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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점수, 능엄경에서의 의미

기자명 인경 스님

돈오와 점수는 별개 아닌 상호통합적 관계

깨달음 이후에 닦음이 필요한가? 아니면 깨달음 이후엔 닦음이 필요가 없는 것인가? 이런 논의는 해묵은 논쟁이다. 깨달음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명상수행이 필요한 것은 오랜 세월 익혀온 습관을 단박에 수정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현실적 고려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것은 돈오와 점수의 관계에 대한 주류적인 관점이다. 하지만 깨달음 이후에도 여전히 명상수행이 요청된다면, 그때의 깨달음은 온전한 깨달음이 아니라는 비판적 관점이 있다. 이것은 깨달음이라면 응당 무시이래의 습기가 온전하게 제거되어야 진정한 깨달음이라는 관점이다.

번뇌의 원인 발견하는 수습
깨달음의 참된 수행인 진수
자신을 변혁시켜가는 증진
점수는 돈오의 구체적 실현

이런 논쟁은 수행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불교인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수행의 핵심 논쟁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깨달음과 닦음에 대한 의미를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도록 강제하기 때문이다. 돈오점수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대표적인 경전은 ‘능엄경’이다. ‘능엄경’은 중국에서는 송나라 선종에서 수행자들이 애독한 대승경전이고, 우리의 경우 고려 중기 이후로 선종의 부흥과 함께 널리 유행한 경전이다. 돈오와 점수의 관계를 논의할 때 많은 선승들이 ‘능엄경’을 인용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유명한 구절이다.

‘이치는 단박 깨닫는 것이고 깨달음에 의지하여 (번뇌는) 함께 녹아내린다. (하지만) 일은 단박에 제거되지 않고 인연을 따라서 점차로 소멸된다[理卽頓悟 乘悟倂銷 事非頓除 因次第盡].’

여기에 근거하면 점수는 돈오에 의지한 수행이다. 달리 말하면 곧 돈오는 점수에 의해 완성된다. 이치만을 깨닫고 점수라는 일상의 일로 나아가지 못하면 그것은 자기만족에만 머무는 소승(小乘)이거나 홀로 깨닫는 독각(獨覺)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능엄경’은 점수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3단계로 설명한다.

첫째는 수습(修習)의 단계로, 번뇌를 발생시키고 유지시키는 원인과 조건을 제거하는 것[除其助因]이다. 이것은 가장 점수적인 의미로서 번뇌의 조건을 소거하는 것이다. 번뇌발생에는 반드시 그 원인으로서 습기와 그것을 유지시키는 조건들이 있다. 수습의 단계는 이것을 발견하여 제거하는 일이다. 여기서 발견해 제거한다는 것은 금방 성취되는 일이 아니기에 점수라고 한 것이다.

둘째는 진수(眞修), 진정한 닦음의 의미로서 번뇌의 성품을 끊는 일[刳其正性]이다. 번뇌의 본질을 요달함으로써 이것이 가능한데, 곧 번뇌가 본래 없다는 깨달음이다. 이것을 돈오라고 말한다. 때문에 점수는 바로 돈오여야 한다. 이럴 때 진정한 닦음이라고 말한다. 사실 닦음이란 은유일 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닦음이란 거울의 먼지를 닦는 것과 같은 종류가 아니라, 그 번뇌의 본질을 깨닫는 것을 닦음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현실 속에서 점수는 이치를 깨닫는 돈오여야 하고, 이치에 대한 돈오는 바로 현실 속의 점수여야 한다. 이때 참다운 수행이라고 한다. 여기에 따르면 돈오와 점수는 서로 별개가 아니라 수행의 과정에서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는 ‘통합관계’를 가진다. 돈오는 점수에 의해서 완성이 되고, 점수는 바로 돈오의 구체적인 실현이기 때문이다. 지난 돈점논쟁은 돈오와 점수 양자를 ‘별개’라고 인식하여 미리 구획을 만들어놓고, 이들의 관계를 시간적인 ‘선후관계’로 파악하는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한다.

셋째는 증진(增進)의 단계로, 현재 나타난 업에 따르지 않고 그것을 바꾸는 작업[違其現業]이다. 이것은 점수의 사회적 의미를 함축한다.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오랜 습성에 따라간다. 물론 이것은 사회적인 교육에 의한 학습의 결과이기도 하고, 어린 시절 발달과정에서 필요한 적응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가치에 따라서 과거의 행위를 바꿔야 한다는 당위가 뒤따른다.

‘능엄경’에 따르면 점수란, 번뇌의 원인과 조건을 발견하는 수습(修習)의 단계, 번뇌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의 참된 수행으로서 진수(眞修)의 단계, 깨달음에 기초하여 자신을 변혁시켜가는 증진(增進)의 3단계로 설명한다. 또한 이것은 돈오와 점수의 관계, 번뇌와 돈오의 관계, 점수의 사회적인 의미와 관련된 시사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인경 스님 명상상담연구원장 khim56@hanmail.net

[1294호 / 2015년 5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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