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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속에서 올바른 선택

기자명 하림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5.10.26 15:27
  • 수정 2015.10.26 15:29
  • 댓글 0

몇 년 만에 미국을 찾게 되었습니다. 뉴욕에 갔다가 다시 비행기로 2시간 정도 미동부 해안선을 따라 내려가면 랄리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 미국 10대 명문대학으로 꼽히는 듀크대학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한국불교학을 가르치고 있는 일미 스님을 만나기 위해 범어사 스님, 신도들과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해도
돌아보면 잘못된 것도 많아
이해득실로 따지기 보다는
생각만으로 좋은 일을 해야

함께 길을 나선 일행이 30명이 넘다보니 혹여 이동 중에 이탈자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었습니다. 앞서가면 앞서가는 인연들이 있고, 뒤쳐지면 뒤쳐지는 인연들이 있습니다. 저는 늘 우리 절 신도들의 맨 뒤에 따라갑니다. 그러다보니 앞에서는 기다려야만 하는 경우가 생기고 진행속도가 더디게 됩니다. 무엇인가를 먼저 결정해야한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입니다. 사실 저는 미국 올 때도 제 짐을 스스로 싸지 못했습니다. 방 정리도 잘 못해서 10년을 돌봐주시는 노보살님에게 의지했습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겨두어야 하는지 결정하지 못하고 손에 들었다가 다시 장소만 바꿔 옮겨두곤 했습니다. 저를 늘 이끌어주시는 신도님들이 저의 어머니이자, 누님이고 형님들입니다. 그야말로 그분들 덕분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얼마 전의 일입니다. 어느 회장님이 대학생법회가 가능한지 여부를 알려달라고 연락을 했습니다. 1학기 동안 법당에서 예불하면서 학생들 모임을 진행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회장님과 몇 가지를 합의하고 모임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회장님이 바뀌더니 법회의 성격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아마 회장이 바뀌는 과정에서 저와 약속했던 내용들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설령 그렇더라도 법회를 계속할 수 있도록 했어야 했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임이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많이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모든 게 제 잘못입니다.

세상일은 옳고 그름의 잣대로 접근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모든 걸 내가 해결하려고 접근하는 태도도 가지지 말아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뀔 때마다 제 마음은 그렇지 못합니다. 마음속에서 뛰쳐나오는 ‘이래야 돼! 내가 옳아!’라는 생각에 정신이 팔리고 맙니다. 일상에서 화가 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제 마음 속에서 늘 두 가지 목소리가 들립니다. 하나는 ‘마땅히 화를 낼 일이야’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서로 상처받고 나중엔 더 힘들기만 할테니 참아야 해’라는 것입니다. 또 욕심을 낼 때에도 마음에서 여러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건 부끄러운 일이야’ ‘나중에는 다 부질없는 일이야’라는 소리가 메아리칩니다. 이런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때론 어떤 것이 욕심인지 의욕인지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의지가 모두 욕심이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욕심과 의욕을 구분하는 기준을 마음에 둡니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할 때 불편한 마음이 들면 욕심이고, 환희심이 나면 의욕이라고 말이지요.

이해득실을 떠나 그 일을 생각만 해도 즐겁고 기대되는 그런 일을 하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늘 옳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늘 바른 선택만 할 수도 없습니다. 바른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떤 것은 결과가 좋지만 어떤 것은 악연을 만들게 됩니다. 올바른 선택이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내가 옳아’라는 아견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더욱 그럴 것입니다. 나라는 생각으로 꽉 차게 되면 세상은 고통스럽습니다. 말로는 고통의 길을 벗어나려고 한다고 하면서 스스로 가시밭길을 걷게 됩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정말 해탈을 추구하는가? 오히려 고통을 즐기고 애착하며 사는 것은 아닐까? 정말로 싫어한다면 남이 하라고 해도 안 하게 됩니다.

▲ 하림 스님
미타선원 주지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은 시비를 떠나가는 과정으로 봅니다. 살아보니 옳고 그름이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시비의 눈으로는 엄청 큰 문제였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면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이런 길을 반복하는 제가 두려울 뿐입니다. 어떤 내 견해가 저 마음 밑에서 올라오더라도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것은 내가 아니라는 것’이고, 이미 과거 여러 생의 경험과 습관의 산물이라는 사실입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또 ‘그 업이 올라와서 주인노릇 하려고 하는 구나’라는 것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삶의 고통을 통해 진정으로 벗어나고자 하는 발심의 인연이 제게도 찾아오길 기원해 봅니다.

[1316호 / 2015년 10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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