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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즉여제불 분호불수(卽與諸佛 分毫不殊)

기자명 인경 스님

일상 평범한 마음 그대로가 부처

돈오를 하면 곧 그대로 부처라고 말한다. 돈오의 내용이 부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승과 소승의 구분에서 비롯된 종파적인 관점도 포함돼 있다. 소승의 목표는 아라한과를 얻는 것이기에 결코 부처를 이루지 못한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반면에 대승의 가르침은 아라한이 목표가 아니라 그대로 부처를 이루는 데 있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번뇌는 본래 존재하지 않기에
마음도 부처도 중생도 아니다
바탕은 부처와 중생이 동일해
마음작용 따라 구분될 뿐이다

대승불교는 붓다의 가르침보다는 부처님이란 인격 혹은 품성을 강조한다. 가르침은 그 자체로 인격이 될 수가 없지만 품성이라면 부처와 동일하게 된다. 그렇긴 하지만 돈오를 이루면 그대로 부처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마조대사에 따르면 부처란 바로 마음이다. 부처란 역사적으로 살아계셨던 인물도 아니고, 철학적인 불성사상도 아니고, 일상의 평범한 마음이 그대로 부처라는 것이다. ‘화엄경’에서도 마음과 부처와 중생은 동일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마음이 부처라면 성내고 탐욕을 부리는 마음도 그대로 부처라는 말인가? 성내고 탐욕을 불러일으키는 마음은 번뇌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번뇌가 그대로 부처라는 말인가? 성내고 화를 내면 며칠 동안 마음이 아프고 힘들어진다. 이것을 보면 확실하게 성내고 탐욕을 부리는 것은 고통이고 번뇌에 속한다. 그런데 왜 마음이 그대로 부처라고 하는가?

이렇게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논리적인 갈등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공부방법이다. 화내고 성내는 마음까지도 부처인가? 왜 그러한가?

첫째 “성내고 화내는 마음은 본래 존재하지 않는 환(幻)과 같고 거품과 같고 꿈과 같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 성냄과 화는 곧 3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그것들은 그 자체로 존재하기 보다는 인연에 따라 발생돼 다시 인연에 따라 변화를 거듭할 것이다. 성내고 화내는 마음은 본래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것은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다. 이것이 더 정확한 대답이 아닌가? 그러면 무엇이라고 대답할까?

둘째 마음의 작용적 측면이다. 마음은 대상에 따라 인연에 따라 끊임없이 작용한다. 작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처이다. 눈으로는 보고, 귀로는 듣는다. 마음으로는 느끼고 사유한다. 이것들이 다 작용이다. 부처란 바로 이런 작용이다. 화를 내고 탐욕을 일으키는 작용이 부처이다. 화를 내는 그 모양이나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인연하여 작용하는 것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서 마음의 내용은 달라질 수가 있다. 하지만 작용하는 것은 시대와 관계없이 작용한다. 그러니 작용하는 것 자체가 마음이고 부처이다.

셋째는 작용하는 바탕은 부처와 중생의 차별이 없다는 점이다. 바탕 자체는 부처에게나 중생에게나 같다. 선한 마음이나 악한 마음이나 같다. 그것이 대상을 향해 작용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분노에 차 있다고 할 때, 분노의 마음 작용은 선한 것도 아니고, 악한 것도 아니다. 분노의 내용과 그 결과는 사회적인 윤리의식에 적용되지만 분노를 일으키는 마음 자체로서 바탕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

인간 자체는 부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다. 누가 그것을 중생이라 이름 했고, 누가 그것을 부처라 이름 했는가? 선도 생각하지 않고 악도 생각하지 않을 때, 무엇이 진정한 나의 모습인가? 그곳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고,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다. 하지만 그곳에는 선을 행하기도 하고, 악을 짓기도 하고, 인연에 따라 어른처럼 행동하기도 하고 어린아이가 되기도 한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할까? 부처도 아니다. 중생도 아니다. 물건도 아니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할까? 사실 이것은 부처이기도 하고, 마음이기도 하고, 세상의 온갖 것들이 다 여기서 나왔고, 여기로 되돌아간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할까?

인경 스님 명상상담연구원장 khim56@hanmail.net

[1291호 / 2015년 4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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