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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우울증에 빠진 남편

기자명 법륜 스님

남편의 우울증이 심합니다. 어머니한테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우울증이 생겼나 싶습니다. 본인이 삶의 의지가 없고 병원 치료도 거부합니다. 술, 담배를 많이 해서 몸도 많이 안 좋아지고 있습니다. 걱정되는 마음에 제가 우울증 약을 대신 처방받아서 몰래 먹여볼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강제입원을 시키려면 직계가족 허락이 있어야 하는데 시어머니께서 반대하십니다. 솔직히 저는 지금 불교에 귀의하고 법문 공부하는 게 너무 좋아서 마음이 편안하지만 남편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본인 스스로 과보를 받으라고 지켜봐야 할까요? 주변에서는 저에게 왜 그렇게 남편을 방치했냐고 하는데 제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남편이 건강하게 나아야
내 병도 낫는다는건 잘못
남편이 아프다 하더라도
내가 괴롭지 않은게 수행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말을 다 믿으면 안 됩니다. 남편 말만 듣고 어머니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다만 ‘남편이 어머니에게 상처를 많이 받아 힘들어 하는구나’하고 이해할 뿐입니다. 남편은 지금 환자입니다. 같이 가서 치료받자고 하니 남편이 순순히 치료를 받으러 가면 그건 아직 환자가 아닙니다. 환자를 멀쩡한 사람으로 취급하면 질문자가 오히려 정신질환자 수준이 됩니다. 질문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편을 컨트롤하고 고쳐서 내가 편안하려는 것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남편은 환자니까 그냥 두고 내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남편을 고쳐보겠다고 몰래 약을 먹이면 절대로 안 됩니다. 남편과 의사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본인의 동의를 얻지 않으면 남편의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 됩니다.

남편의 병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병원에 보내는 겁니다. 그런데 남편이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하고 시어머니도 강제입원은 안 된다고 하면 그냥 놔두면 됩니다. 정말 남편을 입원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시어머니한테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지금 질문자는 자기 책임으로 돌리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남편이 본인 말을 듣지 않는다든가, 시어머니가 문제라는 얘기를 하면서 전부 발뺌하고 있습니다. 왜 시어머니를 핑계대고 물러납니까. 어머니 뒤에 숨어서 요행을 바라는 것은 비겁한 짓입니다. 본인은 불교에 귀의해서 법문 공부를 하면서 마음은 편안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남편을 보니까 내가 괴로운 겁니다. 그것을 힘들다고 하면 안 됩니다. 내가 우울증에 걸린 것보다 우울증 걸린 남편을 보살피는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남편을 방치했다고 하든 말든 내가 남편을 방치하지 않았으면 됐습니다. 내가 방치했다면 이제 방치하지 않으면 됩니다. 지금 마음가짐이 남편의 병이 빨리 낫기를, 요행을 바라는 수준이기 때문에 기도해봐야 기복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 남편을 살릴 생각보다 나라도 살 생각을 해야 합니다. 엄마하고 나하고 둘이 물에 빠졌다고 가정해 봅시다. 내가 죽어서라도 어떻게든 엄마를 구하려고 하는데 살릴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같이 껴안고 죽으면 안 됩니다. 둘 다 살 길이 없으면 방법은 하나입니다. 엄마는 그냥 놔두고 나 혼자라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냉정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살아서 엄마를 구할 방법을 찾든지 구하지 못하면 엄마의 시신이라도 건져 장례라도 치러야 합니다. 나 혼자 어떻게 사느냐고 의리 지킨다고 같이 빠져 죽으면 바보입니다. 먼저 내가 살아야 됩니다. 지금 남편에게 내가 빨려 들어가고 있는데 우선 내가 살아야 남편을 돌볼 수 있습니다. 남편이 하루빨리 건강하게 나아야 내 병이 낫는다는 생각은 잘못된 겁니다. 남편의 병이 나아서 내 병이 낫는 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남편이 아파도 내가 괴롭지 않는 것이 수행입니다.

법륜 스님 정토회 지도법사


[1320호 / 2015년 11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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