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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의도적 무관심 태도

우유 쏟은 자녀에 대한 잔소리가 비극 부른다

“자녀가 아무리 요구해도 들어줄 수 없다고 판단되면 모르는 척 할 수 있는가?”
“자녀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다 쏟았다면 야단치지 않고 모르는 척 할 수 있는가?”
“자녀의 짜증내는 소리를 듣고 모르는 척 할 수 있는가?”

신뢰한다는 무언의 표현방법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 제공
침묵도 때론 응원하는 방편

이상의 질문들에 어떤 반응을 보일 수 있는지 부모 스스로를 점검해 보면 자녀에 대한 평상시의 태도를 파악할 수 있다. 만일 자녀의 이런 행동을 무관심하게 넘길 수 없다면 부모는 자녀에 대해 지나친 관여를 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애정과 관심은 바람직한 양육태도의 기본조건이지만, 이들은 언제나 적정한 수준에서 상황에 따라 알맞게 조절할 필요가 있다. 왜일까? 자녀에 대한 부모의 지나친 염려와 보호는 자칫 인성이나 행동발달 등에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의도적 무관심 태도’란 부모가 자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기반으로 실수와 같은 어떤 행동들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무관심하게 대하여 자녀를 신뢰한다는 무언의 표현을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부모가 자녀에게 무관심을 보이는 태도는 두 가지 원인에 기인한다. 첫째는 자녀에게 애정이나 관심이 없고 귀찮음을 느껴 무관심한 경우이고, 둘째는 자녀의 독립심을 신장시키거나 또는 자녀의 잘못된 행동을 수정하기 위한 목적에서 고의로 무관심한 척 취하는 경우다. 이 중 후자의 경우가 의도적 무관심 태도의 개념을 적절히 설명한 내용이다.

자녀의 성장발달에 가장 효과적인 양육태도가 애정과 관심에 입각한 것임을 상기할 때 의도적 무관심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자녀양육과정에서 흔히 야기되는 문제로 부모의 관심을 끌기 위한 자녀의 잘못된 행동을 볼 수 있는데, 이때 부모의 ‘의도적 무관심 태도’는 자녀로 하여금 스스로를 반성하고 숙고하는 ‘나홀로 시간’을 제공한다. 예를 들어 아이가 학원 갈 시간인데도 느릿느릿 행동하며 부모 속을 태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면 아이는 순간적으로 이런 행동이 효과 없음을 인식하고 스스로 고치게 된다. 그러나 조급증이 있는 부모는 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개입한다. “학원 갈 시간이야, 빨리 밥 먹고 양치질해야지, 스쿨버스 올 시간인데 늦겠다.” 부모의 조급증에 맞추려다 보니 아이는 짜증이 나며 정서적으로 긴장하고 불안해진다. 이때 부모가 의도적으로나마 무관심한 태도를 취하여 자녀를 믿어주고 침묵으로 응원한다면 더 유익하지 않을까 한다.

부처님도 제자들의 현실성 없는 질문에는 침묵으로 대하셨듯이 상황에 따라서 침묵은 대화이상의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는 소통법임을 언급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해야 할 때를 알고, 말할 때에도 뜻이 담긴 점잖은 말로 자신의 처지를 간곡하게 전해야 한다. 그러나 전하는 것이 도리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 자기 홀로 고통을 감내하면서 끝까지 침묵할 수 있어야 한다.”(두타 자타카 中)

그러나 사람들은 침묵을 못견뎌한다. 부모는 자녀의 행동을 말없이 그냥 지켜보는 일에 익숙하지 않아 매사를 간섭하고 끊임없이 잔소리한다. 그 결과 자녀는 부모의 조언도 속박으로 느끼며 아예 듣지 않으려 하니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부처님은 ‘앙굿따라 니까야’에서 “수행승들이여, 어리석음을 알고, 버리기 위하여 두 가지 원리를 닦아야 한다. 멈춤과 통찰이다”라고 안내했다. 부처님 말씀처럼 조급함의 ‘멈춤’으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진정 자녀를 위한 지혜로운 부모역할이 무엇인지 ‘통찰’해볼 일이다.

황옥자 동국대 명예교수 hoj@dongguk.ac.kr

[1318호 / 2015년 1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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