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직분은 목숨 구하는 것이고 기운 바르게 하는 것 이치로 여겨
의사 직분은 목숨 구하는 것이고 기운 바르게 하는 것 이치로 여겨
  • 박상준 원장
  • 승인 2015.03.11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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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때를 당해서 마음의 지혜가 곤궁해져 빠져 나가려해도 방법이 없고 탈출하려해도 수가 없게 됩니다. 구제해주길 바라도 사람이 없으니 소리를 질러본들 그 누가 친하게 다가오겠습니까. 이게 어찌 허둥지둥 할 일이겠습니까. 형색을 드러내어 끙끙 신음소리를 내면 깨어있는 사람이 어떻게 정상상태로 여길 수 있습니까. 호되게 소리를 지르면 벌떡 일어나게 됩니다. 한 번 깨달아 크게 깨어나 꿈속의 일을 돌아보면 어렴풋하게 벌어졌던 일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꿈속의 일을 찾아보아도 얻을 수 없고 말하려 해도 미치지 못합니다. 이것을 깨어있는 사람에게 말하면 일소에 부쳐버릴 것입니다. 아아. 어찌 꿈꾸는 사람뿐이겠습니까. 세인들이 모두 그러하니 선생께서는 시험 삼아 이 말을 받아 지녀서 스스로 깨어나고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깨어나게 해보시지요.”

곤란한 지경 처한 이 만나면
지혜를 운용 지조 굳건히 해
중도 기준 삼아 고요함 우선
이익 찾지않고 공 자랑 안해


이고사(李高士)에게 의설(醫說)을 줌

내가 방출당한 지 8년 되는 계묘년 겨울이었다. 우연히 조계산에서 인연 따라 걸식을 하면서 능강의 수서(水西)에 이르렀다. 그 때 마침 멋진 눈썹에 하얀 수염을 가진 건장한 장인이 숙소로 나를 찾아왔다. 형모를 보니 뛰어난 것이 있어 은자임을 알 수 있었다. 직업을 물어보니 기황(岐黃)이라고 하였다. 나는 이에 달사임을 알았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옛 사람이 ‘통달하면 훌륭한 재상이 되고 통달하지 못하면 훌륭한 의사가 된다’고 하였다”고 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여긴다. 대개 통달하면 의사가 되고 통달하지 못하면 재상이 될 뿐이다.

무엇 때문인가. 저 재상의 임무는 음양의 변화를 살려 원기를 보하여 많은 사람을 구제하고 뭇 백성에게 어짊을 베푸는 것이다. 그리하여 임금을 태평하게 안정시키고 천하를 편안하게 한다. 이것이 그가 맡은 직분이다. 그러나 이 일은 완벽하게 할 수 없고 완벽하게 한다 해도 세운 공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기를 앞세우고 백성을 뒤로 돌리며 이익에 따라 충성을 바치기 때문이다.

또 반드시 밖에 있는 인주(人主)의 권력을 빌리고 많은 사람들의 손을 의지해야만 일을 이룰 수 있다. 더구나 시비득실과 영욕을 어지럽게 다투는 운동장에서 종신토록 직분을 끝까지 다해보아도 도가 반드시 빛나지는 않는다. 밤낮으로 부지런을 떨고 노심초사하느라 타고난 본성을 해침에 이르는데도 늙어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어찌 통달했다고 할 수 있으랴.

의사는 이와 반대이다. 그 직분이 목숨을 구하는 것으로 임무를 삼고, 어짊을 베푸는 것으로 핵심을 삼고, 의로움으로 바탕을 삼고, 다른 사람을 자기 몸처럼 여긴다. 삿된 기운을 제거하는 것을 책무로 여기고 기운을 바르게 하는 것을 이치로 여긴다. 상도(常道)를 기준으로 삼고 권도(權道)를 활용방편으로 삼는다.

따라서 그 다스림이 반드시 마음을 편안하게 되도록 한다. 위험하고 곤란한 지경에 있는 이를 만나면 굳센 지혜를 운용하고 지조를 굳건하게 세워서 여러 사람의 말에 미혹당하지 않는다. 온갖 삿된 것을 피하지 않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완급을 조절하며 알맞게 나아가고 물러선다. 큰 중도를 기준으로 삼고 지극한 고요함을 우선으로 여긴다. 효과가 나더라도 이익을 따지지 않고 공을 자랑하지 않는다. 이것이 어쩌면 “다스리면서도 주재하지 않고 공을 이루어도 차지하지 않는다”고 하는 말에 해당되는 자일 것이다. 천하에서 지극하게 통달한 이가 아니면 어떻게 이 경지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

이를 통해서 볼 때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는 공이 크고 이익을 잊어버리는 명예가 고귀하다. 잊어버리지 못하는 이는 보답을 바라다가 무거운 죄를 받는다. 다 잊어버린 사람은 처음에는 미미해도 나중에는 드러난다. 그러므로 공에 대한 집착을 잊어버리는 사람은 후에 반드시 크게 됨을 알 수 있다.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85호 / 2015년 3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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