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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토리 구성 첫 걸음 메모

스토리는 논리·지식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글쓰기의 3요소는 체험, 독서, 문장력이다. 이를 유기적으로 이어주는 것이 메모이다. 메모의 기술은 곧 글쓰기의 역량이다. 글은 쓰는 만큼 늘고 그 과정에서 어휘표현을 달리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감동·설득력은 체험이 바탕
메모는 생각·글의 정돈 과정
글 쓰기, 좋은 글 모방서부터
모방 끝나는 곳서 예술 시작

체험이란 무엇인가? 서울 도심 아파트 숲에서 태어나 노년을 맞은 사람이 달동네의 아픔을 디테일하게 표현할 수 없다. 서울역과 지하철을 이용해보지 못한 사람이 라면박스 뒤집어쓰고 겨울나기 하는 노숙자의 애증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거나 기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또 삼국시대에 대한 소설을 쓰는 작가가 삼국시대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고전 탐독과 유적지 순례, 자료 수집 등을 통한 간접체험이 필요한 이유다. 간접체험 위에 상상력을 더해 개성이 가미된 스토리를 구성한다.

자기만의 체험은 독창적 스토리의 얼개이자 스토리의 생명력이다. 그래서 글과 스토리는 논리와 지식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다. 직접 체험하지 않은 스토리는 진실성과 감동과 설득력이 떨어진다.

메모는 생각이 서서히 익어가면서 반복적인 글쓰기 욕구를 자극하고, 이런 과정에서 생각과 글이 정리정돈 되면서 문장의 숲을 일군다. 글쓰기는 모방에서 시작된다. 모방은 표절과 다른 개념이다. 신이 아닌 이상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다.

셰익스피어는 “연기는 모방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하는가에 있다”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가는 행동하는 인간을 모방한다”고 했다. 로댕은 “예술가는 다만 자연을 모방할 뿐”이고, 발자크는 “예술의 사명은 자연을 표방하는 것”이라고 했다. 노자는 “인간의 자유는 자연의 도”라고 역설했다. 자연에서 깨달음의 지혜를 체득한 선각자들의 체험 스토리를 되새김질하면서 글의 문맥과 사회적 맥락을 재해석해 나만의 메시지로 되살리는 그 첫걸음은 메모이다.

많은 예술가들은 선각자의 말씀과 작품을 재창조했다. 만들어진 작품을 다른 사상과 다른 시각으로 다듬어 자기세계를 창조한 것이다. 이를테면 모든 가치 중에서 미를 최고로 삼는 유미주의(탐미주의, Aestheticism)는 낭만파 시인 쉘링-보들레르-로세티-와일드에 이르며 발전했고, 이 사상과 반대로 자연주의를 표방하는 그룹은 에밀 졸라-플로베르-발자크로 이어졌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염상섭이 처음으로 이를 모방했다. 시인은 그 정신을 요리저리 비틀고 가락을 넣어 자기만의 시세계를 구축했다.

영국 낭만파 시인 와일드는 “진정한 예술은 모방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  세계로의 진입은 몰입의 과정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몰입이 최고조에 달할 때 그것을 행복이라고 불렀다. 행복한 글쓰기는 산을 오르며 땀을 쭉 뺀 뒤 느끼는 카타르시스만큼 타자에게도 그 만큼의 감동을 선물한다.

쇼펜하우어는 ‘문장론’에서 “우리는 영혼에 새겨진 사상이 절대 떠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실한 마음을 보여주고 결혼이라는 끈으로 하나가 되지 못하면 결국 소멸하는 것처럼, 위대한 사상도 종이에 써두지 않으면 언젠가 사라지고 만다”고 말했다.

오정희 소설가는 눈에 보이는 모든 곳에 메모지를 붙여두고 문장을 되뇌는 ‘문장 중독증’ 작가이다. 심지어 친정아버지가 돌아갔을 때 시신을 붙들고 울면서 메모를 했을 정도이다. 그럴 때 은희경 작가 말처럼 “어느 순간 원하는 문장이 나오면 밥맛도 모르고 마음이 몸에서 이탈하는 듯 황홀감을 느낀다.”

오래 삭히어 빚어내는 문장과 깊은 울림은 이런 메모에서 시작된다.

박상건 동국대 겸임교수 pass386@hanmail.net
 

 [1328호 / 2016년 1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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