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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관련 추측, 신경 쓰지 않는다”

  • 교계
  • 입력 2015.10.14 14:28
  • 수정 2015.10.14 14:40
  • 댓글 1

16일 소임 마치는 봉은사 주지 원학 스님

10월16일 업무 인수인계를 앞두고 있는 봉은사 주지 원학 스님이 소임을 마무리하며 소회를 밝혔다. “운수납자가 인연에 따라 왔다 가는 것이니 시원할 것도 섭섭할 것도 없다”고 소회를 밝히며 “총무원장 스님에게 그동안 하지 못했던 공부도 하며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해서 관철된 것인데 문책성이라거나 본인의 의사에 반해 후임이 발령됐다는 추측은 추측일 뿐이지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덧붙여 “오랜만에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가을 국화꽃을 직접 그릴 생각을 하니 즐겁기 그지없다”며 “하지만 일부 신도들과의 송사는 전례를 남기기 위해서라도 법이 허용하는 안에서 원칙대로 진행해 나갈 것”이라고 강력한 의사를 밝혔다. 원학 스님은 봉은사 개산대제가 마무리되는 15일까지 주지 소임을 수행한 후 16일 신임 주지 원명 스님과의 인수인계를 끝내고 경북 경산시 와촌면에 위치한 삼화사로 거처를 옮길 예정이다. 다음은 원학 스님과의 일문일답.

 

▷2년여에 걸친 봉은사 주지 소임을 마무리하는 소회가 궁금하다.
시원할 것도 없고 섭섭할 것도 없다. 수행자를 운수납자라고 부르는 것은 구름이 갈 때 어디로 간다고 얘기하는 법이 없고, 물이 흐를 때 정해놓고 흐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물처럼 구름처럼 산다고 해서 운수납자라 한다. 부처님 앞에 인연이 돼서 왔다가 인연이 돼서 가는데 거기에 시원하다 섭섭하다 토를 다는것 자체가 수행자의 모습에는 맞지 않는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일은 무엇인가.
기억에 남는 것은 가장 중요한 불사인 봉은사 상원 불사다. 퇴락돼 있던 것을 일단 헐어내고 새로 지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또 불사에 필요한 재정을 국고와 자부담으로 확보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그 비용이 당연히 나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누가 그냥 주겠는가. 나는 그 20억을 받아내기 위해 나름 열심히 노력했다. 또 한 가지는 봉은사 9호선 역명이 제정되면서 과거보다 훨씬 많은 신도들이 찾는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강남 중심 신도였다면 9호선 개통 이후 강동구와 강북구에서도 신도들이 많이 오고 있다. 봉은사 생활 속에서 기억에 남지 않을까 싶다.

▷ 아직 임기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후임이 지정된 것에 대해 문책성 인사로 보기도 한다.
해인사 정상화를 위해 현응스님과 6년 전 뜻을 모은 후 최근까지 해인사 정상화를 추진해 방장 스님까지 무사히 모셨다. 하지만 이후에 주지 문제 대두되는 과정에서 나는 여연 스님을 추천했고 현응 스님은 향적 스님을 지지했다. 이러다보니 마치 ‘주지 싸움’으로 비하된 것은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매우 가슴 아픈 일이었다. 6년 전 처음 정상화에 뜻을 모을 때는 이런 모습의 결론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당시 해인사 재적 승려와 동문들에게 사과문을 내기도 했다. 이후에 원장 스님에게 편지를 보냈다. 수행자의 본분으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다는 의사를 표했다. 원장 스님은 당시 봉은사가 불사가 관계로 민감한 시기에 있었기에 가을 즈음 다시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의사를 전하셔서 추석 때까지 기다렸다. 추석 이후 원장 스님이 재차 의견을 묻기에 아무런 조건 없이 의사를 표시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공부도 하고 작품 활동도 하고 여행도 좀 하며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해서 관철된 것이다. 일부에서는 문책성이니, 본인이 더 있으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후임이 발령됐다는 추측을 하는데 추측은 추측일 뿐이지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 봉은사 회주를 맡게 됐다는 말도 있다.
총무원장 스님과 마지막 의사 확인을 할 때 아무런 조건 없이 내려가겠다는 의사를 표했는다. 다만, 현재 봉은사에서 하고 있는 ‘금강경 야부송’ 강연이 18회까지 진행됐는데 불자들의 호응이 좋고, 야부송을 중심으로 한 법문이 사찰서 공개적으로 열리는 것은 근세에 처음인 것 같아서 인지 ‘하던 법문을 계속 해줬으면 좋겠다’라며, ‘회주’라는 소임으로 하면 좋겠다고 제안하셨다. 원장 스님이 예의상 해주신 얘기라 생각하고 나도 회주를 맡아서 봉은사에 방사를 두거나, 회주로서 어떤 역할을 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법문을 마치기 위한 것이니 후임 주지 스님하고 논의하겠다고 했다. 신임 주지 스님과 얼마 전 논의 했는데 한 달에 두 세 번씩 올라오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무리여서 매월 첫째 주에 ‘금강경 야부송’ 강연만 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 일부 신도들과의 소송건이 여전히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인사 발령과는 관계없는 일이다. 일부 보도에서 동참 인원이 천명이라고 기사화 했는데, 일부의 부풀린 주장을 그대로 언론에 기사화 하는 것은 언론의 사명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극히 일부의 신도가 반발하는 것을 신도회 내부의 큰 집단이 반발하는 것으로 비약시킨다면 법의 논리로 대응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불자의 기본자세가 안 돼 있다. 아무리 나를 반대했다 하더라도 가는 사람 뒤에 대고 손가락질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지난 일요일에는 봉은사 앞에서 마치 자기들이 반대해서 내가 가게 된것처럼 축하법회를 했다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나 뿐 아니라 누가 봉은사 주지로 온다하더라도 그런 사람들이 망동해서 전체 조직을 흔들려고 한다면 신심을 갖고 열심히 기도하고 활동하는 많은 힌도들에게 실망감을 주고 기대감을 저버리는 것이다. 법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

 

▷ 한전부지 매각 건과 관련해서 최근 총무원장 스님은 TFTeam을 구성한 적이 없다 했다. 이와 관련한 스님과의 발언이 다른 이유는.
공식 출범하지 않았을 뿐이다. TFTeam을 구성해서 출범을 준비하는 과정에 내가 이동 하게 됐다. 후임 주지 스님이 적극적으로 종단과 협의해서 진행할 것으로 알고 있다. 총무원장 스님 입장에서는 공식 출범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당연하지 않나 싶다.

▷ 추후라도 다시 제안이 들어온다면 소임을 맡겠는가.
종단에서 소임 제기할 사안도 없을 것이고 나올 일도 없을 것 같다. 여러 소임을 경험하고 나름 역할을 했지만 내 마음 속에는 항상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을 모시고 살던 시절 보았던 모습이 남아있다. 그 바쁜 와중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스님은 경전 번역을 위해 4층 집무실에서 원고를 쓰시던 모습이 뇌리에 남아있다. 수행자는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살더라도 항상 저처럼 공부하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그 생각을 잊어본 적이 없다. 남들은 주지 문제 갖고 쫓겨났느니, 사퇴를 했니 온갖 소리를 다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내가 원해서 가는 길이니 미련이 없다. 이후에 내 모습으로 돌아가 더 많은 시간을 갖고 좋은 가을 날씨에 노란 국화꽃을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먹을 갈아놓고 그릴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너무 즐겁다.
다만 이 기회에 덧붙이자면 어쨌든 종단의 수장이 잘 할 수도 있고 잘 못할 수도 있다. 100퍼센트 종도들의 염원에 맞게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장으로 뽑혀서 업무를 집행하면 임기를 원만히 마칠 수 있도록 언론에서 도와줬으면 좋겠다. 잘못된 것은 지적을 하더라도 극단적으로 비하시키는 부분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내가 종단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이번 인사를) 찍어내기 식의 모습으로 비하시킨다면 이런 관례가 다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법도 없고 그렇게 되면 종단이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이것은 불교뿐 아니라 종단을 생각해서라도 사회적 위치가 얼마나 크게 좌절되는가를 넓게 생각해주기 바란다.

▷ 향후 거처는 어디로 정했는가.
경북 경산 와촌면에 있는 삼화사라는 암자로 간다.

▷ 그래도 봉은사 소임 기간 동안 꼭 하고 싶었던 일은 없었는가.
없다. 떠나는 순간까지 내 소임을 다하고 간다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떠나고 나면 그 다음 오는 사람이 이어서 하면 되지 꼭 내가 다해야 한다는 법이 있는가.

▷ 인수인계 날짜를 서두른 이유는.
생각을 냈으면 하루라도 빨리 비워주어야 다음 사람이 편하다. 며칠 더 버틸 이유가 없다. 개산대제만 아니었다면 언론에 보도가 나간 다음날 인계했을 것이다. 개산대제 기간이다 다보니 어쩔 수 없이 마치고 가야겠다고 해서 16일로 정한 것이다.

▷봉은사는 어떤 사찰이었나.
다른 조계종 사찰과 다를 바 없지만 사세가 크다보니 출입하는 신도들의 성향이 다양하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315호 / 2015년 10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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