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술 대신 차 공양…육류·생선 없이 단출한 차림

  • 생활
  • 입력 2015.02.23 13:56
  • 수정 2015.07.16 15:28
  • 댓글 3

불교식 차례, 어떻게 지낼까

▲ 조계종 중앙신도회와 명원문화재단이 시연회에서 선보인 명절 차례상.

불교신자 A씨는 매년 명절이 되면 마음이 불편하다. 대대로 신심 깊은 불자 집안임에도 차례는 왜 유교식으로 지내는지 의구심이 든다. 무엇보다 명절 차례상에 육류와 생선, 술을 올리는 것이 영 마뜩찮다. 차례상에 올려진 생선의 부릅뜬 눈알을 볼 때마다 ‘지장보살’ 명호가 입안에 맴돈다. 모든 생명은 불성이 있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가능한 불살생계를 지키려 노력하며 살아왔기에, 전통적인 관습이라고 해도 눈 앞의 차례상이 영 껄끄러운 것은 어쩔수가 없다. 이 같은 고민을 하는 불자는 비단 A 뿐만이 아닐 것이다. 올해엔 과감하게 그동안 생각만 해 왔던 불교식 차례에 도전해 보는 것이 어떨까.

형식보다는 정성·신심이 중요
영가에 불법 전하는 독경이 핵심
차례상 올린 음식엔 가피 담겨

불교식 차례의 대표적인 특징은 바로 술 대신 차를 올린다는 것이다. 티백 형태의 차나 맑은 물도 가능하다. 사실 술이 아닌 차를 올리는 것은 우리나라의 오랜 전통이다. 선조들은 차를 대단히 귀하게 여겨 며느리가 들어왔을 때 사람됨을 알아보는 데에도 차를 사용했다. 며느리의 솜씨로 직접 우린 차를 조상의 사당에 올리고, 온 가족이 둘러 앉아 그 차를 나눠 마셨는데 오늘날의 음복(飮福)은 이 같은 문화의 변형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불교식 차례는 형식보다 정성과 신심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 불교식 차례는 조상에 대한 공경과 추모의 뜻을 지니는데서 그치지 않고, 조상영가를 위해 공양을 올려 공덕을 쌓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 깨달음을 얻도록 하는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상차림은 간소하게 준비하되 생명을 존중하는 불교 계율에 따라 육류와 생선은 제외한다. 대신 육법공양물에 해당하는 향과 초, 꽃, 차와 과실, 밥을 올린다. 기본 상차림은 3색 나물과 3색 과실로 충분하며 형편에 따라 떡이나 전 등을 추가하면 된다.

차례나 기제사를 주도하는 ‘제주(祭主)’를 정하는 것도 자유롭다. 장남이나 장손이 제주가 되는 유교적 관습과 달리, 불교식 차례에는 남녀 구분이나 항렬에 따른 우위가 없다. 조계종 포교연구실에 따르면 딸만 있을 경우 딸이 제주가 되며, 가족 합의를 통해 돌아가면서 제주를 맡는 것도 바람직하다.

유교식 차례가 침묵 속에서 진행된다면, 불교식 차례에서는 염불이 이어진다. 거불과 청혼으로 영가를 모시는 것으로 본격적인 차례가 시작된다. 참석자들이 모두 합장하고 제주가 삼보를 불러 모시면 합장 반배한 채 ‘나무상주시방불’을 칭명한다. 시방에 두루 계시는 삼보에 가피를 구하는 단계다. 이어 꿇어앉아 의식문을 염송하며 영가를 청한다. 이때 호칭은 ‘조상님’으로 하며 청혼의식이 끝나면 일어나 삼보와 영가에 3배를 올린다.

이어 영단에 좌정한 영가에게 차와 음식을 올리고 공양을 권하고 영가의 극락왕생과 깨달음을 기원하는 헌식, 헌가가 이어진다. 독경을 통해 부처님 말씀인 법문을 영가에게 전하는 단계는 불교식 차례의 핵심이다. 영가를 위해 경전을 염송하는 과정에는 불법 안에서 조상과 자신이 불성을 가진 하나의 존재임을 인식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차례의 마지막 단계는 봉송(奉送), 영가를 떠나보내는 의식이다. 제주의 안내에 따라 3배로 봉송 인사를 올린 후 봉송문을 염송한다. 이어 떠도는 유주무주 고혼을 위해 제사상에 올린 음식을 조금씩 덜어 밖에 내놓는 헌식을 하고나면 가족들이 모여 제수를 음복한다. 불교에서 제사상에 올린 음식에는 불보살님의 가피가 담겼다고 보기 때문에, 음복은 조상과의 교감 및 감로법을 나눈다는 의미도 지닌다.

조계종 포교연구실장 법상 스님은 ‘불교상제례 연구’를 통해 “사람의 인생에서 상장례와 제례가 차지하는 비중은 참으로 크기에 전통적으로 종교가 관여해 삶의 고통을 위로해 왔다”며 “불자들이 불교식 상제례를 통해 불법의 가르침과 의미를 되새긴다면 한층 뜻깊은 명절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1283호 / 2015년 2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