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만의 무죄 판결, 강기훈과 검찰
24년만의 무죄 판결, 강기훈과 검찰
  • 강용주
  • 승인 2015.06.0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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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한를 은덕으로 갚으면 어떻습니까?(以德報怨)” 어떤 이가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가 답했다. “그렇다면 은덕은 무엇으로 갚겠느냐. 정의로써 원한를 갚으며, 은덕으로서 은덕을 갚아야 하느니라.(以直報怨, 以德報德)” 논어 ‘헌문’에 나오는 이야기다.

1991년 강기훈씨가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의 분신을 사주하고 유서를 대신 써줬다는 ‘유서대필 사건’을 아시는지. 부패와 부정, 3당 합당으로 위기에 몰린 노태우 정권이 위기타개책으로 조작한 사건이다. 6월 민주항쟁 등을 통해 자유, 평등, 인간애, 생명, 권리, 여성 등 ‘사람다운 가치’들이 강화되고 넓어지다가 이 사건을 계기로 거꾸로 역전되어 ‘보수 반동’의 역류가 몰아친 결정적인 사건이다.

지난 5월14일 대법원에서 재심 무죄 확정판결을 선고했다. 24년만이다. “사건번호 2014도2946 피고인 강기훈, 검사 상고를 기각한다.” 단 한마디 사과도 없었다. 당시 수사 검사는 “현재의 척도로 옛날에 한 판결을 다시하면 결론이 달라질 것”이라며 “사과할 일이 아니다”고 했다. 자살 방조자라는 ‘주홍글씨’는 지워졌으나 강기훈, 그에게 지금 남은 것은 재발한 간암과 힘겹게 싸우는 고통뿐이다.

강기훈씨는 ‘대법원 선고에 대한 강기훈 입장’이라는 글을 통해 누명을 씌운 검찰과 진실을 판단하지 못한 법원에 사과를 요구했다. “진정한 용기는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라며 “저를 수사한 검사와 검찰 조직은 제가 유서를 쓰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진실을 왜곡했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법원 판결에서도 과거의 잘못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한 마디 사과라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법원의 책임을 촉구했다. “저를 끝으로 다시는 이런 피해자가 없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라도 책임을 질 사람은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고 했다.

1991년 당시에 ‘죽임’의 굿판을 벌인 사법부, 정부, 언론, 지식인들 그 누구도 책임은 고사하고 반성도 하지 않는 현실이다. 오히려 지금도 죽음으로 몰아가는 사회 문화나 풍토가 바뀌기는커녕 또 다른 ‘죽임의 굿판’을 벌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조작이나 고문을 가한 사람에 대한 기소와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 ‘불처벌’은 ‘유서 대필 조작사건’이 또 다시 되풀이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불처벌의 관행’이 아니라 책임 질 사람은 책임지는 정의의 실현이 중요하다.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불처벌 투쟁은 인권에 관한 적법하고 도덕적인 투쟁일 뿐만 아니라 생존자의 지속적인 회복을 위해 필요한 기본 요인이다”고 하는 것도 그 때문 일 것이다.

강기훈씨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는 그의 고통스런 삶을 통해 권력의 어두운 심연을 드러냈고, 또 증언했다. 또한 그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진실을 밝히려는 여정에 함께한 많은 이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인간의 삶은 폭력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하지만 강기훈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그와 동시대를 함께 살아온 우리의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 ‘역사적 사건’이라는 말을 하지만 어떤 사건의 역사적 의미는 스스로 밝혀지는 것이 아니다.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새롭게 해석해내고 평가하고 그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유서대필 조작사건도 마찬가지다. 그 끔찍한 고통이 가진 역사적 의미 또한 우리가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실천해야만 생기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사건을 되새기며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것을 몸이 감당하기 어려운” 그를 대신해서 말이다.

강기훈을 버티게 해줬던 힘, 그의 어머니와 가족, 그리고 그의 동지, 친구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진실을 향한 용기를 기리며, ‘고통을 견디게 한 힘’을 기억했으면 한다. 그럴려면 강기훈씨의 말처럼 “저를 끝으로 다시는 이런 피해자가 없는” 사회가 되도록 이직보원(以直報怨)해야만 한다. 

강용주 광주트라우마센터장 hurights62@hanmail.net

[1297호 / 2015년 6월 1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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