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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진정어린 이해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서 자녀들 한숨 나온다

소정(고1)이가 며칠 째 묻는 말에만 겨우 대답하고 어두운 표정으로 지낸다는 걸 뒤늦게 눈치 챈 엄마가 물었다. “너 요즈음 무슨 일이 있지? 왜 그렇게 저기압이니?” “내가 말하면 이해는 해요? 엄만 내겐 관심도 없잖아.” 짜증이 담긴 소정이의 반응이다. 엄마가 자신의 깊은 속까지 이해하진 못할 거라 짐작한 나머지 문제를 더 키우고 싶지 않아서다. 그러나 엄마는 도리어 딸이 답답할 지경이다. 이유도 없이 이해만 못한다니 그간 딸의 뭘 이해하지 못했단 말인가?

맘 터놓을 상대 필요한 사춘기
엉뚱한 반응은 도리어 상처 돼
부모 늦은 반성이 위로되기도

그렇다. 거의 모든 부모는 자신만큼 내 자녀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잘 안다고 믿던 아이가 우울해하거나 짜증을 내면 “내가 낳았지만 난 저애를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라고 한숨짓는 부모가 아이를 잘 이해한다고 볼 수 있을까? 내 아이를 진심으로 이해하기 위해 ‘깊이 생각(甚深思)’ 해본적은 있는가? 자녀의 장단점, 성격, 취미, 능력을 정확히 알고 이해하는 부모는 아마도 그리 많지 않으며 단지 피상적으로 안다고 착각할 뿐이다.

사춘기의 아이들이 외롭다고 느끼는 것은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하고 마음을 터놓고 위로받을 만한 사람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는 달래고 보살펴주어야 할 만큼 겁이 많고 숫기가 없는 반면 강한 지구력을 지녔으며, 어떤 아이는 겉보기엔 강하고 번죽도 좋아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웬만한 일엔 상처받지 않는 것 같으나 의외로 나약함을 고민한다. 이렇듯 인간이란 간단히 판단할 수 없는 복잡한 존재인 것 같다. 부모가 이런 아이를 그 특성에 맞게 양육하며 구김 없는 밝은 성품을 지닌 존재로 자라나도록 돕기 위해서는 부모의 정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려면 자녀가 보내는 작은 신호 하나라도 주목하여 그 신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정확히 해석하여서 즉각적이고도 적절한 반응을 하는 민감성과 배려는 필수다.

그러나 둔감한 부모는 자녀가 다양한 방법의 여러 신호를 보내지만 이를 눈치 채지 못하고 엉뚱한 반응이나 자극을 통해 아이를 더욱 힘들게 하거나 고통을 안겨준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부모와의 이런 경험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서로에 대한 믿음과 이해의 폭을 결정하는 잣대가 되는 것이다. 소정이가 엄마는 결코 자기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것도 알고 보면 평상시의 못미더운 느낌들이 무의식에 내재하여 부정적 이미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는 자녀가 나날이 성장하는 만큼 자녀수준의 이해수준을 키워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법구경’은 말한다. “처음에는 먼저 자기 할 일 살피어 옳고 그름을 알아 거기 머물고, 그다음에 마땅히 남을 가르쳐라. 거기는 다시 괴로울 일 없나니.” 이 경구가 부모에게 시사하는 바는 자녀가 바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각 단계마다 적절한 도움과 이해가 필요하며 그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으려면 부모됨의 능력과 자질을 키워야 한다는 부처님의 당부가 아니겠는가? 사실 우리네 부모역할은 어설프고 실수도 많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땐 내가 어리석어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했구나”라는 후회가 밀려오며 아이에 대한 가여움과 연민으로 괴로워한다. 그러나 부모의 뒤늦은 참회나 연민이라도 자녀에게는 큰 위안이 된다. “엄마가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섭섭했구나, 네 말을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네, 엄마도 완벽하진 못하거든, 하지만 내 딸이 힘들 때 돕고 싶은 건 사실이란다.” 진정어린 엄마의 말에서 자녀는 자신에 대한 관심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자녀는 항상 부모의 관심과 이해를 원하기에 이런 환경 속에서 올바른 인간으로 성장해 감은 당연한 이치라 하겠다.

황옥자 동국대 명예교수 hoj@dongguk.ac.kr
 

[1321호 / 2015년 12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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