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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진홍수, ‘매화산조’

기자명 조정육

뼛속 깊이 사무친 추위 견디어 한 송이 매화꽃 피워내리

▲ 진홍수, ‘매화산조(梅花山鳥)’, 명, 비단에 연한 색, 124×49.6cm, 대북 고궁박물원.

황벽희운(黃檗希運,?~850)선사는 복건성(福建省) 복주(福州) 출신이다. 어릴 때 고향 근처의 황벽산에서 출가했다. 이마 사이가 우뚝 솟아 마치 살로 된 구슬(肉珠) 같았다. 목소리는 낭랑하고 부드러웠으며, 뜻은 깊고도 담백했다. 백장선사를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전등록’에는 백장선사가 황벽선사를 인가한 내용이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희운, 황벽산에서 출가해
백장선사에게 인가 받아
재상을 지낸 제자 배휴는
선종 확산에 지대한 기여

어느 날 백장선사가 황벽선사에게 물었다.

“어디를 갔다 오는가?”

“대웅산(大雄山) 밑에서 버섯을 따고 옵니다.”

“호랑이를 보았는가?”

황벽선사가 호랑이 소리 흉내를 냈다. 백장선사가 도끼를 들고 찍으려는 시늉을 했다. 황벽선사가 백장선사를 한 대 갈기니, 백장선사가 껄껄 웃고는 돌아가 버렸다. 백장선사가 설법을 하며 대중에게 말했다.

“대웅산 밑에 호랑이가 한 마리 있으니, 여러분은 조심하시오. 늙은 백장도 오늘 한 차례 물렸소.”

황벽선사의 그릇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얘기도 전한다. 어느 날 황벽선사가 남전보원(南泉普願,748~834)선사를 찾아갔다 하직하고 떠나는데 남전이 전송하면서 말했다. “몸집은 큰데 삿갓은 몹시 작구만.” 황벽선사가 대답했다. “그렇지만 대천세계가 전부 이 속에 들어 있습니다.”

황벽선사의 소문을 듣고 대중이 구름처럼 모여 들었다. 황벽선사의 가르침은 ‘한마음(一心)이 부처다’로 정리할 수 있다. 즉 “이 마음은 밝고 깨끗하며 허공 같아서 한 점의 모양도 없다. 모든 부처님과 일체 중생은 한마음일 뿐, 다시 다른 법은 없다. 이 마음은 무시(無始) 이래로 일찍이 생긴 적도 없고, 없어진 적도 없다. 푸르지도 않고, 누렇지도 않다. 형체도 없고, 모양도 없다. 있고 없음에 속하지도 않는다. 새롭다거나 낡았다고 헤아릴 수도 없다.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다.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다. 모든 한계와 계량, 이름과 언어, 자취와 상대성을 넘어서 있다. 당체가 곧 그것이어서, 생각이 움직이면 즉시 어긋난다.”

이 한마음 이대로 부처일 뿐, 부처와 중생이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왜 이 간단한 진리를 깨닫지 못할까? 모양에 집착하여 밖에서 찾기 때문이다. 허공이 모양 없듯 마음도 모양이 없다. 모양이 없는데 중생은 상에 집착하여 모양에서 찾으려고 한다. 그러니 찾으면 찾을수록 더욱 멀어진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을 쉬고 도모하지 않으면 부처가 저절로 눈앞에 나타난다.” 이 도리를 모르기 때문에 헤맨다. 이 마음 그대로가 부처고, 부처가 곧 중생이다. 그런데 마음이라고 하면 또 그 마음을 찾기 위해 집착한다. 황벽선사는 “마음을 일으켜 생각을 움직이면, 즉시 법체와 어긋나고 모양에 집착하게 된다.” 오죽하면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께 공양하는 것이 무심도인 한 분께 공양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했을까. 무심한 사람에게는 일체의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도를 구하기 위해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

황벽선사에게는 배휴(裵休,797~870)라고 하는 뛰어난 제자가 있었다. 배휴는 재상을 지낸 재가거사로서 원래는 종밀(宗密)의 제자로 유명하다. 나중에는 황벽선사의 제자가 되었는데, 그의 저서인 ‘전심법요(傳心法要)’와 ‘완릉록(宛陵錄)’은 모두 배휴에 의해서 편집된 것이다. 배휴와 황벽선사가 만나게 된 사연은 흥미롭다. 황벽선사가 개원사(開元寺)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황벽선사는 회창법난을 만나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대중 속에 섞어서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홍주자사(洪州刺史) 배휴가 절에 행차하여 벽화를 보고 주지스님께 물었다.

“이것은 무슨 그림입니까?”

주지스님이 말했다.

“고승들을 그린 그림입니다.”

배휴가 말했다.

“고승들의 겉모습은 여기에 있지만, 고승들은 어디에 계십니까?”

주지스님이 아무 대답을 못하자, 배휴가 말했다.

“이 절에 선승은 없소?”

주지스님이 말했다.

“한 분이 계십니다.”

배휴는 마침내 황벽선사를 청해 뵙고, 주지스님한테 물었던 것과 똑같이 말했다.

“고승들의 겉모습은 여기에 있지만, 고승은 어디 있소?”

그러자 황벽선사가 큰 목소리로 불렀다.

“배휴!”

배휴는 깜짝 놀라 엉겁결에 “예” 하고 대답했다.

“배휴는 어디에 있는고?”

배휴는 이 말에 깨달음을 얻어 황벽선사에게 귀의하였다. 8,9세기의 당(唐)나라를 선(禪)의 황금시대라고 부른다. 출가사문이든 재가불자든 선문답 한 번에 깨달음을 얻었다. 그만큼 불교에 대한 공부가 기본이 된 시대였다. 수행이 일상이 되었다. 불심이 깊었던 배휴는 회창법난 이후 선종이 활발하게 살아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개원사에서 황벽선사에게 조석으로 법에 대해 묻고 들은 것을 기록해 ‘전심법요’와 ‘완릉록’을 완성했다. ‘전심법요’의 원래 제목은 ‘황벽산단제선사전심법요(黃檗山斷際禪師傳心法要)’로 857년에 간행했다. 단제선사는 황벽의 시호다. ‘전심법요’는 배휴의 서문과 배휴의 질문에 대한 황벽선사의 대답과 설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황벽선사는 선승(禪僧)이다. 그러나 답변할 때 ‘금강경’ ‘묘법연화경’ ‘유마경’ ‘대반열반경’에 나오는 내용을 인용한 것을 보면 교학에 대한 공부가 상당히 깊었음을 알 수 있다.

매화꽃이 피었다. 새도 한 마리 날아와 앉았다. 바위인가. 버섯인가. 꿈틀거리듯 기괴한 형상을 한 거대한 태호석이 구부러진 늙은 매화와 한 몸을 이룬다. 작가는 매화꽃을 그리기 위해 붓을 들었을까. 아니면 바위를 그리기 위해 붓을 들었을까. 매화나무의 가장귀진 곳에 꽃망울이 활짝 피었다. 가지 위에 앉은 새가 고개를 돌려 꽃을 본다. 매화가지를 따라 왼쪽으로 향하던 눈길이 새의 눈을 쫓아 오른쪽으로 향한다. 균형이 잡힌다.

진홍수(陳洪綬,1599~1652)는 ‘매화산조(梅花山鳥)’에 북송(北宋)의 원체화조화에서 선호한 전통적인 구도와 기법을 차용했다. 매화가지는 고전적인 기법으로, 꽃은 구륵진채법을 썼다. 꽃의 윤곽선은 가늘고 예리한 선으로 그린 반면 꽃잎과 꽃술은 모두 백분(白粉)을 칠해 꽃송이들이 풍성해보이도록 했다. 바위는 가늘고 굵은 선을 적절하게 뒤섞어 그렸다. 전통에 자신만의 해석을 곁들인 작품이다. 워낙 특이한 바위 표현법 때문에 매화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작가의 개성이 더 눈에 들어온다.

진홍수는 절강성(浙江省) 출신으로 자(字)는 장후(章侯), 호는 노련(老蓮)이다. 명이 멸망한 후에는 호를 회지(悔遲)라 하였다. 그는 인물화, 산수화, 화조, 초충에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고 판화 제작의 삽화에도 관여했다. 특히 인물화에서 과장적인 선묘를 즐겨 썼다. 그는 인물화에서 이공린(李公麟,1049-1106)과 조맹부(1254-1322)의 묘한 솜씨를 얻었다고 평가받았다. 특히 생동하는 선과 장식적인 색채로 인물의 내면적인 심리묘사와 특징을 세련되게 표현했다. 화조화에서는 명말 이후 쇠퇴해가던 화조화의 세계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매화산조’에서 느껴지는 응축된 힘은 이전 화가들의 화조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다. 그는 1645년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으나 명이 망하고 청이 들어서자 유랑길에 나서 승려가 되었다.

황벽선사는 매화시의 작가로도 유명하다.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를 매화꽃이 피는 상황에 빗대어 쓴 황벽선사의 매화시는 짧지만 심오한 뜻을 담고 있다.

‘번뇌를 벗어나는 일이 예삿일이 아니니(塵勞逈脫事非常)/ 고삐를 단단히 잡고 한바탕 공부할지어다(緊把繩頭做一場)/ 추위가 한 번 뼛속 깊이 사무치지 않으면(不是一番寒徹骨)/ 어찌 코를 찌르는 매화향기 맡을 수 있으리(爭得梅花撲鼻香)’

특히 여기서 ‘뼛속 깊이 사무치다’의 ‘한철골(寒徹骨)’과 ‘코를 찌르는 향기’를 뜻하는 ‘박비향撲鼻香)’은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에게 큰 희망을 주는 단어로 자주 사용된다. 뼛속 깊이 사무친 이 추위를 견디면 나도 꽃을 피울 수 있겠지. 이런 희망 말이다. 그래서 한철골을 뚫고 피어난 각각의 매화는 개별적이다. 수만 송이 매화꽃은 같은 시기에 무리 지어 피어나지만 꽃을 피워내는 노력은 독자적이다. 모든 꽃송이들이 저마다 개별적으로 한철골의 고뇌를 극복해야 한다. 이웃하는 꽃송이에 무임승차할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매화꽃을 보고 찬탄하는 이유다. 각각의 꽃송이들이 저마다 뼛속 깊이 사무치는 추위를 이겨내고 향기를 피우듯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작가들이 매화꽃을 그렸다. 그들이 그린 매화꽃은 매화도(梅花圖)라는 분류체계 속에 담겨 있지만 저마다의 특징과 개성을 지녔다. 진홍수의 매화는 오로지 진홍수만이 그릴 수 있는 매화다. 그는 자신의 매화꽃을 피워내기 위해 지독한 한철골을 견뎌냈다. 그의 꽃에서 그만의 박비향을 풍길 수 있는 비법이다.

달마대사에서 황벽선사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설한 가르침은 오직 ‘마음’뿐이다. 그들의 가르침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평상심이 도’라는 간단명료한 가르침이다. 그러나 그 가르침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꽃이 필 때까지 한철골을 견뎌야 한다. 내 꽃은 내가 피워야 한다. 다른 사람이 피게 할 수는 없다. 선종의 모든 조사들은 저마다 자신 안에서 매화꽃을 피워 낸 노매(老梅)들이다.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를 더 붙여야겠다. 우리도 배휴처럼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휴가 황벽선사에게 물었다.

“만약 자신의 마음이 부처라 한다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시어 어떻게 그것을 전해주셨습니까?”

황벽선사가 대답했다.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시어 오직 마음이 부처임을 전했을 뿐이다. 그대의 마음이 본래 부처임을 바로 가르쳐주신 것이며, 마음과 마음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조사라고 한다.”

아직 우리는 수행중이다. 그러니 이 질문은 버려야 할 질문이 아니다. 되풀이해서 내게 던져야 할 질문이다. 오직 마음이 부처임을 확실하게 체득할 때까지. 내 안에서 피워낸 매화꽃에서 코를 찌르는 매화향기가 흘러나올 때까지.

조정육 sixgardn@hanmail.net

[1294호 / 2015년 5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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