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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주기에 쓰는 반성문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1년이다. 아침 일찍 학교를 향해 집을 나서는 아이들을 하릴없이 쳐다봤다. 새삼 고마웠다. 1년 전 꽃잎 흩날리는 화창한 봄날, 꽃처럼 예뻤던 단원고 학생들이 낙화처럼 져버렸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아이들과 일반 탑승객 304명이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희생됐다. 배가 반쯤 침몰한 급박한 시간에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들 모르게 배를 버리고 도망쳤다. “움직이지 말라”는 선장의 지시를 믿고 따랐던 착한 아이들은 그대로 바다 아래로 쓸려가 버렸다.

꽃잎처럼 아이들 져버렸지만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아

자비는 용기가 있어야 가능
함께 힘모아 진실규명 나서야

TV로 지켜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배 안 유리창으로 밖을 쳐다보며 구조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정부는 단 한명도 구해내지 못했다. 가라앉아버린 배에서 가족에게 보내진, 죽음을 앞둔 아이들이 보낸 문자메시지와 동영상은 심장이 떨려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엄마, 보지 못할 것 같아 문자 보내. 그동안 고마웠고 사랑해.” 서서히 침몰하는 배에서 떨리는 손으로 문자를 보냈을 아이들의 공포와 슬픔에 가슴이 미어졌다. 그래서 한동안 불면의 밤을 보냈다. 아프고 아파서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니 슬픔도 조금씩 무뎌졌다. 일에 쫓기고 생활에 젖다보니 세월호 참사는 점차 망각의 늪으로 사라졌다.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픔을 함께 하기가 두려웠다. 시간도 뉘엿뉘엿 흘렀다.

그러나 세월호 1주기를 맞아 돌아보니 울음은 그대로였다. 도망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절망 속에서 세월호 가족들은 처절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무엇보다 주검으로도 돌아오지 못한 9명의 사람이 아직도 깊은 바다 속 세월호에 남아있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실종자 가족 대표 다윤이 아빠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청와대 앞을 찾았다. 다윤이 엄마와 아빠는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며 매일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미리 준비해간 질문은 3개를 넘기지 못했다. “딸의 뼈라도 찾아 껴안고 싶다”는 말에 애잔함이 가슴에 사무쳐서 더 이상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심정을 들여다본 순간 나도 그 아이의 부모일 수밖에 없었다. 기사를 쓰면서 틈틈이 울었다. 울음은 목이 아닌 가슴에서 나왔다. 지켜보는 사람도 이런데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마음은 어떠할까.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아프게 실감났다.

돌이켜보면 지난 1년, 세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약속에도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아파트가 불타고 지하철 환풍구가 무너져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헬리콥터도 바다에 추락했다. 특히 세월호 진상규명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침몰하는 배에서 단 한명의 아이도 구하지 못한 이유와 책임을 밝혀달라고 요구했지만 아직까지 묵묵부답이다. 오히려 정부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가족들을 살천스레 몰아댔다.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누더기로 만들고 “세금도둑” “국론분열” 등 온갖 모욕적인 언사를 늘어놓았다. 세월호 1주기인 4월16일, 그 가슴 아픈 날에 대통령은 훌쩍 외국으로 떠나버렸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지난 1년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광화문에서 노숙을 하고 단식을 하고 오체투지를 했다. 최근에는 한 맺힌 삭발식까지 가졌다.

▲ 김형규 부장
불교는 자비(慈悲)를 말한다. 자는 사랑이고 비는 함께 슬퍼함이다. 그러나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슬픔에 함께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슬플 각오를 해야 한다. 함께 가슴 아파야 한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그러지 못했다. 애써 외면하고 회피했다. 그 비겁함이 지금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그래서 이제 용기를 내야한다. 슬픔에 들어가 그 슬픔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진실을 밝히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세월호 1주기, 그것이 꽃잎처럼 져버린 아이들에게 바치는 우리 모두의 반성문이 돼야한다.

김형규 kimh@beopbo.com

[1291호 / 2015년 4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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