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귀명과 구품
22. 귀명과 구품
  • 이제열
  • 승인 2015.12.08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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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은 중죄를 지어도 결코 버리지 않는다”

▲ 현등사 아미타회상도. 경기도 유형문화재185호.

“사리불이여, 내가 지금 아미타불의 한량없는 공덕을 찬탄한 것처럼 동방에도 아촉비불·수미상불·대수미불·수미광불·묘음불이 계신다. 이러한 수없는 부처님들이 각기 그 세계에서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미치도록 진실한 말씀으로 법을 설하신다. 너희 중생들은 ‘불가사의한 공덕의 칭찬’ ‘모든 부처님이 한결같이 보호함’이라고 하는 이 법문(法門)을 믿으라고 하신다.”

선행 정도와 염불 힘 따라
정토의 위치 9등급 나눠져

어떤 중죄 지은 중생이라도
구원의 문은 항상 열려있어

대승경전의 특징 중 하나는 부처님의 설법에 꼭 증명불들이 출현한다는 점이다. 증명불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에 대해 적극 찬탄하고 인정하는 다른 세계의 부처님들이다. 화엄경, 법화경, 유마경, 승만경 등 모든 경전에 타방국토의 부처님들이 등장하여 그 경을 적극적으로 칭찬하고 중생들로 하여금 봉행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경의 형식은 아미타경도 예외가 아니다. 부처님은 아미타경을 설하시고 나서 청법 대중들에게 타방국토의 부처님들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설법이 조금도 어긋남이 없음을 강조하신다.

불교는 믿음과 실천으로 결실을 맺는다. 특히 대승불교의 가르침 속에는 합리적 사고나 논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 무조건적 믿음과 실천을 요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물론 깊이 들여다보면 어긋남이 없는 합리성과 논리성을 포함하고 있지만 일단은 중생들로 하여금 단순한 믿음과 실천만으로 결실을 맺도록 한다. 아미타경의 핵심은 극락정토의 실재함을 믿고 아미타불을 끊임없이 부르는 것이다. 아미타불을 많이 생각해서(多念) 오로지 하나의 마음(一念)으로 만드는 것이 아미타경의 수행법이다. 살아서 극락에 태어나든지 죽어서 극락에 태어나든지 오로지 염불을 하기만 하면 왕생극락하여 아미타불을 만나 성불할 것이라고 믿는다. 예전부터 아미타불을 부를 때에는 필히 그 앞에 나무라는 수식어를 붙여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라고 해왔다.

나무란 그 의미가 단순히 귀의(歸依)와 귀명(歸命)이라고 하지만 그 깊이는 한량없다. 일체의 사량과 분별을 끊고 생(生)과 사(死)를 모두 아미타불에게 맡겨버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성의 펜대도 필요 없고 논리의 척도도 필요 없다. 오로지 극락정토에 왕생하고자 아미타불을 믿고 불러야만 한다. 염불을 중심으로 수행하는 정토종에서는 귀의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는 자신의 목숨을 아미타 부처님께 바친다. 둘째는 아미타 부처님의 절대 명령에 따른다. 셋째는 아미타불의 참 생명인 무량수와 무량광에 돌아간다는 뜻이다.

여기서 첫 번째는 중생 자신이 아미타불에게 스스로 귀의하는 것이며 두 번째는 아미타불이 중생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라고 명령하는 것이며 세 번째는 아미타불의 생명과 중생의 생명이 완전히 합일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중에 특이한 점은 귀의를 아미타불의 명령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나무의 귀명을 중생이 아미타불에게 스스로 귀의한 것이 아니라 아미타불이 귀의하도록(歸) 명령(命)해서 그에게 절대 복종하고 아미타불을 부르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해석은 어찌 보면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듯이 보이나, 오히려 중생들에게 믿음을 지니고 정토에 왕생하게 하는데 더욱 큰 힘을 발하게 한다. 부처님이 볼 때에 모든 중생들은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중생들은 믿음이 확고하지 못하고 방황한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곧 명령이다. 마치 공부만 하면 명문대에 합격할 수 있는 아이가 의지가 약하여 공부를 게을리 한다면 부모는 당연히 아이에게 공부를 맡기지 않고 공부할 것을 명령하는 것과도 같다. 아미타불의 명령은 기독교 신처럼 벌은 주지 않지만 대신에 염불하지 않는 중생에게 있어 윤회의 길은 멀고도 멀다. 관무량수경을 보면 극락정토는 선행의 정도와 염불의 힘에 따라 왕생의 위치가 달라진다고 한다. 이른바 구품정토가 그것으로 극락정토는 아홉층의 단계로 나누어져있다. 정토구품(品)이란 상품(上品)·중품(中品)·하품(下品)의 세 가지 품에 다시 각각 상생(上生), 중생(中生), 하생(下生)이 있어 모두 아홉 가지 품(品)이 있게 된다. 구품정토에 있어 염불은 필수적이다. 상품상생은 지성심(至誠心)·심심(深心)·회향발원(廻向發願)의 3심을 갖추고 자비한 마음으로 모든 행동이 올바르며 대승경전을 지성으로 읽고 외우는 중생·삼보를 찬탄하고 계행·보시 등의 바라밀을 닦으며 공덕을 회향하여 왕생을 바라는 중생이다. 상품중생은 반드시 대승경전을 배우고 읽고 외우지는 않더라도 그 뜻을 깨닫고 인과의 이치를 깊이 믿고 대승을 비방하지 않으며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중생이 태어나는 곳이다. 상품하생은 인과법의 이치를 믿고 대승법을 비방하지 않으며 아미타불만을 믿어서 보리심을 내고 이 공덕을 회향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염원하는 중생이 태어나는 곳이다. 중품상생은 소승의 오계, 팔계를 지키고 수행에 필요한 여러 가지 계행을 닦으면서 오역죄를 범하지 않고 허물없이 이 공덕을 회향하여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중생이 태어나는 곳이다. 중품중생은 하루 낮밤 동안이라도 계행을 지켜 행동에 어긋남이 없으며 이와 같은 공덕을 회향하여 왕생하기를 바라는 중생이 태어나는 곳이다. 중품하생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세간의 도덕을 지키며 임종할 때에 선지식을 만나 법장보살의 48서원의 설법을 들은 중생이 태어나는 곳이다. 하품상생은 온갖 나쁜 짓을 저질렀다가 임종 시에 선지식을 만나 그 가르침을 듣고 합장하여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는 중생이 태어나는 곳이다. 하품중생은 모든 계행을 범하거나 승단에 속한 물건을 훔치거나 허무맹랑한 법을 설하는 등의 죄를 지었다가 선지식을 만나 아미타불의 위신력을 들은 중생이 태어나는 곳이다. 하품하생은 온갖 나쁜 짓을 저질러 그 과보로 지옥에 떨어져 한량없는 고통을 받을 것이나 임종 시에 선지식을 만나 여러 가지 미묘한 법을 설해 염불할 것을 배우지만 고통이 극심함으로 염불할 겨를이 없다. 이때 부처님을 생각할 수 없거든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열 번만 부르면 이 염불한 공덕으로 한 번 부를 때마다 80억 겁의 무거운 죄가 소멸되어 태어나는 곳이다. 이상과 같이 구품에 대해 살펴보면 똑같은 극락정토라 할지라도 선업과 공덕, 그리고 불법에 대한 신심에 따라 그 위치가 달라진다. 상품상생이 가장 수승한 곳이고 하품하생이 가장 저열한 곳임은 물론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구품정토의 교리는 독특하기는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다른 경전의 내용들과 결코 무관치 않다. 대승불교의 모든 수행은 십신(十信)·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回向)·십지(十地)에 근거를 둔다. 정토구품설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승불교의 이와 같은 수행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미타경의 뛰어난 가르침을 꼽으라면 중죄를 지은 중생들에게도 구원의 문이 열려있다는 점이다. 임종 시라도 아미타불을 마음속에 심으면 아미타불의 영접을 받아 왕생한다는 가르침이야 말로 다른 경에서는 찾기 어려운 내용이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322호 / 2015년 12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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