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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김홍도, '혜능상매'

기자명 조정육

“부처의 성품 항상 깨끗하거늘, 어느 곳에 티끌 먼지 앉으리오”

▲ 김홍도, 「혜능상매(慧能賞梅)」, 종이에 연한 색, 28.4×49.5cm, 개인 소장.

"이게 무슨 뜻이야? 아무리 봐도 모르겠네. 누가 장난친 건가?"

혜능, 홍인대사에게 법 받고
16년 동안 몸 숨긴 채 살아
보림사로 돌아와 법을 설해
헌종이 ‘대감선사’ 칭호 내려

대중들이 벽 앞에 서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웅성거렸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사람, 힐끗거리는 사람, 무시하며 지나치는 사람 등 반응도 다양했다. 홍인(弘忍)대사가 다가오는 줄도 모를 만큼 소란은 계속되었다. 홍인대사는 양쪽에 적힌 게송을 쳐다봤다. 오른쪽에 적힌 게송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며칠 전에 신수(神秀)상좌가 적은 게송이었다. 얼마 전에 홍인대사는 대중들에게 게송을 지어서 바치라고 했다. 사람이 태어나서 생사고해를 벗어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오로지 공양하는 일과 복 받는 일만 구할 뿐이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홍인대사가 고심 끝에 낸 묘책이 바로 게송이었다. 만약 게송을 보고 큰 뜻을 깨친 자가 있으면 그에게 가사와 법을 부촉하여 6대 조사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때 신수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지어서 바쳤다.
 
"몸은 보리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 같나니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과 먼지 끼지 않게 하라."

홍인대사는 신수의 게송을 보고 제자들에게 외우도록 했다. 이 게송에 의지해 수행하면 타락하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수의 게송은 다만 문 앞에 이르렀을 뿐 아직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하였다. 모름지기 문 안으로 들어와야만 자기의 본성을 볼 수 있는 법이다. 문 밖에서 위없는 진리를 찾는다면 결코 얻지 못할 것이었다. 홍인대사는 대중들 몰래 신수를 불러 그 점을 일깨워주었다. 홍인대사는 신수에게 다시 한 번 더 깊이 생각한 후 게송을 지어 바치도록 했다. 그렇다면 신수가 벌써 다른 게송을 적어 놓았을까? 궁금증에 벽 가까이 다가간 홍인대사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게송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보리에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가 없네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거늘 
어느 곳에 티끌 먼지 있으리오.”

저건 분명 신수의 게송은 아니었다. 아무리 뛰어난 신수라 해도 며칠 사이에 저런 깨달음을 얻을 그릇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한 사람 밖에 없다. 혜능(慧能,638-713)이다. 땔나무를 팔아 생활하던 혜능은 한 스님이 『금강경』을 독송하는 소리를 듣고 홍인대사를 찾아왔다. 와서 아뢰기를 자신은 영남사람으로 부처되는 법을 구하러 왔다고 했다. 홍인대사는 첫 눈에 봐도 그가 법기(法器)임을 알고 시험 삼아 물었다. “그대는 영남사람이요 오랑캐 출신인데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혜능은 주저 없이 대답했다.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으나 부처의 성품은 남북이 없습니다. 오랑캐의 몸은 스승님과 같지 않사오나 부처의 성품에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 숙세에 법의 인연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었다. 홍인대사는 혜능을 방앗간에서 일하게 했다. 8개월 전의 일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혜능은 홍인대사가 기거하는 조사당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오로지 방아만 찧었다. 그런 어느 날 한 동자가 신수의 게송을 외우는 소리를 듣고 저간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혜능은 그 동자에게 부탁하여 게송이 적힌 복도로 갔다. 글자를 몰랐던 혜능은 옆 사람에게 읽어주기를 청했다. 게송을 들은 혜능은 신수가 아직 본래 자기 성품을 보지 못하였음을 알았다. 그래서 자신도 게송을 지어 글을 쓸 줄 아는 이에게 청해 서쪽 벽 위에 쓰게 했다. 신수의 짝을 이룬 게송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혜능의 게송을 읽은 홍인대사는 드디어 그에게 법을 전해줄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여러 사람들이 알까 두려워 짐짓 무관심한 척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누가 이런 쓸데없는 짓을 했느냐? 당장 지워라!”

대중들은 홍인대사의 호통소리에 깜짝 놀랐다. 평소에 좀처럼 큰 소리를 내지 않던 분이 의외였다. 몹시 화가 난 모양이었다. 대중들은 마치 그들의 잘못이라도 되는 양 벽에 적힌 게송을 얼른 지우고 뿔뿔이 흩어졌다. 그날 밤 삼경이었다. 홍인대사는 혜능을 조사당 안으로 조용히 불러 『금강경』을 설법해주었다. 혜능은 한 번 듣고 말끝에 바로 깨달았다. 그날 밤으로 법을 전해 받으니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홍인대사는 혜능에게 가사를 전하며 단박에 깨닫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대가 6대조사가 되었으니 가사로써 신표를 삼아 대대로 이어받아 서로 전하되, 법은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여 마땅히 스스로 깨치도록 하여라. 옛날부터 법을 전함에 있어서 목숨은 실낱에 매달린 것과 같으니, 만약 이곳에 머물면 사람들이 그대를 해칠 것이니 그대는 모름지기 빨리 떠나도록 하여라.”

혜능은 홍인대사로부터 가사와 법을 받고 밤중에 떠났다. 홍인대사는 몸소 구강역(九江驛)까지 전송하며 또 다시 이렇게 당부했다.

“그대는 가서 노력하여라. 법을 가지고 남쪽으로 가되, 삼 년 동안은 이 법을 펴려 하지 말아라. 어려운 일이 일어날 것이다. 뒤에 널리 교화하여 미혹한 사람들을 잘 지도하고 마음이 열리면 그대의 깨달음과 다름이 없으리라.”

남쪽으로 향한 지 두 달 정도 지나 대유령(大庾嶺)에 이르렀다. 그때쯤 홍인대사의 문중에 있던 대중들은 혜능에게 가사와 의발이 전해진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사가 탐이 났던 수 백 명의 대중들은 혜능을 쫓아 남쪽으로 향했다. 혜명(慧明)도 무리 중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목적은 가사가 아니라 법을 듣는 것이었다. 법을 청한 혜명에게 혜능이 법을 설했다.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바로 이러한 때 어떤 것이 명 상좌의 본래면목인가?”

혜능의 법문을 듣고 말끝에 혜명의 마음이 열렸다. 혜능은 혜명으로 하여금 북쪽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을 교화하라고 당부했다. 혜명은 스승의 이름을 피휘(避諱)하여 도명(道明)으로 개명했다. 혜능은 혜명과 헤어져 남쪽으로 향한 후 16년 동안 몸을 숨긴 채 살았다. 때론 사냥꾼과 생활하기도 하고 때론 나무꾼들과 함께 어울리기도 하면서 소주, 신주, 강서성, 광동성 등지를 전전했다.

▲ '홍씨선불기종(洪氏仙佛奇縱)' 권 6, '혜능대사(慧能大師)'

676년, 혜능이 39세 되던 해였다. 남해의 법성사(法性寺)에서 인종(忍宗)법사가 『열반경』을 강의하고 있을 때였다. 마침 바람이 불어 깃발이 흔들리자 두 스님이 서로 다투었다. 한 스님은 바람이 움직인다고 했고 다른 스님은 깃발이 움직인다고 했다. 곁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혜능이 한마디 했다.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아니고 깃발도 아니고 그대들의 마음이다.” 혜능의 말을 들은 인종법사는 온몸의 털과 뼈가 오싹해질 정도로 깜짝 놀랐다. 이튿날 인종법사는 혜능을 불러 바람과 깃발의 뜻을 자세히 물었다. 혜능의 가르침으로 현묘한 이치를 깨달은 인종법사는 “구족한 범부로 육신(肉身)보살을 만났다”고 기뻐했다. 혜능은 인종법사를 인연으로 삭발수계한 후 지광(智光)율사에게 구족계를 받았다. 그 후 보림사(寶林寺)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때 소주(韶州)자사 위거(韋據)가 대범사(大梵寺)에서 혜능에게 설법을 청했다. 혜능은 법좌에 올라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하고 무상계를 주었는데 법좌 아래에는 비구, 비구니, 수도인, 속인 등이 일 만 여명이었다. 위거는 혜능대사의 제자 법해(法海)로 하여금 그날의 설법을 기록해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이 종지를 이어받아 전수케 하였다. 그 기록이 바로 『육조단경(六祖壇經)』이다.

김홍도(金弘道,1745~1806)가 그린 「혜능상매(慧能賞梅)」는 매화꽃이 만발한 날 혜능이 수행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혜능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깊은 삼매에 빠져 있다. 깊은 산속인 듯 그의 앞에는 절벽이 가로막고 있다. 어떤 번뇌 망상도 혜능의 마음속을 뚫고 들어오지 못함을 상징하는 것이리라. 김홍도는 혜능이 앉은 자리 밑으로 매화가지를 그려 넣었다. 부처님이 앉으신 연화대좌 대신 매화대좌를 보는 듯하다. 위로 뻗은 매화가지에는 까치 두 마리가 앉아 있다. 혜능이 깨달은 기쁜 소식을 축하해주기 위함이다.

「혜능상매」라는 제목은 김홍도가 아니라 후대 사람이 붙인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제목을 붙였을까. ‘그윽한 향기가 구름처럼 온 하늘에 가득하다(暗香浮雲於諸天)’라고 적어 놓은 제시에서도 그림 속 주인공이 혜능이라는 단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제시는 송(宋)대의 시인 임포(林逋,967~1028)의 시 「산원소매(山園小梅)」의 한 구절인 ‘그윽한 향기 떠도는데 달은 이미 어스름(暗香浮動月黃昏)’을 참고했을 것이다. 그 해답은 『홍씨선불기종(洪氏仙佛奇縱)』에서 찾을 수 있다. 명(明)대에 간행된 도석인물화본(道釋人物畵本)인 『홍씨선불기종』에는 김홍도의 「혜능상매」와 똑같은 도상의 그림이 들어 있는데 상단에 ‘혜능대사(慧能大師)’라고 분명히 적혀 있다. 그리고 뒤이어 혜능대사의 전기가 간략하게 서술되어 있다. 독실한 불자였던 김홍도가 화보(畵譜)에 나타난 선승(禪僧)들의 모습에도 관심이 많았던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화보의 그림과 김홍도의 작품을 비교해보면 김홍도의 작가적인 역량이 출중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화보에서는 혜능이 괴석(怪石)과 나무를 배경으로 좌복(坐服) 위에 앉아 있고 주변에는 빙열(氷裂)이 있는 자기향로(瓷器香爐)와 두루마리로 된 경전(經典) 그리고 나무를 심은 화분이 놓여 있다. 여러 선사들을 소개해 놓은 그림 가운데 일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김홍도는 화보 속의 인물을 참고하면서도 인물 주변에 언덕과 매화를 그려 넣음으로써 혜능이 실제로 매화꽃이 핀 장소 속에 들어가 있는 듯 전혀 다른 인물을 창조해냈다. 단지 인물 소개를 위한 삽화의 기능에서 벗어나 감상화로서의 예술성에 주목했음을 알 수 있다. 도상적인 해석에서의 독자성 못지않게 제시의 변형도 예사롭지 않다. 그렇다면 김홍도가 적은 ‘그윽한 향기’는 어떤 향기일까. 얼핏 보면 매화꽃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일 것 같다. 그러나 선종의 역사에서 혜능대사의 위치를 생각한다면 ‘구름처럼 온 하늘에 가득한 향기’가 혜능의 법향(法香)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름처럼 온 하늘에 가득한 혜능의 법향은 무엇일까? 먼저 혜능은 정(定)과 혜(惠)가 둘이 아니라 본래로 하나임을 밝혔다. 정과 혜는 등불과 빛과 같다. 정은 혜의 몸(體)이고, 혜는 정의 작용(用)으로 정혜일치(定慧一致) 혹은 정혜일체(定慧一體)라 할 수 있다. 혜능은 법상(法相:모든 현상계의 모양)에서 집착이 없음을 일행삼매(一行三昧)라 했다. 일상삼매(一相三昧) 혹은 일상장엄삼매(一相莊嚴三昧)라고도 부르는 일행삼매는 전 우주의 온갖 물심(物心)현상은 평등하고 진여불성의 한 모양인 줄을 관찰하는 삼매다. 어느 때나 가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行住坐臥) 항상 곧은 마음(直心)을 행하는 것이다. 곧은 마음이 도량이고 정토이다. 단지 곧은 마음으로 행동하여 모든 법에 집착하지 않음이 일행삼매다.
곧은 마음으로 깨닫는 법에는 돈점(頓漸:단번에 깨달음과 점차로 깨달음)이 없다. 단지 사람에 따라 영리하고 우둔함이 있으니 미혹하면 점차로 계합하고 깨달은 이는 단번에 닦는다.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는 것이 본래의 성품을 보는 것이니, 깨달으면 원래 차별이 없으나 깨닫지 못하면 오랜 세월을 윤회한다. 수행자는 생각 없음(無念)을 종(宗)으로 삼고, 모양 없음(無相)을 본체(體)로 삼고, 머무름 없음(無住)을 근본(本)으로 삼아야 한다. 모양이 없다고 하는 것은 모양에서 모양을 여윈 것이요 생각이 없다고 하는 것은 생각에 있어서 생각을 여윈 것이요, 머무름이 없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본래 성품이 생각마다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경계에 물들지 않는 것을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

좌선(坐禪)과 선정(禪定)은 무엇인가? 일체 걸림이 없어서 밖으로 모든 경계 위에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앉음(坐)이며, 안으로 본래 성품을 보아 어지럽지 않음이 선(禪)이다. 선정은 밖으로 모양(相)을 떠남이 선(禪)이요 안으로 어지럽지 않음이 정(定)이다. 도는 마음으로 말미암아 깨닫는 것이다. 앉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성품이 스스로 청정함을 봐야 한다. 스스로 닦아 스스로 이룸이 자기 성품인 법신(法身)이며, 법신 그대로 행함이 부처님의 행위이며, 스스로 짓고 스스로 이룸이 부처님의 도이다. 사람들은 자성(自性)의 삼신불(三身佛)에 귀의한다. 즉 ‘나의 색신(色身)의 청정법신불(淸淨法身佛)에 귀의하며, 나의 색신의 천백억화신불(千百億化身佛)에 귀의하오며, 나의 색신의 당래원만보신불(當來圓滿報身佛)에 귀의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색신은 집과 같으므로 귀의한다고 말할 수 없다. 삼신불은 색신이 아니다. 자기의 법성(法性) 속에 있다. 법성은 사람마다 다 가지고 있다. 그러나 중생들은 미혹하여 밖으로 삼신부처를 찾고 자기 색신 속의 세 성품의 부처는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각기 자기의 색신에 있는 자기의 법성이 삼신불을 지니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 삼신불은 자성(自性)으로부터 생긴다. 자기의 성품에 만 가지 법이 다 갖추고 있다. 모든 법에 자재한 성품을 청정법신이라 함. 법신을 좇아 생각함이 화신이요, 생각마다 착한 것이 보신이며 스스로 깨달아 스스로 닦음이 바로 귀의(歸依)이다. 가죽과 살은 색신이며 집이므로 귀의할 곳이 아니다.

자성 안에 있는 삼신불에 귀의하면 네 가지 넓고 큰 서원(四弘誓願)을 발해야 한다. 사홍서원은 불교도로서 취해야 할 바 실천 덕목으로 네 가지 큰 맹세이다.?즉 가없는 중생을 다 건지겠다는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끝없는 번뇌를 다 끊겠다는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한없는 법문을 다 배우겠다는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불도를 다 이루겠다는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이 바로 사홍서원이다. 사홍서원은 항상 마음을 낮추고 행동으로 일체를 공경하는 자세다. 사홍서원을 행하는 것은 미혹한 집착을 멀리 여의고 깨달아서 반야의 지혜가 생기고 미망함을 없애는 것이다. 바로 스스로 깨달아 불도를 이루겠다는 다짐이다. 이것이 바로 마하반야바라밀법의 법향이다.

마하반야바라밀법은 큰 지혜로 저 언덕에 이른다는 뜻이다. 이 법의 의미는 실행에 있지 입으로만 외우는데 있지 않다. 입으로만 외우고 실행하지 않으면 꼭두각시와 허깨비와 같으나, 닦고 행하는 이는 법신과 부처와 같다. 마하(摩訶)는 크다는 뜻이다. 마음이 한량없이 넓고 커서 허공과 같으나, 다만 빈 마음으로 앉아 있지 말아야 하는데 바로 무기공(無記空:아무 생각 없이 멍청히 앉아 있는 것)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허공은 모든 것을 다 포함하고 있으니 세상 사람의 자성이 빈 것도 또한 이와 같다. 자성이 만법을 포함하는 것이 바로 큰 것이며 만법 모두가 다 자성이다. 만법을 보되 모두 다 버리지도 않고 그에 물들지도 않아 마치 허공과 같으므로 크다고 한다. 미혹한 사람은 입으로 외우고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으로 행한다. 반야는 지혜다. 어느 때나 생각마다 어리석지 않고 항상 지혜를 행하는 것을 반야행이라 한다. 반야는 형상이 없는데 지혜의 성품이 바로 그것이다. 바라밀은 ‘저 언덕에 이른다’는 뜻이다. 뜻을 알면 생멸을 여읜다. 경계에 집착하면 생멸이 일어나서 물에 파랑이 있음과 같으니 이것이 곧 이 언덕이다. 경계를 떠나면 생멸이 없어서 물이 끊이지 않고 흐름과 같으니 바로 저 언덕(彼岸)에 이른다고 하여 바라밀이라고 이름 한다. 이런 법을 깨달은 이는 반야의 법을 깨달은 것이며 반야의 행을 닦는 것이다. 닦지 않으면 곧 범부요 한 생각 수행하면 법신과 부처와 같다. 번뇌가 곧 보리다. 앞생각을 붙들어 미혹하면 범부요 뒷생각으로 깨달으면 부처다. 마하반야바라밀은 가장 높고 으뜸이며 제일이며 머무름도 없고 가고 옴도 없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다 이 가운데로부터 나와 큰 지혜로써 저 언덕에 이르러 오음의 번뇌와 진로를 타파했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이 가운데서 삼독을 변하게 하여 계정혜로 삼았다. 만약 반야삼매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바르게 반야바라밀의 행을 닦을 것이며 오로지 『금강반야바라밀경』 한 권만 지니고 수행하면 바로 자성을 보아 반야삼매에 들어갈 수 있다. 본래 성품이 스스로 반야의 지혜를 지니고 있어서 스스로의 지혜로써 보고 비출 수 있다.

그러나 작은 근기를 가진 사람은 단박에 깨닫는 이 가르침을 들으면 마치 뿌리가 작은 대지의 초목이 큰 비를 맞고 모두 다 저절로 거꾸러져서 자라지 못함과 같다. 반야의 지혜가 있는 점은 큰 지혜를 가진 사람과 차별이 없으나 삿된 소견의 장애가 무겁고 번뇌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자기의 본성으로 하여금 항상 바른 견해를 일으키면 번뇌와 세속적인 노고를 가진 중생이 모두 다 당장에 깨닫게 된다. 마치 큰 바다가 모든 물의 흐름을 받아들여서 작은 물과 큰물이 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깨닫지 못하면 부처가 곧 중생이요 한 생각 깨달으면 중생이 바로 부처다. 그러므로 만법이 다 자기의 몸과 마음 가운데 있음을 알아야 한다.

6조 혜능대사는 마음(自心)이 곧 부처라고 가르쳤다. 마음이 온갖 종류의 법을 낳고 마음 밖으로는 한 물건도 만들 수 없다고 했다. 마음 혹은 도는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고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아 불생불멸이다. 마음의 중요성을 역설한 혜능대사는 713년 8월 3일에 국은사(國恩寺)에서 천화(遷化)했다. 헌종(憲宗)은 혜능대사에게 ‘대감(大鑑)선사’라는 시호를 내렸다. 이로써 인도의 보리달마(菩提達磨,?-536)가 남북조시대에 중국으로 와서 면벽수행하며 선종(禪宗)을 일으킨 지 150여 년 만에 선종은 가장 영향력 있는 종파로 자리 잡았다. 문화의 황금기인 당나라 때는 불교가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중국에 불교가 들어온 지 300여 년이 지난 상태에서 중국 불교는 역경 사업과 교학 연구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면모를 갖추었다. 그 결과 도선의 남산율종, 현장과 규기의 법상종, 선도에 의한 정토교, 법장의 화엄종, 혜능의 선종 등 다양한 종파가 성립되었다. 그런데 당나라 말기 이후가 되면 사변적이고 현학적인 종파의 불교는 쇠퇴한 반면 실천불교를 지향한 불교는 더 많은 인기를 얻었다. 정토교와 선종이 대표적이었다. 특히 보리달마에서 시작된 선종은 혜가(慧可), 승찬(僧璨), 도신(道臣), 홍인을 거쳐 혜능의 남종(南宗)과 신수의 북종(北宗)으로 뿌리가 뻗어나갔다. 그 중에서도 대세는 역시 혜능의 남종계였다. 신수계의 북종선은 초기에는 낙양을 중심으로 크게 번성하였지만 혜능의 문하에 뛰어난 선승들이 많이 모여 결국 중국 선의 전통은 혜능의 남종선으로 이어졌다. 중국 전역에서 혜능의 남종선을 따르는 우수한 제자들의 활동이 두드러졌고 한국의 선도 혜능계에서 전해졌다. 이후의 중국불교의 역사는 혜능의 제자들의 활동무대였다고도 말할 수 있다. 앞으로 살펴보게 될 스님들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조정육 sixgardn@hanmail.net


[1290호 / 2015년 4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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