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법승 여정 따라 떠난 순례 길에 감로의 꽃비 내리고
구법승 여정 따라 떠난 순례 길에 감로의 꽃비 내리고
  • 김규보 기자
  • 승인 2015.09.14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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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총 스님과 함께하는 실크로드 불교유적순례

▲ 조계종 교육원이 9월4~11일 실시한 ‘실크로드 불교유적순례’에 동참한 스님들은 험난한 여정을 마다하지 않았던 구법승들의 간절한 발원을 되새길 수 있었다.

부처님 법의 시원(始原)을 찾아 험난한 사막을 건넜던 구법승들의 여정이 머나먼 동방에서 온 순례자들의 마음을 신심으로 장엄했다. 구법승들의 숭고한 발자취가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실크로드, 그 척박한 대지에서 순례자들은 부처님 법향을 널리 퍼뜨릴 것을 서원하고 또 서원했다.

조계종 교육원, 9월4~11일
48명 실크로드 순례 동참
막고굴·베제크릭 등 참배
“얼마나 많은 옛 스님들이
구법의 길에 목숨 바쳤나”


조계종 교육원(원장 현응 스님)은 9월4일 ‘혜총 스님과 함께하는 실크로드 불교유적순례’의 장도를 시작했다. 교육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연수교육의 일환으로 진행된 순례에는 전 포교원장 혜총, 교육부장 진각 스님과 인보, 법성, 각륜, 탄공, 성전 스님 등 48명이 동참했다.

▲ 순례단 지도법사인 전 조계종 포교원장 혜총 스님.

순례 행렬은 실크로드의 시작점인 서안(西安)에서 출발했다. 9월4일 서안공항에 도착한 순례단은 곧바로 부처님 지골사리가 발굴된 법문사(法門寺)로 발걸음을 옮겼다. 법문사는 후한 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1800년 역사를 지니고 있다. 본래 이름은 아쇼카왕사였으며 당시 스님 5000명이 수행했을 정도의 규모를 자랑했다고 전해진다. 중국정부는 1987년 4월2일 경내 8각 13층 석탑을 수리하던 중 지하궁전과 그곳에 봉안된 부처님 지골사리를 함께 발견한 뒤 대규모 불사를 진행했다. 순례단은 법문사 보궁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예불을 올린 뒤 8각 13층 석탑을 참배했다. 이어 석가모니불 정근을 하며 탑돌이를 진행했다.

▲ 맥적산 석굴은 중국 석굴 가운데 네 번째로 크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석굴은 높이가 60~70m에 이른다.

법문사에서 버스로 4시간30분을 달려 도착한 천수(天水)는 맥적산 석굴을 품고 있어 불자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9월5일 새벽 숙소를 출발한 순례단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맥적산 석굴의 위용을 직접 마주할 수 있었다. 맥적산 석굴은 중국 석굴 가운데 4번째로 크다. 낭떠러지에 개착됐으며 높은 곳의 석굴은 지면에서 60~70m에 이른다. 194개 석굴에 봉안된 불상만 7200여 구. 멀리서 보아도 그 모습이 뚜렷하게 보일 만큼 거대했다. 입구를 통과해 좁은 길을 따라 올라가자 아찔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한 발만 잘못 딛어도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질 수 있는 이곳에서 하나하나 석굴을 조성해 나갔던 갸륵한 신심이 순례자들의 마음을 감동으로 물들였다.

▲ 소맥적산 병령사에는 183개 석굴이 있다. 그중에서도 제171굴 대굴은 높이만도 27m에 달한다.

1500년 전 구법승을 따르는 순례자들의 발길은 천수를 거쳐 난주(蘭州)로 향했다. 점점 황량해지는 풍경을 뒤로하고 난주에 도착한 뒤 하루 동안의 휴식을 취한 순례단은 9월6일 병령사를 향해 출발했다. 병령사는 난주에서 35km 떨어진 황하 북안의 소맥적산에 위치하고 있다. 183개 석굴이 있는데 그 안에 크고 작은 불상이 776체나 봉안돼 있다. 1시간 동안 보트를 타고 황하를 건넌 뒤 병령사에 도착하자 장관이 펼쳐졌다. 병령사 제171굴 대불은 높이만도 27m. 넓디넓은 황하에 뗏목을 띄워야만 닿을 수 있는 깊은 계곡에 신심의 지문을 짙게 남긴 이들을 찬탄하는 순례자들의 예불 소리가 청명한 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황하를 건너는 시점부터 광막한 사막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야간열차를 타고 9월7일 가욕관역에 도착한 순례단은 과거 중국 본토의 최전방이었던 가욕관을 방문했다. 이때 하늘은 부슬비를 떨어뜨리며 순례단을 자비롭게 감싸줬다. 연평균 강수량이 50mm가 채 되지 않는 고비사막 지역에서 만난 부슬비는 이후 순례기간 내내 대지를 촉촉이 적셔주며 환희로움을 선사했다.

가욕관에서 나와 버스를 한참 달리자 사막 한가운데 협곡에 만들어진 유림굴(楡林窟)이 순례단의 시야에 홀연히 나타났다. 구법승들의 험난한 여정 속 감로수였을 유림굴은 당대에서부터 서하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조성됐으며 고비사막 지역 불교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석굴로 꼽힌다. 당나라 초기에 조성된 제6굴 미륵불 앞에서 예불을 올린 순례단은 이번 여정의 하이라이트인 돈황(敦煌)으로 출발했다.

9월8일 이른 아침부터 돈황 막고굴(莫高窟)은 관광객으로 가득했다. 가이드에 따르면 중국정부가 하루 입장객을 1만 명만 받는 까닭에 막고굴 입구 앞에는 암표거래가 성행하고 있다. 입구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15분을 달려 막고굴이 당도했다. 막고굴은 건축·조소·벽화의 3개 장르가 결합된 종합예술로 평가받는다. 4세기 경 서방문화가 들어오는 관문인 돈황과 양주 주변에 석굴을 개착한 것을 계기로 명사산 동쪽 기슭에 500여 개의 불감이 차곡차곡 들어섰다. 특히 제17굴에서 발견된 돈황문서는 막고굴의 가치를 전 세계에 알렸다. 제17굴에는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되기도 했다. 순례단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석굴들을 참배하며 사막 한복판에서 불심의 꽃을 피워낸 이들의 숭고함을 찬탄했다.

▲ 고창고성은 후한시대에 구축됐으며 천축국을 향하던 현장 스님은 630년 이곳에 도착해 1개월을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폐허로 남아있다.

막고굴에 이어 명사산(鳴沙山) 월아천(月牙泉)을 방문한 뒤 고속열차를 타고 투르판에 도착했다. 투르판은 현장 스님과 고창국왕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살아 숨 쉬고 있는 도시다. 투르판 일정을 시작한 9월9일 아침 역시 부슬비가 내려 순례단의 발걸음을 한층 가볍게 했다. 투르판의 연평균 강수량은 16mm에 불과하다. 오전 내내 비가 내리는 모습은 이 지역 사람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다. 부처님 가피와도 같은 부슬비를 맞으며 고창고성에 당도했다. 고창고성은 후한시대에 구축됐으며 천축국을 향하던 현장 스님은 630년 이곳에 도착해 1개월을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이제는 폐허가 돼버린 고창고성은 찬란했던 불교왕국의 기억을 누렇게 바랜 대지 아래에 묻어두고 있었다.

고창고성을 출발해 불이 활활 타오르는 형상의 화염산을 지나 도착한 베제크릭 석굴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아름답게 장식한 집’이라는 뜻을 가졌지만 지금은 거의 대부분이 도굴당한 채 흔적만이 쓸쓸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20세기 초, 독일의 르콕, 러시아의 올젠버그, 영국의 스타인 등이 차례로 드나들면서 벽화와 소조불상들을 절취해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순례단은 석굴의 눅눅한 공기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신심을 느끼며 다시 한 번 경탄했다.

제33호 석굴에서 예불을 올린 뒤 지도법사 혜총 스님은 법문을 통해 “부처님은 열반하시며 부지런히 정진할 것을 제자들에게 당부했다”며 “혼자만이 아닌 모든 중생이 함께 열반할 수 있도록 발원하는 것이 실크로드를 순례하는 우리들의 마음이어야 한다. 부처님이 이 땅에 나투신 뜻을 되새기는 여정이 됐길 바란다”고 말했다.

교육부장 진각 스님도 “실크로드에 오니 얼마나 많은 스님들이 우리에게 부처님 법을 전하기 위해 힘든 여정을 마다하지 않았는지 절실히 깨닫게 됐다”며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법문하실 때 내리는 꽃비처럼 부슬비가 내리고 있다. 우리 모두 함께 정진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베제크릭 참배를 마친 순례단은 곤륜산맥을 가로질러 신강위구르자치구 수도인 우루무치에 도착했다. 9월10일 북경을 경유한 뒤 9월11일 구법승의 발자취를 좇는 여정을 마무리했다.

중국 실크로드=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310호 / 2015년 9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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