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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추가 귀금속처럼 소중했던 시대[br]후추 좇던 마젤란의 성공과 실패

기자명 이병두

‘위대한 탐험가 마젤란’ /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 이내금 옮김 / 자작나무

▲ ‘위대한 탐험가 마젤란’
12세기 서양에서는 후추가 귀금속처럼 귀했다. “지금은 음식점 테이블마다 놓여있어 자칫 잘못하면 모래가루처럼 엎질러지곤 하는 후추를 12세기 무렵에는 하나하나씩 알갱이를 세어 계산했고, 무게 당 가격이 은값과 같았다. 심지어는 후추로 땅을 사기도 했고, 지참금을 지불하거나 시민권을 사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향료를 절실히 필요로 한 곳은 가톨릭 교회였다. 유럽의 수천, 수만의 교회에서 미사를 집전할 때 향로를 피워 흔들려면 향료 낱알이 수억, 수십억 개가 필요했다. 그런데 유럽 땅에서는 단 한 톨도 자라나지 않았으니 결국 바다로, 육지로 끝없이 먼 길을 지나 아라비아에서 실어 와야” 했던 것이다. 명분으로는 기독교 성지 탈환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후추’를 위해 가톨릭교회가 십자군 전쟁까지 일으켰던 것이다.

그런데 “전쟁의 실패로 후추 확보 계획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유럽 곳곳, 특히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는 후추를 비롯한 ‘향료’와 그에 뒤따르는 ‘돈’을 찾아 떠나는 새로운 모험의 불길이 번졌다. “인도로 가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또 다른 길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싹튼 것”이고 “그들의 눈길이 향한 곳은 바로 바다였다.” “관세도 물지 않고 방해도 받지 않고 인도를 갈 수 있는 자유로운 항로를 발견”해서 이슬람 세력의 패권을 꺾고 ‘돈’을 벌겠다는 의지가 확고해졌다. 마젤란의 무모한 항해도 그렇게 계획되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에 대한 스페인 귀족들의 불신과 질시, 출항 이후의 선상 반란 등등 어려움을 극복하고 현재의 필리핀 세부에 닿아 ‘위대한 승리’를 맛보았지만, 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항해자는 그의 위업이 완성된 극도로 영광된 순간에 벌거숭이 섬사람들과의 보잘것없는 전투에서 어처구니없는 최후”를 맞았다.

다른 곳에서도 그랬듯이, 마젤란 함대의 경우에도 오히려 배신자들은 살아서 부와 영예를 얻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죽은 자를 이기는 법”이라는 동서고금의 사실(史實)을 확인해준 것이다.

항해 중 마젤란을 배신했던 사람들, 스페인 황제와 귀족들은, ‘마젤란이 배신자였고 비겁한 인물이었으며 자신들이 옳았다’고 해야만 하는 점에서 이해가 일치하여 마젤란의 흔적 지우기를 치밀하게 진행하였다. 항해를 함께 했던 피가페타라는 젊은이가 쓴 일기 원본도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역사에서 종종 그러하듯 국가의 허영심이 정의를 누르고 말았던”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업적이라도 기록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역사적인 행위는 행해진 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후세에 전달되어서야 비로소 업적으로 남는 것이다.”

피가페타는 “속임수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침묵했고 자신의 본분에 대해 숙고했다. 지금껏 감동적일 정도로 신심이 깊었던 성실한 젊은이는 처음으로 이 세계를 채우고 있는 부당함을 감지했다. 그는 조용히 돌아섰다. 그리고 이곳을 떠나리라 마음먹었다.” 그는 “패배자의 편에 섰으며, 웅변의 언어로 이미 말이 없는 사람의 권리를 위해 증언했다.” 그리고 새로 정착한 곳에서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담대한 함장의 명성이 더 이상 소멸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간절한 소원을 담아 여행기를 썼다. 그리고 이에 힘입어 마젤란의 대(大)항해 기록이 역사로 전해지게 되었다.

마젤란이 “모든 면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엄격했던 것처럼 운명도 이 냉혹한 군인에게 대항하고 싶어 했다. 그가 자기 영혼의 온 힘을 다해 원했던 단 하나만이 그에게 허용되었다. 그것은 지구를 일주하는 항로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귀향의 승리라는 보다 복된 부분은 그에게 허용되지 않았다.”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

[1287호 / 2015년 3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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