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00인 대중공사는 왜 하는 걸까?

언론에서 진실은 생명이다. 그럼에도 무엇이 진실인지는 쉽지 않다. 오랜 논란 끝에 미국 언론학계에서 내린 결론이 있다. ‘진실은 과정’이라는 명제가 그것이다. 언론이 다루는 사안은 이해관계가 얽혔거니와 당사자들 개개인의 언술이 언제나 정직하다고 가정할 수도 없다. 따라서 진실은 단숨에 드러나지 않는다. 진실을 과정으로 정의한 언론학에서 가장 중요한 미덕은 그래서 ‘수정 가능성’이다. 언론인이 진실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관계 당사자들을 폭넓게 취재하고 자신의 판단을 수정하는 데 열려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진실은 단편적 사실의 취재가 아니라 대화이어야 한다는 명제가 거기서 비롯한다.

언론학계에서 정의된 ‘진실’은 언론인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첨예한 갈등을 빚은 사안일수록 자세히 톺아보면 서로 ‘오해’하는 지점들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조계종단은 최근 서의현 전 원장 사면 논의로 사부대중 100인 공사를 열었다. 할 일이 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붓다의 가르침을 올곧게 실현하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하루 내내 그 자리에 모였다. 다행히 결의도 나왔다. 하지만 그 결의에 따라 후속조처들이 이어지고 있지 않다. 왜 그럴까. 100인 공사의 완강한 소수파가 음으로 양으로 ‘활약’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토론 과정에서도 드러난 경직성이다. ‘수정 가능성’에 열려있어야 한다는 미덕은 물론 소통의 전제인 경청의 자세가 크게 부족하다. 아직도 대중 결의를 묵살하는 이들 가운데는 종단개혁 주체들이 이미 현 종단의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다고 부르댄다. 또는 서의현 전 원장의 사면도 개혁의 한 과정이라는 ‘자비론’도 편다.

하지만 자신의 탈종을 언론에 밝혔고 멸빈된 지 20년이 더 지난 사람, 그 기간 내내 조계종 안팎에서 더는 종단스님이 아니라고 인식된 이의 사면이 왜 새삼 쟁점이 되어야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사면은 절대 안 된다거나 반드시 풀고 가야한다고 단언할 필요는 없다. 얼마든지 사면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중도와 연기법에 근거하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종단개혁의 실천 수준이다. 당시 내건 개혁이 지금 잘 구현되어 있다면, 사면도 무방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아니다. 개혁이 온전하지 않기에 올 초부터 100인 공사까지 벌이고 있지 않은가. 당시 개혁주체들이 기득권화 됐다고 판단한다면, 더욱이 사면을 주장해선 안 된다. 더 나은 개혁으로 나가야 할 때, 자칫 개혁 자체에 퇴행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특정인 사면’에 종단 안팎이 힘을 탕진할 때인가. 돌연 사면이 굳어진다면, 개혁의 표류 또는 역류 가능성은 더 높아질 수 있다.

둘째, 당사자의 참회다. 과연 그는 참회하고 있는가. 과문일지 모르지만, 종단 권력을 움켜쥐고 온갖 비리를 저질렀던 그가 참으로 참회한다는 소리를 나는 아직 듣지 못했다. 종단개혁을 불러온 자신의 과오를 처절하게 깨쳤다면 오늘 그의 언행은 사뭇 다르지 않을까. 100인 공사 다수의 의견도 사면에 부정적이지만은 않았을 터다. 그의 참회 앞에 사부대중의 가슴이 시리고 종단개혁이 원만하다는데 대다수가 공감할 때, 사면을 논의할 수 있다. 100인공사가 일단 호계원부터 책임을 물은 이유다. 그런데 왜 아직 머뭇거리고 있는가.

100인 공사 결의조차 종단 고위직들이 무시하겠다면 도대체 그 공사는 왜 하는가. 그곳에 참여한 사부대중들 두루 그 시간에 할 사회적 일들이 수북하다. 아직도 사면해야 할 온갖 이유를 찾는 참석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위로부터도 아니고 공론장에서 아래로부터 다수 의견이 확인되었다면, 결의를 따라야 옳다. 94년 종단개혁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가 ‘종단 민주화’다. 더구나 호계원장 스님은 대중공사 끝자락에 자신의 거취를 대중에 물었다. 곧 이은 결의에서 대중의 답은 또렷했다. 대중공사의 구체적 결의조차 흐지부지될 때, 그 책임은 100인 공사를 제안한 총무원장 스님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종정 스님을 위해서라도 그렇다.

손석춘 건국대 교수 2020gil@hanmail.net
 

[1306호 / 2015년 8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