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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어머니를 업고 금강산을 구경하다

기자명 김택근

"성철은 어머니와 함께 금강산 구경에 나섰다. 늙은 공양주보살은 밥을 꾹꾹 눌러 도시락을 싸주었다. 그리고 마하연을 나서는 모자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개울이 나오면 손을 잡아 건너고, 험한 오르막길을 만나면 등에 업고 오르고, 넓고 평평한 바위가 보이면 앉아 함께 쉬기도 했다."

▲ 해동제일선원 혹은 동국제일선원으로 불렸던 금강산 마하연은 만공 스님을 비롯해 청담, 환경, 성철, 석주 스님 등이 용맹정진했던 도량이다. 사진은 1932년 모습. 민족사 제공

성철은 혈육을 멀리했다. 찾아오는 어머니마저 만나지 않았다. 심지어 돌까지 던졌다. 속세에 있었다면 천하의 불효자식이었다. 하지만 불가에 들어 법명을 받은 불자는 다르다. 성철은 흔들림 없이 정진하여 깨치겠다는 발원문(發願文) 마지막에 ‘소림문손(少林門孫) 성철’이라 밝히고 있다. 속연(俗緣)을 끊고 소림산문에 들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렇지만 두고 온 인연들이 얼마나 애틋하고 그리웠을 것인가. 자신을 기다리는 속가의 식구들을 떠올리면서 무수히 부대꼈을 것이다. 그럴수록 성철은 세속과 절연하자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성철이 남긴 글을 통해 우리는 그런 심경을 엿볼 수 있다.

‘세속은 윤회의 길이요, 출가는 해탈의 길이니, 해탈을 위해 세속을 단연히 끊어버려야 한다. 부모의 깊은 은혜는 출가수도로써 보답한다. 만약 부모의 은혜에 끌리게 되면 이는 부모를 지옥으로 인도하는 것이니, 부모를 길 위의 행인과 같이 대하여야 한다.

황벽 희운선사가 수천 명의 대중을 거느리고 황벽산에 주석하였다. 그때 노모가 의지할 곳이 없어서 아들을 찾아갔다. 희운선사가 그 말을 듣고는 대중들에게 명령을 내려 물 한 모금도 주지 못하게 하였다. 노모는 하도 기가 막혀서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가다가 대의강(大義江) 가에 가서 배가 고파 엎어져 죽었다. 그리고 그날 밤 희운선사에게 현몽하여 “내가 너에게서 물 한 모금이라도 얻어먹었던들, 다생(多生)으로 내려오던 모자의 정을 끊지 못해서 지옥에 떨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너에게 쫓겨나올 때 모자의 깊은 애정이 다 끊어져서 그 공덕으로 천상으로 가게 되니, 너의 은혜는 말할 수 없다”고 말하며 절하고 갔다 한다.

부처님은 사해군왕(四海君王)의 높은 지위도 헌신짝같이 벗어던져버렸으니, 이는 수도인의 만세모범이다. 그러므로 한때의 환몽인 부모처자와 부귀영화 등 일체를 희생하여 전연 돌보지 아니하고 오직 수도에만 전력하여야 한다.’ <수도8계 중 ‘절속(絶俗)’>

성철은 수도자들에 절속(絶俗)하라 이른다. 그것은 자신의 출가수도의 길이 험난했음을 얘기하는 것 아니겠는가. 피붙이를 두고 영원한 자유를 찾아 나선 구도의 여정이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화두를 들고 있으면, 마음을 닦고 있으면 무수한 인연들이 파장을 일으켰을 것이다. 이를 물리치기 위해 성철은 눈을 부릅떴다.

“나는 말하노니 ‘청상과부가 외동아들이 벼락을 맞아 죽어도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을 만한 무서운 생각이 아니면 절대로 이 공부할 생각을 말아라’고 하겠다.”

요즘 언론에 스님의 부고가 자주 실린다. 본인의 입적이 아니라 속가의 부음이다. 스님의 혈육이 상(喪)을 당했으니 어쩌란 말인가. 아직도 세속의 인연에 핏줄을 대고 있으니, 성철이 보면 그런 자를 중이라 하겠는가.

1940년 봄, 어머니 강 씨는 다시 보따리를 챙겼다. 성철은 금강산 마하연에서 동안거를 하고 아직 선원에 머물고 있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데 며느리가 편지 한 통을 내밀었다. 지아비에게 할 말이 얼마나 쌓여있을 것인가. 아마도 며칠 동안 궁리하여 밤 새워 눈물과 한숨을 섞었을 것이다. 강 씨는 말없이 편지를 받아 보따리 깊숙이 넣었다.

금강산 가는 길은 그야말로 천리였다. 산청을 떠나 진주로, 진주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서울로, 다시 서울에서 금강산 장안사로 가야했다. 버스로, 기차로, 또 걸어서 갔다. 강 씨는 장안사에서 다시 삼불암, 표훈사, 만폭동, 보덕암을 거쳐 마하연에 이르렀다. 꼬박 사흘이 걸렸다.

주지스님이 낯선 여인의 행색을 살폈다. 어머니는 주지에게 성철과의 속연(俗緣)을 밝혔다. 주지는 강 씨를 공양주보살 방에 머물도록 했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조심스레 선방을 찾아갔다. 성철은 어머니를 보자 대뜸 먼발치서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이렇게 먼 길을 왜 찾아오셨습니까?”

그러자 어머니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둘러댔다.

“나는 스님 보러 안 왔다. 금강산이 좋다기에 구경하러 왔을 뿐이지.”

사무치게 그리운 아들이었지만 막상 만나면 손 한번 잡을 수 없었다. 아들은 차디 찬 바위였다. 그래도 어디든 찾아가야하는 자신이 미웠다. 어머니는 이내 돌아섰다. 이런 일이 새삼스럽지 않았다. 해인사에서도, 범어사에서도, 그리고 통도사에서도 어머니는 그렇게 돌아섰다. 힘없이, 풀이 죽어 공양주 방으로 들어섰다. 늙은 보살이 노해서 소리쳤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는가. 목련존자는 어머니 찾아 지옥 불에 뛰어들었다는데, 천 리 길을 찾아온 어머니를 산속에서 내치다니. 세상에 이런 법은 없다.”

그날 밤 마하연 선방에서는 때 아닌 대중공사가 벌어졌다. ‘성철수좌가 모친 상면을 거부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를 두고 대중들이 저마다 의견을 얘기했다.

“철수좌의 구도정신은 산봉우리처럼 높습니다. 세속의 인연을 끊고 정진하겠다는 그 자세를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이미 부처님이 걸었던 길이기도 합니다.”
“그야 옳은 말이지만 그래도 철수좌가 어머니를 만났으면 합니다. 진주 산청이라면 얼마나 먼 곳입니까. 그리고 부처님께서도 혈족이 찾아오면 흔쾌히 제접하지 않았습니까.”
“글쎄요, 부처님과 철수좌를 같은 반열에 두고 얘기하는 것이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소승이 보기로는 철수좌의 공부가 범상치 않습니다. 행여 속연으로 인해 공부에 방해가 될까 걱정됩니다.”
“출가한 지 어제 오늘도 아닌데, 이제 어머니가 오셨다는 것을 속연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부처님도 찾아 온 혈족을 보살의 길로 인도하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안거 기간도 아니고, 철수좌는 어머니를 모셔야 마땅합니다.”

마침내 뜻이 모아졌다.

“아무리 세상과 인연을 끊었다지만 성철수좌는 인정이 너무 없는 것 같소이다. 우리가 차마 볼 수 없으니, 어머니를 맞이하지 않으려면 떠나가도록 하시오.”

대중공사의 결정을 성철에게 통보했다. 성철은 순순히 따르기로 했다.

이튿날 어머니와 아들이 마주보았다. 열아홉에 낳은 자식이 눈앞에 있었다. 강 씨는 아들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아들은 많이 변해 있었다. 빛나는 눈, 훤칠한 이마, 얼굴 전체에 흐르는 온화한 기운…. 자신의 뱃속에서 나왔지만 이제 자기 자식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꽉 찬 기쁨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허전함이기도 했다.

성철도 어머니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작은 키가 더 작아 보였다. 아직 오십 줄에 들어서지 않았는데도 노인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얼굴에 속기가 없었다. 주름진 작은 얼굴은 온화했다. 성철은 어머니의 마음속이 평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도 이미 불교에 빠져있음이었다. 그런데 어머니 눈이 이상했다. 한쪽 눈이 깜박거리지 않았다.

“어머니 눈이 왜 그리되셨습니까?”
“뭐 나이 먹으면 다 그렇지.”

어머니는 오른쪽 눈을 손으로 가렸다. 성철이 다가가 손을 잡았다. 어머니 거친 손이 파르르 떨렸다.

성철은 어머니와 함께 금강산 구경에 나섰다. 늙은 공양주보살은 밥을 꾹꾹 눌러 도시락을 싸주었다. 그리고 마하연을 나서는 모자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개울이 나오면 손을 잡아 건너고, 험한 오르막길을 만나면 등에 업고 오르고, 넓고 평평한 바위가 보이면 앉아 함께 쉬기도 했다.’

불필 스님이 들어서 전하는 모자의 행복한 모습이다. 길상암을 시작으로 보덕암, 만폭동, 표훈사, 삼불암 등을 둘러봤다. 어머니도 아들도 비로소 절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아들이 보고 싶어서, 아들은 오로지 화두 참구 일념에 금강산 비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어머니와 아들은 내친김에 신계사, 옥류동, 법기암, 구룡폭포, 상팔담, 만물상 등 외금강까지 두루 둘러봤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한쪽 눈으로 담은 경치였지만 어머니에게는 금강산이 곧 극락이었다.

“아들 등에 업히기도 하고 손과 팔을 잡혀 이끌리기도 하면서 보낸 일주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서질 않았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지. 하도 좋아서 극락이 따로 없다는 생각까지 했다네.”

훗날 성철도 그때를 회고했다.

“나도 어머니 덕에 금강산 구경 잘했네. 나 혼자 있으면 정진만 했지, 금강산 구경은 꿈에도 못했을 거야.”

어머니는 그렇게 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집에 있는 며느리를 생각하면 목이 메었다. 며느리의 편지를 아들에게 보여야 했지만 좀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기회만 엿보다 끝내 금강산을 떠나왔다. 묵곡리에 돌아오자 며느리에 대한 미안함이 전신을 휘감았다. 멀리 집이 보이자 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어머니는 길모퉁이에서 눈물을 쏟았다. 오래도록, 펑펑.

김택근 언론인·시인 wtk222@hanmail.net


[1290호 / 2015년 4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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