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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서산 개심사-보원사지-마애삼존불

빛으로 새긴 ‘천년 미소’ 그리고 탑

“서러운 사람
“저 숲길 걸어서 오시라.
“눈부신 신록에
“그 눈물 다른 사람 볼 수 없으니
“실컷 우시라.
“그리고, 저 미소 받으시라.”

▲ 개심사에서 보원사지로 이어지는 산길. 두 장승이 고개 숙여 나그네를 맞는다.

그 누가 기도했다. 신록의 6월엔 푸른 희망을 갖자고.

‘숲이 우거지는 계절 초록의 계절이여/ 당신의 눈부신 색깔로 내 영혼 푸르게 물들여 주시어/ 온 세상 비추는 푸른 등 되게 하소서/… …/ 내 작은 가슴에 푸른 향기 가득 심어/ 초록 향기 필요한 자들에게 맘껏 나눠 주는/ 6월 되게 하소서’

개심사 연못도 6월의 햇살과 바람을 온 몸으로 안고 있었다. 연못가 아름드리 고목이 피워낸 잎새 사이로 들어온 햇살, 반영의 신록으로 가득찬 연못에 떨어졌다. 상왕산 자락 떠난 청량한 바람도 나그네 옷섶 한 번 툭 치고는 연못을 흔든다. 연못에 이는 ‘초록 파문’이 싱그럽다.

개심사 대웅전으로 들어서는 첫 번째 문은 해탈문. 도량에 들어서며 마음을 열어 놓았다면 대웅전 들어서는 순간 속진번뇌도 싹 사라질 것이라는 법문이다. 해탈문 넘어 대웅전 앞마당에 들어서려는 순간 멈칫했다. 무심히 지나친 문이었음에도 두 기둥의 잔상이 뇌리에 강렬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해탈문 안에 들여놓은 한 발을 거둬 몇 걸음 뒤로 물러나 두 기둥을 다시 보았다.

▲ 뒤틀린 나무 그대로를 기둥 삼은 개심사 심검당.

히야! 제 마음대로 뒤틀린 나무가 떡 하니 버티고 있지 않은가. ‘무기교의 기교’, ‘무기교의 극치’라 하던가? 단언컨대 개심사를 찾은 상춘객들, 청벚꽃과 왕벚꽃에 취해 이토록 멋지게 뒤틀린 기둥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뭐, 대단한 비밀이라도 하나 캐낸듯 가슴 한편에 흡족함이 샘솟는다. 현존 최고(最古)의 목조불상 중 한 분인 아미타여래좌상(보물 제1619호)이 앉아 계시는 대웅전 보고나니 그 옆에 당당히 서 있는 심검당(尋劍堂)에 자연스레 눈길이 꽂혔다.

어라! 저 기둥 좀 보게.

생전의 모과나무 그대로 기둥 삼은 화엄사 구층암처럼, 심검당 역시 심하게 굴곡진 목재를 그대로 살려 기둥 삼았지 않은가? 새롭게 지은 건축물을 제외한 개심사 대부분의 전각과 요사채, 그러니까 명부전과 무량수각에 이어 범종각도 제멋대로 생긴 나무 그대로 사용했다. 파격이다. 전각의 기둥 하나 거꾸로 세워 놓았어도 목수의 장난스런 해학으로 이해됨직한 파격의 개심사다.

▲ 여명이 보원사지에 내려앉고 있다.

경허 스님의 일화 한토막이 떠올랐다. 계룡산 동학사에서 있었던 일이라지! 당대 내로라하는 학승 중 한 분이었다는 진암 스님이 법회에서 한 마디 일렀다. ‘나무는 비뚤어지지 않고 곧아야 쓸모 있다.’ 그 법석에 자리했던 경허 선사가 받아쳤다. ‘비뚤어진 나무는 비뚤어진 대로 쓴다!’ 이미 개심사 심검당서 정진했던 경허 스님. 파격의 역설을 일찌감치 터득했기에 저 일갈 할 수 있었으리라.

옳거니! 고정관념부터 깨야 한다. 그래야 저 심검당에 들어가 칼 한 자루 찾을 수 있다. 반야검 쥐었다면 망설이지 말라. 무구한 세월동안 쌓아온 속진번뇌 제 스스로 끊어야만 한다. 그래야 새 마음, 새 세상 열 수 있다고 개심사는 말하고 있음이다. 상춘객들도 저 무심의 기둥보고 나름대로의 깨달음 하나씩 갈무리했을 터다. 보물 캔 듯 했던 ‘으쓱함’은 이내 ‘머쓱함’으로 돌아섰다. 혼자만의 한바탕 웃음과 함께 말이다.

상왕산 전망대에 올랐다. 인정 넘실대는 해미읍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산과 산 사이에 피어난 운무와 먼 바다가 자아내는 풍경이 일품이다. 전망대서 보원사지로 이어지는 길은 완만해 사색하며 걷기에 그만이다. 숲 속의 두 장승이 나그네를 맞는다. 보원사지다.

▲ 보원사지 당간지주에 걸린 6월의 저녁노을.

가야산 일대에 퍼져있던 99개의 암자를 호령한 보원사! 지금, 그 터에는 5층석탑과 당간지주, 석조, 그리고 고려 광종 때 왕사였던 법인국사 탄문 스님의 탑비만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때 출토됐던 고려 철불좌상과 철조여래좌상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야만 볼 수 있다. 한 때 1000여명의 대중이 머물었다는 당대 최고 사찰 중 하나였던 보원사가 어찌 쇠락했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사지 지천에 피어난 야생화는 보원사의 흥망성쇠를 보았을까? 언제쯤 그 영광 이 땅에 재현할 수 있을까? 그래도 저렇게 작은 보원사라도 서 있으니 희망은 있다. 보원사 복원불사 원력을 세운 불자들이 힘을 모아 보원사지의 한 모퉁이 땅을 어렵게 사들여 지은 인법당이다. 저 숲속에 계시는 용현리 마애삼존불 성역화도 발원한 보원사다.

▲ 용현리 마애삼존불로 가는 숲길의 신록이 싱그럽다.

마애삼존불 친견하러 가는 200m길도 신록의 푸른 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박종숙의 시처럼 ‘숲처럼’ 살아야 하는데. ‘그저 묵묵하게 바람에게 길을 열어주고 서로를 보듬는 삶’이어야 하는데 말이다. ‘너도 크고 나도 크는 거대한 숲의 세상’처럼 이 세상도 그렇게 가꿔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 세상의 관문을 여는 열쇠는 미소일 게다.

누가 그랬다. ‘미소는 주는 사람 가난하게 하지 않고, 받는 사람 부유하게 한다’고. 그렇지만 ‘청하거나 훔칠 수 없다. 미소는 주지 않는 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미소가 가장 아름다울까? 아니, 어떤 미소를 지으며 살아야하는 걸까? 그 화두 풀어줄 분이 저 숲에 계신다. 세계 최고의 미소, 천년의 미소를 머금은 부처님 마주할 기대감에 가슴은 연신 콩닥거린다.

▲ 이른 아침의 빛은 삼존불의 미소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아, 삼존불이다!

시간이 멈췄다. 동서남북 사방과 위, 아래의 공간도 사라졌다. 세 분의 미소와 나그네 한 사람만 존재한다. 나그네도 빙그레 웃는다.

저 삼존불, 당대 최고의 솜씨 보인 장인이 빚었을 것이라고? 아니다. 망치와 징으로 새겨 간 불보살님이 아니다. 바위 속에서 좌선 하시던 삼존불, 어느 날 ‘쑤욱’ 나오신 게다. 푸른 향기보다 진하면서도 은은한 푸른 미소 ‘나’에게 보이려 나오신 게다. 생이 늘 아름답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생 부여잡으며 사랑해야 함을 알려주시려, 저 여래 두 보살과 함께 미소 품고 나오신 게다. 이 땅에 환한 가피내리려 애써 나오셨던 게다.

아이에게 어떤 미소 지으며 살아야 하는 지 말해주고 싶거든 저 숲 길 걸어서 오시라. 서러운 사람도 저 숲길 걸어서 오시라. 눈부신 신록에 그 눈물 다른 사람 볼 수 없으니 실컷 우시라. 그리고, 저 미소 받으시라.

채문기 본지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도움말]

 

길라잡이
들머리는 서산 개심사 주차장. 개심사 연못과 해우소를 지나 대웅전 옆으로 난 등산길을 따라 400m 오르면 쉼터(개원사 입구)다. 오른쪽으로 가면 전망대로 향하는 길이고, 왼쪽으로 가면 보원사지로 가는 길. 전망대에 올라 해미읍과 멀리 펼쳐져 있는 바다를 꼭 보기 권한다. 평지길로 불과 300m 거리다. 개심사 입구 쉼터에서 보원사지 입구 쉼터(700m)까지는 완만한 길이다. 다음 1.2km 길은 내리막 길. 보원사지에서 마애삼존불까지는 1.3km거리다. 개원사 일주문에서 보원사지까지는 쉬엄쉬엄 가도 1시간 30분이면 충분. 보원사지에서 마애삼존불까지는 20분. 개심사와 마애삼존불까지의 도로상 거리는 13.6km. 상점에서 택시를 부탁하면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이것만은 꼭!

 
개심사 대웅전 : 보물 제143호. 약한 배흘림 기둥과 민흘림기둥들이 섞여 있다. 중창(1484년) 때 섞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측하고 있다. 다포(多包) 초기양식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으며 ‘우주의 귀솟음과 안쏠림 수법이 잘 나타나 있는 아름다운 건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보원사 : 보원사지 바로 옆에 인법당으로 조성된 보원사가 있다. 마애삼존불 성역화와 보원사 복원 원력을 갖고 세워진 법당이다. 사지를 돌아보고도 보원사에 조성된 부처님을 찾는  불자들이 많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1298호 / 2015년 6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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