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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대혜 선사의 점수

기자명 인경 스님

“일은 단박 아닌 차제를 거쳐 사라진다”

돈오 이후에 점수는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왜 점수는 계속적으로 요청이 되는가? 이 점에 대한 전거를 찾아보면, 송나라 시대 간화선 확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대혜 선사의 어록이 있다. 대혜 선사는 여기서 깨달은 이후의 수행을 강조한다. 특히 ‘대혜어록’에서 편지글만 모은 ‘서장(書狀)’을 보면 간화선 수행에서 돈오와 점수의 관계를 잘 살펴볼 수 있다. 이런 점들은 이참정과의 편지글에서 잘 나타나 있다.

불법 의지해 번뇌 제거하고
행주좌와 현 행위를 고쳐야
주어진 상황 일정치 않으니
깨달음 얻은 후도 정진해야

이참정은 대혜 선사로부터 깨달음을 인정받은 사대부이다. 참정이란 벼슬이름으로 당나라에서는 재상이지만 송나라에서는 집정관을 말한다. 이참정은 대혜 선사를 천남에서 뵙고 깨달음을 얻은 이후 집에 돌아와서 다음과 같은 편지글을 남긴다.

“이제 한번 웃음으로써 단박에 얽힘이 풀리었습니다. 이 기쁨과 다행함을 가히 헤아릴 수가 있겠습니까? 대종사께서 자상한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면 어떻게 여기에 이르렀겠습니까?”

이것은 깨달음의 기쁨을 기술한 부분이다. 이 부분에 대한 대혜 선사의 코멘트는 이참정과 도반인 부추밀에게 보낸 편지글에서도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예전에 이참정이 묵조사선에 빠져있었지만, 천남에서 처음 만났을 때 ‘뜰 앞의 잣나무’ 공안에 대한 저의 게송을 듣고서 홀연히 칠통을 타파하고 한번 웃으면서 천 가지를 요달하고 백가지를 감당했습니다. 이참정공이 지금 그곳에 있으니 정말 그러한지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이 편지글에 의하면 이참정은 대혜 선사와의 문답을 통해, 특히 ‘뜰 앞의 잣나무’ 공안에 의해서 깨달음을 이루었다. 또한 대혜 선사는 한번 웃으면서 홀연히 칠통을 타파했다고 이참정을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선사가 부추밀에게 이참정의 사례를 이야기하는 것은 부추밀 역시 묵조사선에 빠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데 장애를 가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참정은 계속해 깨달은 이후 자신의 변화를 기술하면서, 대혜 선사에게 이후의 수행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묻는다.

“집에 돌아와서 옷 입고 밥 먹으며 가족과 어울리는 일은 예전과 다름이 없지만, 이미 막히고 얽힌 감정은 잊었고, 또한 기특한 생각도 짓지 않습니다. 그밖에 숙세의 습관과 오랜 장애도 또한 점차 경미해지고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이런 편지에 대해서 대혜 선사는 다음과 같이 편지글을 보낸다.

“이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왕왕 지혜가 뛰어난 상근기가 힘들어하지 않고 이것을 얻고 문득 쉽다는 생각을 내어 다시 수행하지 않습니다. 도력(道力)은 업력(業力)을 이기지 못해서 마에 부림을 당하여 죽음에 이르도록 힘을 얻지 못합니다. 천만번이고 이점을 가슴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일전에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이치는 단박 깨닫게 되니 깨달음에 의해 번뇌는 흩어진다. 하지만 일은 단박에 제거되지 않아서 차제를 거쳐서 사라진다’는 말을 일상의 행주좌와 일체에서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공께서 한 번 웃어 바른 눈을 열고서 세상의 소식을 단박 잊었습니다. …(중략)… 그러나 일상에서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에 의지해 번뇌의 원인과 조건을 바로 제거하고 현재의 행위를 고쳐야 합니다. …(중략)… 이런 이야기도 일을 마친 분상에서는 섣달의 부채와 같지만, 남쪽은 춥고 더움이 일정치 않는 까닭에 버리지 못합니다.”

이 편지글에 따르면, 깨달은 이후에도 여전히 닦음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이것을 부채에 비유해서 설명한다. 겨울엔 부채가 필요가 없지만, 남쪽 지역은 춥고 더움이 일정치 않기에 버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깨달은 이후엔 점수가 필요 없을 것 같지만 일상의 상황에서는 춥고 더움이 일정하지 않아서 여전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인경 스님 명상상담연구원장 khim56@hanmail.net

[1296호 / 2015년 5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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