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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정토신앙인가?

법음 듣고 곰곰이 사유하면서
저절로 염하면 극락 믿음 ‘몰록’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외면서 춤을 추었습니다. 염불춤, 혹은 춤염불이라 해도 좋겠습니다. 원효(元曉, 617~686) 스님이 추었고, 일본의 쿠야(空也, 903~972) 스님이나 잇펜(一遍, 1239~1289) 스님이 추었던 춤입니다. 신심이 나서, 염불춤을 한바탕 추고 나서 주지스님께 저의 신심을 고백하였습니다.

보조 스님 가르침 공부하며
맑은 마음이 곧 정토라 믿어
일본 정토신앙 살펴보면서는
아미타불의 가르침 들어와

“스님, 저는 이제 학문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정토로 회향하려고 합니다.” 주지스님께서는 그 이유를 하문하셨습니다. 저의 대답은, 그 이유가 ‘정토삼부경’에 다 나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꿈에서였습니다. 2015년 6월19일 새벽녘의 꿈입니다. 꿈이긴 하지만, 여기에는 저의 현재 신심이 잘 드러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토삼부경’이 제시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관경문사록’연재를 통하여 약 3분의 1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잠시 미루어 두고, 여기에서는 제가 어떻게 정토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간략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돌이켜 보면, 나름대로 불교를 바라보는 관점을 정립한 것은 보조지눌(普照知訥, 1158~1210) 스님 덕분입니다. 1987년 보조사상연구원이 창립될 때, 저는 간사로서 그 심부름을 하였습니다. 그 6년의 세월 동안 보조 스님을 읽고 또 읽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저의 일이었지만, 동시에 저의 공부이기도 했습니다. 이후 보조 스님의 가르침은 저에게 불교를 읽는 하나의 문법서이자, 사전과 같은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보조 스님은 “언제나 정토이고, 언제나 부처님이 계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분이기에, 다음 세상에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으로서 극락이 저 서쪽 어딘가에 있다고 하는 정토신앙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한 모습이 스님의 ‘정혜결사문’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가지고 1990년, ‘보조의 정토수용에 대한 재고찰’이라는 논문을 쓴 일도 있습니다. (물론, ‘염불요문(念佛要門)’이라는 저술이 보조 스님이 지은 것이라 말해지고 있지만, 스님의 진찬(眞撰)으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있습니다.)

가능하면 이 세상에서 정토를 보고, 우리의 맑은 마음이 곧 정토라는 것을 말하려고 우리 불교는 애써왔지 않은가 싶습니다. 이는 보조 스님도 그렇지만, 고려 중후기 이후 선종이 크게 떨치면서 자리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저 역시도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의 경우, 서서히 하나의 역전(逆轉)이 일어납니다. 그 계기는 일본불교를 공부하게 되었다는 데에서 주어집니다. 2002년 가을부터 2003년 여름까지 1년 동안, 교토의 ‘북쿄(佛敎)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때 이후 조금씩 조금씩 일본불교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처음부터 정토신앙을 중심으로 해서 공부를 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모든 종파의 불교를 두루 두루 살펴보고자 애썼습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사건이 하나 일어납니다.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의 책 ‘나무아미타불’을 만난 것입니다. 2007년의 일입니다. 그 책을 저는 지금까지 읽고 또 읽으면서 길벗들과 함께 번역을 해오고 있습니다. 몇 해 전에 ‘법보신문’ 도움으로 ‘나무아미타불’의 일부를 연재한 일이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은 일본 정토신앙의 주요한 세 종파를 세운 세 분의 조사스님들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을 8, 9년 읽고 또 읽어 오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저도 모르게 아미타불의 가르침이 ‘쑥’ 하고 들어왔습니다. 믿어지게 되었습니다.

정토신앙은 그렇게 해서 자라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정토신앙의 말씀을 듣고(聞法), 그 내용을 곰곰이 생각해 보는(思惟)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저절로 “나무아미타불”을 염하거나(念佛), 혹은 내세에는 극락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信心)이 생깁니다. 이제 그런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김호성 동국대 교수 karuna33@dongguk.edu
 

 [1326호 / 2016년 1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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