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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를 증폭시키는 자체가 지옥

눈이 번쩍 뜨일 소식을 접했다. ‘북한 주민들, 남북관계 개선 촉구 대규모 군중대회’라는 제목으로 보도된 소식이다.  눈을 비비고 보아도 틀림없다. 한 겨울의 추위처럼 얼어만 가던 남북관계에 얼마나 반가운 소식인가! 10만 이상의 주민대회라니 그 열기도 뜨겁지 않겠는가? 벌써 필자를 순진한 소리하는 사람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또 북한의 진의, 그런 교시를 내린 김정은의 속셈은 무엇인가에 대한 부정적인 분석들이 꼬리를 물을 것이라는 것도 환히 보인다. 그렇지만 왜 그렇게 과민하게만 반응하는가? 좋은 말은 좋은 말로 들어서, 그 좋은 말이 성취되기를 바라야 되지 않는가?

공자는 “사람이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나아오면 그 깨끗함을 인정할 뿐이지 그 지난날을 탓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자꾸만 과거를 들출 필요가 없다. 일단 좋은 뜻을 인정하고 그것에 좋은 뜻으로 반응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좋은 반응이 나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만일 그것이 중간에 좋음으로 증폭되지 않고 다른 저의가 드러나면서 끝난다면 그것은 그들의 책임이다.

우리야 한 줄기 조그만 실마리라도 있다면 계속 그것을 좋은 방향으로 증폭시키도록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남북 관계 개선이라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최우선의 과제가 아닌가?

불교의 교리에 비추어 보아서도 마찬가지이다. 괴로움을 벗어나 즐거움을 얻는 것이 불교라면, 남북 분단이야말로 우리 민족 전체에게 헤아릴 수 없는 큰 괴로움을 주고 있는 괴로움의 괴수이며, 끊임없이 괴로움을 생산하고 있는 괴로움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 놓인 우리들 모두는 결코 혼자서 그 괴로움을 벗어날 길이 없다. 함께 노력하여 함께 그 괴로움을 벗어나야 할 우리들의 공업인 것이다. 단지 우리 남한뿐만이 아니라 북한과 함께 노력하여야 할 근원적인 업인 것이다.

그런데도 너무 오랜 세월을 그 괴로움에 익숙해져 거기에 불감증이 되어버린 지금의 상황이 정말로 큰 문제이다. 언제나 날선 인식을 늦추지 말고 직시해야 하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할 일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쪽에서 조그만 실마리라도 던져오면 백배 천배로 거기에 화답해야 옳다.

우리 쪽에서 100만 군중집회로 답할 길은 없을까? 혹시 어떤 저의를 가진 일이었다 하더라도, 우리의 순수하고도 뜨거운 반응으로 모든 삿된 잡티라도 태워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순진하다고 핀잔 받을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우리의 남북관계가 너무도 타성적인 공방 속에서, 서로를 불신하고 그 불신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만 나아가고 있다는 데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과 그러한 흐름에 대해 근본적으로 안타까워하고 슬퍼하는 마음들이 우리들에게서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렇게 고착된다면 우리는 참으로 비참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지옥도 거기에 익숙해지면 살만 하다고 하던가? 같은 민족 끼리 끊임없이 증오를 증폭시켜 가는 그 상황 자체가 바로 지옥 아닐까? 거기에 익숙해져버린다는 것은 참으로 자신의 비참함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태로 가는 것이 아닌가?

다시 한 번 공자 말을 빌려 보자. “군자는 말만 가지고 사람을 등용하지도 않지만, 사람이 어떻다고 하여 그 사람의 좋은 말을 버리지는 않는다”고 했다. 좋은 말이라면, 좋은 뜻이라면, 그것을 성취시키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할 일이다. 결과를 미리 염두에 두지 말자. 정말 남북 갈등의 문제를 가장 우선적인 문제로 다루려는 자세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열 번 배신감을 느끼고 백번 실망하더라도 좋다. 좋은 말에도 대뜸 저의를 의심하고, 오히려 증오어린 말을 내뱉곤 하는 남북관계에 대한 우리들의 일상적 태도 자체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갈등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나가려는 모든 경향에 대하여는 늘 경계심을 잃지 말아야 하겠지만, 특히나 불신과 증오가 증폭되는 방식이 일상화된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늘 깨어있는 새김을 잃지 말아야 한다.

성태용 교수 tysung@hanmail.net


[1278호 / 2015년 1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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