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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없는 중학생 손자

기자명 법륜 스님

4살 때부터 키워온 손자가 중학교 1학년입니다. 착하긴 하지만 또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외로움이나 무서움도 많이 탑니다. 며느리는 제가 암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고 입원했을 때 아들과 싸우다 집을 나갔습니다. 아들은 이혼할 당시 사업에 실패하고 신용불량자가 된 후 지방을 떠돌고 있어서 아이를 키울 형편이 못됩니다. 어떻게 손자를 보살피는 것이 좋을까요.

손자라도 직접 키운다면
사실상  엄마 역할 맡은것
기왕 맡았으니 책임져야
버림받은 상처도 살피길

첫째, 모든 아이는 엄마로부터 사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엄마가 있는데도 엄마 아닌 다른 사람이 대신 키우는 것은 아이에게서 그 권리를 빼앗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내 딸, 내 며느리 고생 덜어주겠다고 엄마로부터 사랑받을 아이의 그 권리를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 아이한테도 나쁘고 아이 엄마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둘째, 아이를 낳은 엄마는 자기희생을 하면서 아이를 보살필 의무가 있습니다. 닭을 키워보면 닭이 평소에는 사람이 가면 도망을 가는데 병아리가 있으면 도망을 가지 않고 병아리를 날개 속에 숨기고 사람에게 덤비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어미가 새끼를 보호하려는 것은 생명 현상의 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병아리를 아낀다고 어미 닭으로부터 병아리를 빼앗아 와서는 안 되는 겁니다.

병아리는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어미닭의 품속에 있어야 합니다. 한 달 정도만 지나면 어미닭은 병아리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새끼가 어릴 때는 목숨 걸고 보호해주고 크면 독립해서 살도록 놓아주는 것이 생명의 원리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릴 때는 보호하지 않고 내팽개치다가 커서는 자식에게 집착하면서 놓아주려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은 반생명적인 행위이지요. 생명의 원리에 맞게 살지 않으면 반드시 부작용이 나타납니다.

질문자의 경우 부모가 없는 아이를 보살피고 있기 때문에 잘못은 아닙니다. 보살필 부모가 없는 아이를 거두는 것도 사람의 길이니까요. 촌수로는 손자라도 실제로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질문자는 아이의 엄마가 되는 것이지요. 기왕에 엄마로서의 역할을 맡았으니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책임지고 키워야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대학을 가든 못가든 정을 끊어줘야 아이가 잘못되지 않습니다.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사춘기에 들어서면 질문자가 보기에 지금까지는 착한 아이였더라도 말을 잘 안들을 수 있습니다. 이때 사람을 때리거나, 죽이거나, 도둑질을 하거나,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하거나, 거짓말하고 욕설하지 않는다면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야단치지 마시고 그냥 지켜봐주고 대화를 하십시오. 질문자가 엄마, 아빠 역할을 하고 있는 거니까 부모가 없어서 저런다는 생각도 하지 마세요. 단단히 마음을 먹고 내가 아무리 늙었어도 앞으로 5년 동안은 내 자식을 키울 때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보살피세요.

내가 대신해서 보살피긴 하지만 손자에게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상처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셔야 합니다. 네 살에 아빠가 사업 실패를 하고 부모가 싸우다가 엄마마저 애를 버리고 떠났다면 아이 입장에서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클 것입니다. 학교에 가보면 다른 친구들은 부모가 곁에 있는데, 지금 손자에게는 엄마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아빠가 마저도 자기 사업 때문에 돌아다니느라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역시 상처로 남았을 겁니다.

지금 할머니가 자기를 돌봐주고 있어서 겉으로 내색하지 않겠지만 속에는 늘 원망과 한이 많겠지요. 그러니까 말수가 적어지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고려하시면서 오늘부터는 내가 손자의 엄마라는 마음으로 키워보세요.

법륜 스님 정토회 지도법사

[1296호 / 2015년 5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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