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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석법간(釋法侃)

기자명 성재헌

잣나무나 소나무처럼 의지(意志)가 곧고 굳센 사람은 드물다. 왜일까? 뜻[志]은 세우기도 어렵고 지키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향해 매진하지만 그것을 ‘뜻’이라 칭하기엔 많이 부족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경우 일신의 안녕과 영달을 궁극의 목표로 삼기 때문이다. 나름 자신을 다그치고 채찍질하며 고군분투한다지만 그건 욕망의 다른 형태이지 만인의 표상이 될 ‘뜻’은 아니다.

미련없는 인생 찾아 여행
불법 만나 ‘보살 삶’ 발원
예배·참회로 게으름 경책
신분 차별없이 진리 전해

자타에 유익하고 고금에 수긍되는 뜻이라야 진정 ‘바른 뜻’이라 칭할 수 있다. 바른 뜻을 세우려면 무엇이 자타에 고루 유익하고 고금에 두루 칭송받는 삶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래서 바른 뜻은 세우기 어렵다. 설령 깊은 성찰과 탐구를 통해 바른 뜻을 세웠다 해도 뜻은 지키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일신의 안녕과 영달을 탐하는 욕망의 불길은 몇 번의 다짐으로 꺼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른 뜻을 세우고 바른 뜻을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마저 내놓을 용기가 필요하다.

수나라 때 법간(法侃) 스님이란 분이 계셨다. 그는 속성이 정씨(鄭氏)로 형양(滎陽) 출신으로 타고난 의지가 굳세고 명철하였다. 그는 어린 나이에 도사를 따라 신선도를 배웠다. 불로장생을 돕는다는 자석(紫石)을 복용하며 밤낮을 잊고 연단(鍊丹)하였지만 그 가슴엔 회의만 쌓여갔다. 아무리 둘러봐도 도관(道觀)에 질병과 노쇠의 장막을 훌쩍 뛰어넘는 자는 없었다. 또한 그들 말대로 천년만년 산다한들 오직 살기위해서 사는 삶이라면 그리 반길만한 것도 아니었다. 법간은 결단을 내렸다.

“단 하루를 살더라도 후회와 미련이 없는 삶을 살리다.”

법간은 그곳을 떠나 천하를 떠돌았다. 그러다 태산의 영암사(靈巖寺)를 지나게 되었다. 법간은 감격하였다. 천 한 조각 걸치고 하루 한 끼 채소로 연명하는 삶이었지만 그들은 예의범절이 단정하며 평화로웠다. 그런 그들의 눈가엔 지혜의 빛이 감돌았고 입가엔 만족의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이것이 청정한 삶이라 확신한 법간은 새로운 삶의 목표를 세우고 연(淵) 법사에게 출가했다.

이후 연 법사에게 수학하며 ‘십지론(十地論)’을 통달하고, 강도의 안락사(安樂寺)에서 조비(曹毘)라는 거사를 만나 ‘섭대승론(攝大乘論)’을 수학하였다. 그리고 스스로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고 만인을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보살의 삶을 직접 구현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명성은 곧 사방에 알려졌고, 수나라 양제의 귀에까지 전해졌다. 양제는 그를 일엄사(日嚴寺)로 초청하였다. 법간의 일상은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나날이 ‘유식론(唯識論)’을 강의하며 후학들을 일깨웠고, 예배와 참회로 자신의 게으름과 제자들의 게으름을 경책하였으며, 귀족이건 서민이건 가리지 않고 만나 그들을 다독이고 일깨우며 불법으로 이끌었다. 근엄하면서도 따스한 스님의 풍모에 만인이 성인으로 우러렀지만 정작 자신은 ‘뜻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평하였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73세가 되던 해였다. 대중들에게 숨기던 복통이 더 이상 감출 수 없을 만큼 심해졌다. 식음을 전폐한 건 물론이고, 가만히 있어도 식은땀이 흐르며 앙다문 이빨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법간은 제자들의 간절한 청을 더는 거절하지 못해 의원의 진찰을 받았다. 진맥을 하던 의원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스님, 혹시 자석(紫石)을 복용한 적 있습니까?”
“네, 제가 어린 시절 신선술을 배우며 자석을 복용한 적이 있습니다.”

의원이 안심이란 표정으로 말했다.

“몸의 기력이 쇠하여 자석의 기운을 감당하지 못해 나타난 증세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돼지고기를 잡수면 됩니다. 돼지고기가 약기운을 중화시킬 겁니다.”

그러자 법간이 웃으며 말했다.

“한 번은 꼭 가야할 길입니다. 며칠 더 살겠다고 남의 생명을 빼앗을 수는 없지요.”

법간은 끝내 고기를 거부하고 당신의 뜻대로 살다가 뜻대로 생을 마감하였다.

성재헌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tjdwogjs@hanmail.net


[1311호 / 2015년 9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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