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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경주 불국사

고도의 철학과 최고 건축술로 일궈낸 신묘한 가람배치

▲ 화려함이 사치가 아니고 넉넉함이 과시가 아닐 때 아름다움은 비로소 더욱 빛을 발한다. 경주 불국사는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고 넉넉하되 과시가 아닌 신묘한 아름다움이 곳곳에 배어있다. 사진은 불국사 연화교와 칠보교.

절마다 나름의 분위기가 있어서 거기에 갔을 때 느껴지는 기분이 다 다르다. 법당이며 누각 그리고 탑 들어선 것이야 다 한가지니 무슨 별다른 느낌이 있으랴 싶지만, 실제론 절 마당에 들어섰을 때 마음에 확 와 닿는 첫 인상은 모두 다르다. 마치 사람마다 얼굴이 다 엇비슷해 보이지만 그래도 저마다 풍기는 인상이 다르고 개성이 제각각인 것과 같은 이치다. 그림으로 예를 든다면 영암 도갑사는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의 담담한 필묵과 여백마냥 청초함이 가득하고, 영주 부석사는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이 말쑥하다. 또 해인사는 궁중의 일급 화원이 그린 ‘정조 임금 화성행차도’처럼 웅장함이 그득하다. 구례 화엄사는 지리산을 두르고 있어서일까, 김홍도의 풍속화처럼 정겹고 푸근하다. 물론 절이 일부러 이런 맛을 낸 것은 아니다. 까마득한 세월 동안 졸졸 흘러내린 물결에 깎여 만물상이 된 수석(壽石)처럼 가람도 천년이 넘는 세월을 지내오면서 절로 쌓인 연륜과 체취가 그런 멋을 자아냈을 것이다.

경사진 지형적 특성 이용해
불교 이상세계 ‘수미산’ 구현
위계·연계 등 공간구성 탁월

연화교 등 4개 돌계단 백미
예전에는 구품연지도 조성
차안과 피안 구분 짓는 경계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보는 듯 화려하고 꿈속을 거니는 양 아득한 멋이 가슴을 휘감는 절은 경주 불국사다. 불국사는 안 가본 사람을 찾기 드물 정도로 널리 알려진 ‘국민사찰’인데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은 명찰이다. 이곳이 특히 압권인 면은 웅장하고 절묘한 가람배치에 있다. 대웅전과 비로전 건물은 동시대 다른 전각에 비해 훨씬 규모가 크고, 그 안에 봉안된 석가불상과 비로자나불상 역시 통일신라시대의 대표로 손꼽는 작품들이다. 무엇보다도 대웅전 앞마당에 있는 세계 탑의 역사상 불세출의 걸작 석가탑과 다보탑이 이런 존재감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여기다 모든 건물들이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도 보기 드문 점이다. 아무리 비가 많이 내리는 날씨라도 그 옛날 불국사에서는 장마철에도 스님들이 가사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경내를 오갈 수 있었을 것이다.

 
 
▲ 위부터 다보탑과 대웅전, 자하문, 불국사 전경.

불국사 가람구도를 좀 더 자세히 보면, 들어서는 순서로 볼 때 대웅전 구역과 극락전 구역, 그리고 그 뒤쪽에 자리한 비로전과 관음전 구역으로 크게 구분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대웅전 앞에 있는 자하문 아래쪽의 청운교·백운교·연화교·칠보교를 포함하면 모두 3단 구조인 셈이다. 각 구역끼리는 계단으로 올라가도록 해놓아서 가람을 거닐다보면 자연스럽게 공간적으로 상승한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경사진 지형을 적절히 살려 각 공간의 위계를 살리고 유기적인 연속된 공간구성을 이룬 점에서 뛰어난 조형감각을 엿볼 수 있다.

건축학자들은 이처럼 여러 개의 독립된 건축공간이 경사진 지형 속에서 하나의 통일된 건축공간으로 구성된 것은 그 이전의 사천왕사나 감은사와 같은 단순한 구성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것이며 이 점이 불국사가 갖는 가장 중요한 특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말하자면 불국사 가람은 아주 고도의 건축계획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뜻이다. 그리고 불국사 가람배치가 의도하려 했던 것은 아마도 불교의 이상세계 수미산(須彌山)을 구현하려 했을 거라고 말하곤 한다.

가람을 꾸미면서 이렇게 고도의 계획건축이 가능했던 것은 8세기에 이룩된 불국사 창건이 국가적 관심 아래에 이루어졌던 배경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신라의 최고 건축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여 만들어 낸 것이 바로 불국사였을 테니까 불국사의 가람구조는 곧 고도의 철학적 불교이념과 신라 최고의 건축기술이 어우러져 빚어낸 작품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불국사나 석굴암은 왕족을 위한 공간이지 대중들이 쉽게 올 절은 아니었다고 하는데, 어느 기록에도 백성의 출입을 제한했다는 내용은 없다. 불국사 가람이 반드시 어느 특정한 사람들만을 위한 사치와 과시용은 아니었을 것이다.

여하튼 불국사의 가람배치는 세계적 수준이었는데, 이런 훌륭한 가람배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이곳에 자리한 네 개의 돌계단, 연화교·칠보교 및 청운교·백운교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한 절에 아름답기 그지없는 계단이 네 개씩이나 있는 경우는 불국사 오직 한 곳뿐이다. 불국사 가람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장엄한 화룡점정이 바로 이들 아닐까. 천왕문에서 합장하고 지나면 곧이어 널찍한 마당이 나오고, 여기에 시원한 나무 그늘 옆으로 당간지주 한 쌍이 서 있다. 여기서부터 불국사 앞마당이고, 대웅전 쪽으로 가는 관문이 바로 연화교와 칠보교이고 서쪽으로 옆에 있는 백운교와 청운교를 지나면 극락전이다. 넷 모두 계단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름 끝에 다리를 뜻하는 ‘橋’자가 붙은 게 특이하다. 아닌 게 아닐 연화교와 청운교 모두 무지개 모양으로 휘어진 것이 바로 홍예교라는 형태의 다리 모습이기도 하다. 옛 기록에 불국사에는 구품연지(九品蓮池)가 유명했다고 나오는데, 이 연못이 바로 연화교와 청운교 아래에 있었다고 한다. 지금 기념사진 찍는 사람들로 늘 북적대는 자리가 바로 그 자리다. 홍예교 아래 펼쳐진 그윽한 연못에 다보탑이 비추었다는 전설도 있으니, 달밤에 이 다리에 오르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분위기에 신선이라도 된 양 했을 것 같다. 물론 이 연못은 미관뿐만 아니라 피안과 차안, 곧 이 세계와 극락세계를 구분 짓는 상징적 경계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청운교와 백운교, 그리고 연화교와 칠보교를 건너면 비로소 해탈의 세계로 들어선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이 구품연지를 영지(影池)라고도 불렀는데, 어찌나 아름답고 유명했던지 조선시대의 유명한 기인이자 걸출한 시인 매월당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다음과 같이 읊었다.

‘돌을 끊어 만든 구름다리 자그마한 못을 누르고(斷石爲梯壓小池)/ 높고 낮은 누각 물가에 비추네(高低樓閣映漣漪)/ 옛날 사람 호사는 어디까지였을까(昔人好事歸何處)/ 세상 헛된 일 잊으려 외려 세상에 기대었구나(世上空留世上寄)’

자하문으로 연결되어 대웅전으로 통하는 돌계단인 청운교와 백운교는 2단으로 되어있다. 아래에 있는 것이 백운교로 길이 630㎝에 17계단으로 구성되었고, 위에 있는 청운교는 길이 540㎝에 16계단으로 되어 있다. 계단을 모두 합하면 서른세 개, 곧 부처님이 계신 도리천(忉利天) 중에서 욕계(欲界) 제2천(天)인 33천을 상징한다. 자하문(紫霞門)은 청운교와 백운교와 연결되어 대웅전으로 오르는 문으로 석가부처님의 세계인 대웅전 영역으로 들어서는 관문이다. 부처님의 몸을 자금광신(紫金光身)이라고도 하는데 자하문이란 부처님 몸에서 나오는 자줏빛 금색이 안개처럼 서리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동쪽으로 백운교·청운교가 위로 이어지고, 그 옆 서쪽으로 연화교·칠보교가 다시 위로 이어지는데 여기를 건너면 극락전 영역에 오르게 된다. 쌓은 양식은 청운교·백운교와 같으나 규모 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연화교가 높이 230㎝, 너비 148㎝로 밑에 있는 높이 406㎝, 너비 116㎝의 칠보교보다 오히려 조금 크다. 계단에 연꽃잎이 새겨져 있어 연화교라 하고, 칠보교는 금·은·유리·수정·산호·마노·호박의 일곱 가지 보석의 다리라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한다. 이들 계단은 안양문으로 연결되고, 문을 들어서면 아미타의 극락세계인 극락전 영역이다.

‘산중일기’를 남긴 조선시대 최고의 사찰 여행가 정시한(丁時翰, 1625~1707)은 불국사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느꼈던 인상을 적으면서 단연 이 돌계단을 먼저 적었다. “불국사에 도착했다. 계단이나 석탑 등이 해인사에 비해서 퍽이나 기괴하다(至佛國寺 石砌石塔比海印寺尤奇怪)”라고 했고, 1767년에 활산(活山) 스님도 ‘불국사 대웅전 중창단확기’에서 “어릴 적 공부할 때 옆구리에 책을 끼고 절에 가 공부하면서 스님들과 함께 종도 치고 밥도 같이 먹으며 지내곤 하였다. 당시 절이 얼마나 컸던지 구경하러 온 사람마다, ‘전각, 당우, 돌계단, 보탑이 하나같이 웅장하면서도 화려하군. 실로 우리나라에서 으뜸일세!’하고 감탄하기 일쑤였다”라고 하며 돌계단[石砌]을 특별히 언급했다. ‘돌계단’이란 다름 아니라 백운교·청운교·연화교·칠보교를 가리켰을 것이다.

연화교·칠보교, 청운교·백운교는 보전을 위해 지금은 직접 밟아볼 수는 없지만, 대신 상상은 할 수 있다. 우리 사찰의 그윽한 멋 가운데 하나가 계단을 밟고 올라서서 경내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눈에 들어오는 금당을 바라볼 때인데, 백운교와 청운교를 구름처럼 밟고 올라서서 아래로 연못에 비춰지는 자기의 모습과 위로 은은히 자리한 대웅전과 극락전을 바라본다면 얼마나 멋졌을까.

화려함이 사치가 아니고, 넉넉함이 과시가 아닐 때 아름다움은 비로소 더욱 빛을 발한다. 이런 화려와 넉넉함은 할 수 있다면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해볼 만한 호사(豪奢) 같기도 하다. 만일 그럴 처지가 아니라면 미술품에서 대신 느껴볼 수 있다. 미술이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은 바로 그 아름다움 때문인데, 이런 걸작을 바라보며 안복을 누리는 것도 세상 살아가는 맛 중의 하나 아닐까. 그리고 이런 미술의 가장 큰 덕목을 우리 불교미술 그리고 불국사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행운인 것 같다.

신대현 사찰문화연구원 대표

[1272호 / 2014년 12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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