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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원무번뇌(原無煩惱)

기자명 인경 스님

근본적으로 마음 자체는 물들지 않는다

번뇌는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일상에서 고통을 받는 것은 번뇌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불교에서 번뇌를 말할 때 흔히 108번뇌를 이야기한다. 그만큼 번뇌가 많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왜 번뇌가 본래 없다는 것인가?

모든 사물은 인연에 의해
생겨났다가 소멸하는 법
근본적으로 쪼개고 쪼개면
실제로 존재하는 것 없어

첫째는 연기법(緣起法)에 의한 설명이다. 여기에 의하면 모든 사물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못한다. 사물들은 상호 의존돼 존재한다. 마음의 번뇌도 마찬가지로 인연을 따라서 왔다가 인연을 따라서 소멸되기에 그 자체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가 없다.

이를테면 양 손바닥을 마주치면 손뼉소리가 난다. 소리는 양손이 부딪치면서 난다. 그러면 소리 자체는 존재하는 것일까? 만약에 존재한다면, 지금도 소리가 나야하는데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반대로 소리는 처음부터 없었다고 해야 하는가? 양손을 다시 부딪치면 소리가 생겨난다. 소리는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는 인연을 따라서 생겨났다가 인연이 다하면 소멸된다고 설명하는 것이 정확하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번뇌도 그 자체로 존재하기 보다는 인연을 따라서 발생되었다가 인연이 다하면 곧 사라진다. 따라서 번뇌는 존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래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두 번째는 무아(無我)에 의한 설명이다. 사물이란 스스로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사물의 어떤 본질, 불변의 입자가 존재한다고 믿고 그것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오래된 이런 믿음은 사라졌다. 사물을 구성하는 입자들을 깊게 관찰하면 할수록 사물의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결론에 과학자들은 도달하였다.

사실 ‘나’라는 것도 실제로 실체가 존재하기보다는 언어에 의한 관습적인 믿음에 불과한 것이다. 오랫동안 사회적인 관습에 의해서 불리는 것이지, 실제적인 대상이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여기에 ‘연필’이 있다고 하자. ‘연필’이란 글씨를 쓰는 데 필요한 도구로서 연필이란 사회적인 관습적인 개념이 존재할 뿐이다. 실제로 경험하는 연필은 ‘나무’이고 흑색의 ‘심’이다. 나무와 심이 결합된 것을 연필이라고 하며, 이것들이 해체가 되면 나무와 심이 존재할 뿐 그곳에 연필은 없다.

마찬가지로 번뇌라고 하는 것도 마음현상으로서 그것들을 쪼개어놓고 관찰하여 보면, 실재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다. 이를테면 화가 났다고 한다면, 이것은 성남의 감정이다. 무시당했다는 이것은 생각이다. 인정받고 싶은 이것은 갈망이다. 뜨거운 열기, 이것은 몸 느낌이다. 이렇게 관찰하면 ‘화’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세 번째는 마음의 청정성에 의한 설명이다. 요즈음 환절기에 심한 감기가 유행하고 있다. 기침이 심하고, 온 몸이 아프다. 그렇긴 해도 근본적인 마음 자체가 아프거나 물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마도 마조대사도 이렇게 아팠나 보다. 원주스님이 찾아와 “요즈음 어떻습니까?”하고 물었다. 마조대사는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이라고 대답했다. 해님 같은 부처님, 달님 같은 부처님. 근본적으로 우리는 고통이 없다. 대상을 향해 인식하고 분별을 내지만, 근본적으로 마음 자체는 물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의 일상에서는 번뇌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가진다. 이것은 습관적인 반응에 기인한다. 일종의 조건화된 업(業)이다. 감기에 걸리면 아프고 기침이 심하게 나고 두통을 경험하기에 감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화가 나면 열기가 나고 기분이 심하게 나쁘다. 그러니 화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감기도 그렇고 화도 그렇고, 이것들은 단지 현상일 뿐, 실체는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사례로, 양손을 마주쳐보라. 그러면 손뼉소리가 난다. 이것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지금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다 말할 수 없다. 왜냐면 다시 양손을 치면 소리가 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까?

인경 스님 명상상담연구원장 khim56@hanmail.net

[1289호 / 2015년 4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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