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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명령형 부모

야단맞을 각오로 집에 오는 아이 위한 변명

9살 동현이가 구입한지 얼마 안 되는 새 운동화를 학교에서 잃어버리고 다 헤어진 헌 운동화를 신고 왔다. 그러자 그만 화가 난 엄마는 “넌 자기 물건 하나도 챙기지 못하는 바보니?”라며 아이를 때렸다. 동현이 부모님은 매우 엄격하며 지켜야할 규칙들을 정해두고 무조건 이 규칙을 따르도록 요구하는데, 아이가 부모의 말이나 규칙을 잘 따르면 보상을 한다. 그러나 부모 말을 거역하면 벌을 통해 자녀를 통제하거나 큰 소리로 야단을 치고 심지어는 때리기도 한다. 이처럼 자녀에게 거의 자유를 주지 않고 명령에 복종할 것을 강요하는 부모를 ‘명령형 부모’라고 한다. 명령형 부모의 대부분은 역시 명령형 부모에게 양육 받은 경험이 있다.

벌로써 자녀 통제하려는 부모
위축된 자녀, 폭력 성향 보여
자극적이고 거친 말 자제해야

사람들은 무섭고 두려운 사람 앞에 서면 위축되고 기가 죽는다. 부모 명령에 복종하는 자녀는 상당한 무력감을 느끼며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존재라고 믿게 되어 자존감이 낮다. 그러나 때로는 부모에게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다른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부모의 행동을 모방하려는 경향을 보일 수도 있다. 이를 테면 어른들이 큰 소리와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행동을 보일 때 아이들은 은연중에 고함이나 폭력이 올바른 문제 해결 수단이라는 생각을 품을 수 있다. 요즈음 일부 청소년들에게서 매우 폭력적인 행동을 접하게 되는데 이러한 행동의 상당부분은 부모로부터 보고 배운 것으로 부모에 대한 앙심을 다른 아이들에게 화풀이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아이는 어떤 문제 상황에 부딪히면 대화로 해결하기보다 손이나 몸이 먼저 나가므로 폭력적으로 비춰진다.

‘명령형 부모’밑에서 자라는 아이들 대부분은 부모와 신뢰를 쌓는데 어려움이 있으며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도 익힐 수 없다. 이런 가정은 부모와 자녀간의 친밀한 유대관계가 보이지 않고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며 어색해 한다. 우리 모두는 긴장되고 불안할수록 실수도 많이 하게 되는데, 이럴 경우 꾸중이나 체벌의 성급함보다는 긴장을 풀어주는 부모의 따뜻한 위로가 정서안정에 더 필요하다. 위의 사례처럼 부모는 동현이의 실수를 야단치기 전에 먼저 그 억울한 마음을 들어주고 이해하는 연민의 마음이 필요했다. 아마도 동현이는 집에 오는 줄곧 야단맞을 각오를 하며 걱정했을 것이다. 이때 부모의 꾸중은 오히려 미안함을 갖기보다 자신의 잘못을 꾸중으로 대신 상쇄했다는 해방감과 동시에 반항심을 키울 수 있어 훈육적인 면에서도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다.

부처님은 당시 인도의 가장 상위계급에 속하는 바라문이 남을 가르치려면 그에 걸맞는 인품의 말과 행동을 지녀야만 비로소 자격이 있음을 ‘법구경 408’게송으로 전했다.

“남에게 하는 말이 거칠지 않아 듣는 사람의 마음을 해치지 않고 또 참다운 말로 남을 가르치는 그를 나는 바라문이라 한다.”

이 게송은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녀에게 자극적이고 거친 말을 사용하여 마음을 다치게 하고 반발을 가져오는 것은 부모답지 않은 행동임에 틀림없다. 부모는 자애롭고 진심이 담긴 말로 자녀의 마음을 움직이는 ‘부모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자녀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녀는 부모를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좋아하고 신뢰해야 한다. 그것이 부모됨의 인격이다. ‘나는 과연 어떤 부모인가?’ ‘지금의 내 방식은 올바른 부모역할 수행에 도움이 되는가?’를 반성하며 진솔하게 부모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가져봄직하다.

황옥자 동국대 명예교수 hoj@dongguk.ac.kr

[1315호 / 2015년 10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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