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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생명존중감

남 해치는 언행도 모두 부모에게서 배워

어느 일요일 공원을 산책하던 중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비둘기들에 둘러싸여 자신의 과자를 나누어주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비둘기들은 먹이에 집중하는 듯해도 아이의 몸동작을 주시하며 손을 높이 쳐들기만 해도 위협을 느껴 휙 날아가 버린다. 그래서인지 아이가 허리까지 굽혀가며 조심스럽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도 한 폭의 그림처럼 귀엽고 아름다웠다.

생명 소중함 알아가는 첫 장소
가정에서 본 부모 태도 따라해
자신 말고 타인 배려하는 일
폭넓은 의미에서 불살생 해당

아이는 지금 이런 기회를 통해 다른 생명체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만일 이 아이가 비둘기를 발로차거나 때렸다면 보는 이의 시선은 틀림없이 곱지 않았을 테지만 생명을 사랑하는 모습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흐뭇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에게 내재한 ‘생명존중감’이다. 인간의 유전자속에는 모든 생명체와 상호의존적으로 살아가야한다는 정보가 깔려있다. 그래서 다른 생명체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엔 흐뭇해지고 괴롭히는 장면을 보면 불쾌해진다. 불교도가 준수해야 할 오계 중 불살생에 불교의 생명관이 잘 드러나 있다. 인간은 물론 일체 미물의 생명까지도 존엄하다는 게 불살생인데 ‘증일아함경’의 삼공양품은 살생의 해악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지혜로운 자는 스스로도 살생하지 않고, 남을 시켜서도 살생하지 않으며, 남의 살생하는 것을 보면 마음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모든 존재가 상호의존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다른 생명체를 해치는 살생은 해악이라는 신념으로 살생금지를 강조했다. 이를 ‘법구경’에서도 “모든 생명은 죽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뒷받침한다. 자신을 포함해 이 세상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싫어하며 살아있기를 원한다. 내가 살아있기를 원하는 만큼 다른 생명체도 살아있기를 원하기 때문에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는 것은 인간으로서 가장 잔인한 짓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자기가족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으로 남을 해치는 언행이나 불량 먹거리 등을 생산하여 생명을 위협한다. 그런가하면 남에게 위협적인 말 등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자기이익만 추구하는 행위를 하는데 이 역시 다른 생명을 간접적으로 위협하는 행동범주에 속한다.

생명을 해치지 않고 더불어 잘 살아가려면 양보나 배려 없이는 어렵다. 그러나 부모들은 양보를 말하면서 현실적으로 자녀가 친구를 배려하다 손해라도 생기면 큰일이라도 난 듯 분개한다. “너 그렇게 살면 세상에서 살아남기 힘들고 바보 취급당하기 딱 좋다”라거나 “성공하려면 남 사정 봐주어서는 안 된다”라며 세상 살아가는 법을 코치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지혜로운 부모는 다르다. “지금 당장의 이익이 먼 훗날 큰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으며 오늘의 손해가 곧 손해가 아니다.” “언젠가는 그 손해가 다른 식으로 나에게 이로움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이렇게 세상 이치를 보고 가르치는 게 지혜롭다. 그렇다고 먼 훗날 이익을 위해 모든 손해를 다 감수하라고 강조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상대를 살리는 일, 나보다 상대에게 더 필요한 일이라면 좀 손해를 보더라도 양보할 수 있는 미덕을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폭넓은 의미의 불살생이다.

아이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는 첫 장소는 가정이다. 부모가 주변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더불어 나누는 삶을 보여주는 가정은 생명에 대한 존귀함을 가르치는 셈이다. 부모의 몰인정하고 비상식적인 행동을 보며 자라는 아이는 생명을 하찮게 여기도록 개인 지도하는 꼴이니 과보가 아닐 수 없다.

황옥자 동국대 명예교수 hoj@dongguk.ac.kr

[1291호 / 2015년 4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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