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은 믿을 수 있는 것 알면서도 중심 활용하는 원리 있음은 몰라
저울은 믿을 수 있는 것 알면서도 중심 활용하는 원리 있음은 몰라
  • 박상준 원장
  • 승인 2015.05.11 1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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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공자님의 이 말씀은 진실로 길고긴 밤에 잠꼬대하는 꿈속에 울리는 목탁이다. 이것을 승조법사께서 인용하여 뜻을 펼쳐놓은 것이다. 나는 이것으로 양생(梁生)에게 자(字)로 준다. 이 말을 저버리지 않을 수만 있다면 성인의 문하에서 골수를 이어받은 제자라고 칭할 것이다. 하물며 법문(法門)의 경우이겠는가.

진정 바꿀 수 없는 도 알면
험난함과 평이함이 일치돼
세상에 나아가고 물러나서
거처함이 같은 때가 될 것


황원형에게 용중으로 자를 준 이야기
황원형(黃元衡)에게 내가 자를 지어주었는데 용중(用中)이라고 하였다. 이에 그것을 설명한다. 대저 중(中)은 실체가 없는데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 저울의 이치로 살펴보면 그 중심이 저절로 보일 것이다. 그런데 저울은 천하의 수평을 잡는 것이고 만물의 기준을 잡는 것이다. 사람들이 반드시 믿는 것이니 비유해서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애석하도다. 사람들이 저울은 믿을 수 있는 것임을 알면서도 중심을 활용하는 원리가 여기에 있는 것은 알지 못함이여. 이는 마치 일반 사람들이 배부르게 하는 것을 먹는 것은 알면서도 배부르게 하는 것의 맛은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맛은 정미로운데 음식은 거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미롭고 한 결 같이 하여 그 중심을 잡으라”고 한 것이다. 맛을 알지 못하면 정미로움을 알지 못하고 중심을 알지 못하면 잘 활용하지 못한다. 중심을 잘 활용할 수 있다면 비로소 대용(大用)이라고 칭할 것이다. 황생은 명심하여 새길지어다.

구가가에게 자를 준 이야기
구흥제(歐興際)가 먼 곳에서 나를 찾아와 인사를 하였다. 어린 나이에 부지런히 살면서 고생을 하였다. 내가 만나보고는 그 뜻을 가상하게 여겼다. 이에 가가(嘉可)라고 자를 지어주었다. 일반적으로 가하다고 하는 말은 그런대로 괜찮은 것이라고 풀이한다. ‘그런대로’라는 말은 미진한 점이 있다는 말이다. 나는 이게 다는 아니라고 여긴다.

사람이 마음에서 하고자 하는 것에 있어서 괜찮으면 좋아하고 그렇지 않으면 싫어한다. 그런데 마음이 좋아하는 것은 끝도 없고 브레이크도 없다. 또 하고자 하는 욕심은 다 부렸는데도 브레이크를 걸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찌 ‘그런대로’라는 말로 얼버무릴 수 있겠는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괜찮은 상태에 있으면서도 그것이 괜찮은 상태임을 알지 못한다.

오직 선문(禪門)의 향상일로(向上一路)에서만 마음으로 마음을 인정하여 인가(印可)한다고 하였다. 유가의 성인께서는 가함도 없고 불가함도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불가함이 없다는 것은 불가함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므로 온 세상의 사람과 사물, 그리고 세대와 계절, 또 시기와 천명에 있어서 모든 경우에 확고해서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 진실로 바꿀 수 없는 도를 안다면 곤궁함과 영달함이 하나의 즈음에서 만나고 험난함과 평이함이 일치될 것이며 세상에 나아가고 물러나 거처함이 같은 때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이 되면 불가함이 없어질 것이다. 사람이 이 가(可)함을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어디를 가든지 때를 만나지 못함이 없다. 구생(歐生)이 이즈음을 안다면 실제(實際)라고 할 것이니 실제의 즈음에서 어찌 가(可)함을 가벼이 여길 수 있겠는가.

사수라는 자를 준 이야기
정상지(鄭尙志)가 나에게 자를 청하기에 내가 사수(士修)라고 자를 지어 주었다. 대개 도에 뜻을 둠에 닦지 않으면 도를 끝까지 이룰 수가 없다. 그런데 도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어서 본래 갖추어져 있으므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다. 하지만 물욕에 갇히고 덮이는 바람에 고유하게 가지고 있던 것을 잃어버린다. 그리하여 여섯 개의 구멍을 뚫어대면서 서로 해치고 여섯 개의 감관이 본래 직분을 잃어버리는데 이르게 된다. 이것은 어리석고 불초한 사람은 미쳐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94호 / 2015년 5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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