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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목우행, 대치

기자명 인경 스님

일어나는 번뇌를 반야의 힘으로 대항해 다스려라

‘반야(般若)에 의지하여 무명(無明)을 대치(對治)하지 않는다면, 어찌 큰 휴식[大休]이 있겠는가?’ 깨달은 이후 목우행에 대한 ‘수심결’의 말이다. 이것은 깨달은 이후의 수행은 반야에 의지한 수행이고 그것의 구체적인 모습은 대치(對治)라는 의미이다.

대치, 병을 다스리는 처방
화를 내게 한 원인을 살펴
긍정적인 면만 생각하면서
크게 소리 내어 웃어보라

대치란 의학적인 용어로서 어떤 질환을 상대하여[對] 약으로써 다스린다[治]는 의미이다. 병에 대해 약은 적절한 처방이다. 이런 치료적 은유를 불교에서도 자주 사용한다. 부처님을 의왕(醫王)으로 보는 것은 대표적 사례이다. 팔만사천의 법문이 왜 필요한가? 그것은 팔만사천의 번뇌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도 여기에 해당된다. 법문이란 곧 처방전이다.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곳에 상황이나 근기에 딱 맞는 맞춤형의 방편적인 성격을 가진다.

이를테면 ‘법구경’에서는 ‘성남은 자애의 마음으로, 인색함은 보시로써 이겨내라’고 말씀하신다. 성남과 자애는 동시에 함께 작용할 수는 없다. 성남이 있으면 그곳에는 자애가 없고, 자애가 있으면 그곳에는 성남이 없다. 인색함이 있으면 그곳에는 베푸는 마음이 없고, 베푸는 마음이 있으면 그곳에는 인색함이 없다.

성남과 자애, 인색함과 보시의 마음은 서로 ‘대치(對治)관계’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이런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 치료적인 수행전략이다. A라는 물질은 B라는 물질과 양립할 수가 없다면, 이들은 대치관계이다. 우울증에 대해서 항우울증 약은 우울증에 대항하는[對] 치료적 작용[治]을 한다. 이점은 마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만약에 어떤 사람에게 화가 났다면 그 사람에 대해서 그 순간에 자애의 마음을 가질 수가 없다. 하지만 반야의 힘에 의지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첫 번째는 화가 난 마음을 충분하게 경험하는 것이다. 회피하지 않고, 무엇으로 말미암아서 화가 났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바로 반야이다. 그러면 이 반야의 힘으로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마음이 감소될 것이다.

그러면 둘째로 이번에는 자애명상을 해보라. 화가 난 대상, 그 사람의 긍정적인 부분을 의도적으로 떠올려보라. 그 사람은 언제나 나를 공격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하게 좋았던 시절이 있었고, 그 분의 장점을 떠올려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떤가? 마음이 편안해지고, 그분에 대한 분노가 사라지고, 한결 기분이 좋아지면서 그분을 이해하는 마음이 새싹처럼 움트지 않을까? 자애의 마음이 생겨나지 않겠는가? 셋째, 여기까지 왔다면 미소를 지어보라. 가만히 웃어보라. 그러면 어떤가? 점점 더 크게 소리를 내서 웃지 않을까? 아니 의도적으로 소리를 내서 웃어보라.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어느 날 밤에 덕산선사는 산책을 했다. 그런데 그때 스님은 달이 구름 속에서 벗어나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에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주 크게 웃기 시작했다. 얼마나 크게 웃었는지 아래 동네까지 아주 크게 들렸다고 한다. 옛날부터 웃는 얼굴에 화를 낼 수가 없다고 했다. 성난 얼굴과 웃는 얼굴은 함께 할 수가 없다. 물론 신화 속에서 한쪽은 울고 한쪽은 웃는 야누스와 같은 얼굴도 있다. 하지만 깨달은 이후의 수행에서 삿된 견해나 집착에 대해 깨달음의 반야로써 대치한다면, 반드시 그곳에서 우리는 커다란 휴식을 경험할 것이다.

돈오점수의 목우행에서 우리는 깨달았지만 여전히 번뇌가 출몰한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세세생생 오랜 습성은 금방 소멸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혜 선사의 말처럼 강남은 겨울에도 날씨가 변덕스러워 부채를 버릴 수가 없다. 깨달은 이후의 수행은 개인적인 습성에 따라서 다르게 적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깨닫기 이전과 이후가 다른 점은 깨닫기 이전에는 반야의 힘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깨달은 이후에는 반야의 힘을 얻었다. 번뇌가 일어나도 반야의 힘으로 대항하여 다스릴[對治] 수가 있다. 바로 이것이 크게 달라진 점이 아니겠는가?

인경 스님 명상상담연구원장 khim56@hanmail.net

[1299호 / 2015년 6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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