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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현 전 총무원장 재심판결의 아쉬움

기자명 하림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5.07.27 14:10
  • 수정 2015.10.22 12:06
  • 댓글 0

1993년 동국대를 다닐 때였습니다. 서울 화계사 인근에 백상원이라는 비구스님 기숙사에서 산길을 걸어 40분쯤 거리에 삼성암이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법당기도를 맡아서 할 때입니다.

80살 노인의 징계 감형보다
대중 뜻 못 모은 게 아쉬워
무엇이든 대중 지혜 모을때
사부대중 공동체 실현될 듯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스님께서 독성각 기도를 열심히 하고 계셨습니다. 함께 살다보니 이런 저런 얘기를 할 기회가 되어서 이곳에 부전스님으로 오시게 된 사연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강화도 어느 사찰에서 10여년 가까이 창건하다시피 한 절에서 주지로 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스님이 자기가 주지라고 하면서 임명장을 가지고 와서는 나가라고 하더랍니다. 이상해서 총무원에 알아봤더니 주지를 아무런 통보도 없이 새롭게 발령한 것입니다. 순박하고 착한 스님은 영문도 모른 채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제 기억으로도 그 당시 그런 절들이 전국에서 한두 군데가 아니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무슨 사연인지 주지가 두 명이 되고, 많게는 세 명이 임명장을 받아 내려왔습니다. 그러니 다툼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절들이 온통 싸움판이 되었습니다. 용역으로 불리는 불량배들이 종무소를 접수하고 공포 분위기에서 직인을 인수하고 나면 새로운 주지로 인정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런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총무원을 가려고 하면 차마 갈 수가 없었습니다. 총무원장실 바로 아래층인 3층은 호법부가 있고 정부의 정보원과 용역이 출근하다시피 했습니다. 이런 곳이 조계종 총무원이라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종도들은 총무원장을 맡았던 그 분의 임기가 끝날 때만을 기다리며 참았습니다. 그분이 물러나면 새로운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또 한 번 총무원장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마침내 전국의 스님과 불자들이 뜻을 모아 그 분의 3선 길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20여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최근 조계종 재심호계원에서 20여 년 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그 분에 대해 공권정지 3년으로 징계를 감형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20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제 그 분도 80살의 노인이 되셨기에 그분의 징계감형은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기왕 그렇게 할 것이라면 보다 현명하게 처리할 수는 없었는지 아쉬움이 마음 한 가득입니다. 대중들과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의견을 듣고 뜻을 모아 처리할 수는 없었는지 의문이 풀리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일을 지켜보면서 20년 전의 일을 떠올리고 걱정을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20년 전 그분이 총무원을 쥐락펴락했던 그 때의 상황이 지금 그대로 재현되는 것 같다는 우려도 마음속에서 지울 수 없습니다.

20년 전 종단에 대한 한 사람의 과욕이 많은 스님들을 힘들게 했고 국민으로부터 불교가 지탄을 받게 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모습을 보이지 말자고 당시 많은 스님과 불자들이 지혜를 모았습니다. 그런데 그 지혜로는 부족했나 봅니다. 아니 그 지혜를 지켜낼 수 있는 역량이 부족했나 봅니다.

20년 만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느낌입니다. 종단의 소임이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종단에서 부여된 소임은 스님들과 종도들이 바르게 수행하고 신행생활을 하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행정적인 뒷받침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총무원장 스님도 그것을 누구보다 더 잘 하겠다고 다짐하고 출마하신 분이 아니었던가요? 그런데 지금 그런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대중과 소통하지 않는다면 대중들은 외면할 것입니다.

▲ 하림 스님
미타선원 주지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듯이 총무원장의 권위는 종도들로부터 나옵니다. 지금 상황을 보면 뭔가 주객이 전도된 느낌입니다. 종단에서 존경받는 분들이 종단을 떠나려고 하고 포교와 전법으로 지역을 대표하던 스님들이 자리에서 밀려나고 있습니다. 앞에서는 화합을 하자고 하면서도 결과는 이를 역행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통제하고 종도들 위에서 군림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지금까지 존경받고 포교를 이끌던 스님들이 왜 떠나야만 하는지 이젠 깊이 살펴보아야 할 때가 온듯합니다. 서로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대중들에게 뜻을 묻고 의견을 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불교가 늘 꿈꾸는 사부대중 공동체 실현일 것입니다. 이런 작업들이 계속될 때 우리 종단도 마침내 희망의 씨앗을 틔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른 새벽 혼자만의 푸념이 아니길 간절히 발원해 봅니다.

[1304호 / 2015년 7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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