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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신뢰를 포기한 정부

공무원연금 개혁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국민들 관심도 매우 크다. 그동안 정부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의 불가피성을 역설해 오고,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문제점들을 부각시키면서 위기감을 고조시켰기에 개혁을 지지하는 목소리 또한 높다. 그에 반해 공무원연금 수혜 당사자인 공무원들의 피해의식과 배반감 역시 만만치 않다. 이 문제가 대화의 소재가 되고, 그 가운데 이해 당사자가 끼어있게 되면 자칫 태도가 상반되는 사람들끼리 얼굴을 붉히기 쉬운 위험한 주제가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문제로 인해 얼굴을 붉히고 사이가 틀어져 버린 사람들도 있다. 뿐만아니라 공무원연금의 수혜자들 사이에서도 얼굴을 붉히거나 마음속에 앙금을 남기는 불쾌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어떤 연금 수혜자는 “그 정도라면 난 양보할 수 있고, 그래서 개혁에 찬성해”라고 말하는데, 다른 이는 똑같은 수혜자이면서도 “넌 형편이 넉넉하니 그렇게 쉽게 찬성하는 거지!”라며 분노하거나, 그렇게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면서도 속으로 섭섭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경우다.

이 문제에서 논의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우선 개혁 논의가 이루어지는 순간부터 최대 피해자는 수혜 당사자다. 그들의 당연히 보호되어야 할 권리가, 마치 그것을 요구하는 것이 부끄럽고 파렴치하다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방식의 논의는 애당초 본말이 전도된 것이었다.

국가 권력이 존립하게 되는 근본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바로 신뢰성이다. 중국 법가통치의 원조인 상앙이 법치를 시작하려 했을 때 가장 먼저 한 것이 신뢰성의 획득이었다. 성문 한 곳에 막대기를 세워놓고 그것을 다른 성문에 옮기면 상금을 준다고 공포하고, 실제로 그것을 실행함으로써 국가의 말에 대한 신뢰성을 얻었다. 지금 국가가 작은 일도 아니고 엄청난 문제에 신뢰성을 팽개치는 마당이다. 그것이 과연 정당한가에 대한 논의보다도 왜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먼저 나오고, 그 어쩔 수 없는 일에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파렴치하다고 비난받아야 하는 것일까?

이렇게 여론몰이 식으로 국민들을 분열시키면서, 그 사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국가의 신뢰성을 슬그머니 포기하는 양태가 묵인된다면, 과연 그것이 일회성의 업으로 넘어갈 수 있을까? 이대로라면 모든 국민들의 권리가 적당히 만들어진 명분 아래 국민을 분열시키는 여론몰이식의 공작아래 무너질 수도 있다. 한 집단의 권익이 침해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제 국민들은 근본적으로 국가의 약속 자체를 믿지 않게 될 것이다.

공자는 국가의 성립 요건으로 먹을 것이 충분함과 국방력과 백성의 믿음 세 가지를 들면서, 가장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을 백성의 믿음이라 했다. 그만큼 중대한 것이기에 과연 연금법 개정이 그 중요한 것을 포기해야 할 만큼 절체 절명의 것인가에 대한 논의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약속을 포기해야 한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국가의 연금에 대한 관리 책임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 또 다른 개선방향이나 대안은 전혀 없고, 꼭 이 길 밖에 없는가도 정말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논의 되어야 한다. 이해관계가 걸리지 않는 이들과 그에 걸리는 이들을 다투게 만들어 국민을 분열시키는 방식은 가장 피해야 될 극악한 방식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논의 자체가 옳으냐 그르냐 이전에, 이런 논의를 꺼내들 수밖에 없게 된 국가와 권력에 대한 검증이 선행되어야 한다. 논의를 꺼낸 것만으로도 국가의 존립근거를 흔든 것이니, 우선 그에 대해 백배사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교수 tysung@hanmail.net

[1273호 / 2014년 12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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