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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위기’ 기만극에 죽비를

기자명 손석춘

그리스를 보라. 한국 사회에서 정치가 경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신자유주의들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살천스레 부르대온 말이다. 그들은 그리스가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 정치로 ‘퍼주기 복지’를 했기에 나라가 거덜날 위기에 몰렸다고 주장해왔다. 2010년대부터 ‘복지’가 한국 사회에서 주요 의제로 설정되어 왔을 때, 그 반대론자들이 즐겨 인용했던 나라도 그리스였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 했던가. 그리스 경제 위기가 다시 쟁점이 되고 있는 오늘, 적잖은 사람들이 그 말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아니다. 시각 차이는 있게 마련이므로, 사실 관계부터 명확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 사회의 복지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복지 지출이 과다해 위기에 빠졌다고 개탄한다. 하지만 사실 관계를 짚어보면 전혀 아니다. 그리스의 복지는 유럽 사회에서 대단히 낮은 수준으로 단 한번도 유럽의 평균 수준을 넘은 적이 없다.

그리스에서 사회복지 지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20.6퍼센트다. 유럽연합의 평균에도 못 미친다. 프랑스는 복지 비중이 34.9퍼센트이고, 영국은 25.9퍼센트, 독일은 27.6퍼센트다. 유럽연합 27개국의 평균 사회 보장지출 총액은 GDP의 26.9퍼센트를 차지한다. 심지어 북유럽 덴마크의 사회 보장 지출은 GDP의 거의 3분의 1 수준이다. 유럽의 모든 나라가 그리스의 복지 수준을 뛰어넘는다.

기실 한국 언론만이 아니다. 서방 언론들도 그리스를 복지수준이 높은 나라로 보도해왔다. 왜 그럴까. 홍콩의 대표적 경제학자 가오롄쿠이는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리스의 복지 수준을 사실과 다르게 ‘고복지 사회’로 낙인찍는 이유를 날카롭게 풀이했다. 그리스에 빌려준 돈을 어떻게든 받아내려면 일단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하는데 그 가장 확실한 방법이 사회구성원들의 복지를 줄이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가 그리스를 ‘고복지 사회’로 기만하는 여론전을 펴나갔다.

그렇다면 그리스 위기의 원인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나온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두 가지로 간추릴 수 있다.

첫째, 탐욕이다. 국제투명성기구는 부유층의 탈세와 부정부패를 그리스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부유층의 천박한 행태는 수영장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리스는 집 마당에 개인 수영장이 있으면 한 해 500유로(한화 60만 원) 세금을 내야 한다. 2008년 수도 아테네의 가장 부유한 지역에서 수영장이 있다고 신고한 사람은 모두 324명이었다. 하지만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터넷으로 누구나 볼 수 있는 위성사진으로 분석한 결과는 놀랍다. 수영장은 6,974개였다. 그동안 부자들이 탈세를 해온 것이다. 그리스 ‘지하 경제’ 규모는 OECD 가운데 가장 크다.

둘째, 과시적 낭비다. 그리스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개최하며 과도하게 돈을 쏟아 부었고 아직도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 또한 어떤 정치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스 사회가 스웨덴 정도로 투명했다면 2000년 이후 10년 동안 국가 재정에서 흑자를 낼 수 있었다는 미국 연구소의 보고서도 나왔다.

두루 알다시피 복지 수준이 높은 나라는 그리스가 아니라 북유럽이다. 북유럽국가들은 신자유주의로 빚어진 세계경제 침체 국면에서도 경제가 가장 튼실하게 돌아가고 있다. 복지로 내수시장이 튼튼하고 그 결과 기업도 이익을 보는 선순환구조가 갖춰졌기 때문이다.

결론은 명쾌하다. 그리스 경제의 위기는 복지를 비롯해 정부 개입이 너무 많아서가 아니다. 정반대다. 정부가 제대로 개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스가 복지 때문에 망했다며 한국 사회의 부익부빈익빈을 모르쇠 하는 윤똑똑이들의 탐욕에 죽비를 들 때다.

손석춘 건국대 교수 2020gil@hanmail.net

[1301호 / 2015년 7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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