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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사랑과 자비

늦은 밤 귀가하는 자녀가 안쓰럽나요?

“아빠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알아?” “사랑해 딸(아들)!” 부모가 자녀에게 표현하는 사랑의 말이다. 사랑(love)이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달콤하며 마음을 부드럽게 해준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사랑해’를 애용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교는 사랑이라는 말보다는 자비(慈悲)라는 말을 사용한다. 부처님께서 중생의 고통을 위로하고 덜어주신 것은 사랑을 넘어선 연민이며 자비심이었다. 그래서 불교는 자비라는 말을 선호한다.

사랑은 감정적…자비는 베풂
고통 덜어주려는 연민 앞서야
자녀 출세 사랑하는 태도 지양

사전적 의미의 사랑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며,자비는 ‘즐거움을 주고 괴로움을 없게 함’이다. 정의한바 사랑이 내적 감정이라면 자비는 베풂에 초점을 둔다. 사랑은 감정이라서 상황에 따라 늘 변하며 일어남과 사라짐을 반복한다. 좋은 상황에서 기쁨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 부정적 상황에서는 미움과 증오 등 부정적 감정이 일어난다.

반면 자비는 상대를 즐겁게 만들고 고통은 감소시키려는 베풂을 동반한다. 따라서 내 욕망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사람에겐 자비실천은 어렵다. 예를 들어 교사에게 매를 맞아 종아리에 멍이 시퍼렇게 든 아들을 본 아빠가 분노가 일었다. 즉시 학교로 달려가 해당교사를 폭행했다면 동기야 어쨌든 자비라고 말할 순 없다. 왜곡된 부모사랑의 단면이다. 자비로운 아빠라면 학교로 달려가 분풀이를 하는 대신 상처 입은 아이마음을 먼저 위로하고 헤아려 편안하게 감싸줄 것이다. 이처럼 자비는 단순한 감정에 휩싸여 교사를 욕보이기 보다는 아이의 고통을 먼저 덜어주려는 연민이 앞선다.

사랑과 자비는 일종의 관념이지만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는 동력을 부여한다. 즉 선한 삶을 지향하며 인간을 성숙시키는 정신적 자양분을 발생시킨다. 하지만 순수한 사랑에 욕망이 개입되면 순수함은 사라지고 불행을 야기하게 된다. 왜일까? 순수함을 잃으면 그곳엔 각종 악행이 싹트기 때문이다. 중고생 자녀를 둔 부모는 밤 11시가 되어야 힘든 하루일과를 마치고 귀가하는 아이모습에 안쓰러움보다는 만족감이 더 크다. 왜? 아이의 장래를 더 사랑한 때문이다. “내가 잔소리하는 것도 다 너를 사랑해서 잘되라고 하는 거야” “내가 왜 밤늦도록 일하며 고생하겠니? 그건 다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서지, 너는 그저 아무 걱정 말고 공부만 하면 돼.” 이와 같은 사랑방식에 자녀는 고통 받는다. 사랑이 욕망으로 얼룩지면 대가나 보상을 원한다. 자녀가 출세해야 한다는 은연중의 메시지는 곧 대가를 의미하기에 설령 그것이 헌신적이라 하더라도 자녀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며 오히려 부모에게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아함경’에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는 고통을 여덟 가지(八苦)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인 애별리고(愛別離苦)”이다. 영원하지 않는 사랑을 붙잡아 두려고 집착하니 고통이 따른다는 말이다. 그래서 불교는 일시적 감정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사랑보다는 상대의 고통을 가엾게 여겨 덜어주려고 노력하는 자비에 가치를 둔다. 자비는 내가 좋아서 즐겁게 해주려는 욕구도 있지만 상대방의 처지를 깊이 헤아리고 괴로움을 없애준다는 점에서 나를 내려놓는 하심을 필요로 한다.

만일 자비에 욕망이 개입되면 그건 자비가 아니다. 자비는 개인적 욕망을 배제한 이타적 행위다. 자녀를 가장 편안하게 해주는 부모는 욕망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자녀입장에서 자녀를 온전한 마음으로 경험하고 도와줄 수 있다. 그것이 자비다.

황옥자 동국대 명예교수 hoj@dongguk.ac.kr
 

[1308호 / 2015년 9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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