뚝에 걸친 갑옷 밑으로도 얇은 천으로 된 소맷자락이 살짝 내려온 게 보인다. 또 레이스 끈 마냥 어깨에서 내려온 두 줄의 끈이 손목 위를 한 바퀴 돈 다음 아래로 늘어뜨려져 있어 이 갑옷이 굉장히 패션에 민감하게 만들어진 걸 알 수 있다. 이런 스타일의 갑옷은 분명 실전용이 아니라 의전용이었을 텐데, 만일 누군가 이 갑옷을 입고 나타났다면 단박에 모든 이의 시선을 붙잡았을 것이다.

이 사천왕상이 가장 멋 부린 곳 중 하나가 허리다. 늘씬한 허리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혹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잔뜩 비튼 게 요즘의 ‘S자 형 미인’ 뺨칠 만큼 곡선미가 좋다. 본래 가는 데다 허리띠마저 질끈 동여매서 그야말로 한 손으로 쥘 만큼 허리가 쑥 들어갔다. 종아리도 가는 데다 무릎마저 살짝 굽혀 맵시를 한껏 부렸다. 요즘 젊은이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 몸매다.

사천왕상이 신고 있는 신발도 멋지기는 매한가지다. 얇고 코가 낮은 가죽 신발엔 당초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석굴암 사천왕상도 거의 같은 모양의 신발을 신고 있는데, 이런 종류는 7세기 페르시아에서 유행하던 것이었음이 학계에 보고된 적이 있다. 세계적 유행이 시차 없이 곧바로 들어왔다는 것이니 신라 미술의 개방성과 진취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것 같다.

사천왕의 패션은 발아래에서 완성되었다. 모든 사천왕상은 발로 악귀를 밟고 있는 모습을 하기 마련인데 이는 감은사지 사천왕상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험악해 보여야 할 그 순간마저 사천왕은 우아하고 세련된 모습을 잃지 않고 있다. 왼손을 허리에 짝 붙이고 두 다리를 밖으로 벌려 누워 있는 악귀를 밟고 있는 자세에 한껏 멋이 들어가 있다. 여기에 호응하듯 발아래 밟힌 악귀도 요즘 유행하는 말로 ‘엣지(독특함)’를 제법 풍긴다. 넓적한 얼굴엔 왕방울만한 눈이 튀어나왔고 큰 입에 날카로운 이빨이 번뜩이지만, 엉덩이를 내려 엉거주춤하게 엎드린 채 두 손은 뒤로 뻗고 다리는 잔뜩 구부린 자세가 상당히 연출된 모습이다. 마치 카메라 앞에 선 악역 배우의 연기를 보는 것 같다. 뻣뻣한 수염, 곱슬머리로 볼 때 영락없는 서역인 모습인 것도 재미있다. 다만 다문천왕만 두 발을 악귀가 아닌 양(羊) 위에 올려놓았는데 이 점도 꽤 이색적이다. 양의 표정도 아주 평화롭고, 뿔과 털 등도 매우 정리가 잘되었고 깃털도 잘 다듬어져 있다. 중국에는 양을 딛고 있는 사천왕상이 더러 있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이 유일하다.

이처럼 감은사지 사천왕상은 우리 미술의 세련된 감각과 멋이 담뿍 담긴 작품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이후 사천왕상의 모습에서 변화는 거의 사라져버렸다. 제작 기법에서 좀 더 잘되거나 혹은 그보다 못하다는 차이는 있어도 전체적으로 전국의 모든 작품들이 판에 박은 듯 거의 똑같아져 버렸다. 신체의 인격화는 거의 사라지고 강한 이미지만 잔뜩 강조되어 있는 것이다. 신장으로서 이상한 모습이라고 할 수 없지만 미술품으로 감상하기에는 너무 단조롭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감은사 사리장엄에 표현된 사천왕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고 근엄하면서도 여유가 넘치는 풍모에다 화려하면서도 감각이 넘치는 멋진 옷매무새까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그런 근사남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건 참 유감천만이다.

신대현 사찰문화연구원 대표

[1268호 / 2014년 11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