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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곳

기자명 이미령

싫은 것 피하려면 그 속에 자신을 던지세요

▲ 일러스트=강병호

스님, 안녕하세요.

어느 사이 겨울 속으로 깊숙하게 들어왔습니다. 예년만큼 춥지는 않다고 하지만, 기온이 조금만 내려가면 시베리아 벌판으로라도 내몰린 것처럼 괜히 더 춥게 느껴집니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하지요.

추위·더위에 뚜렷히 나뉘는
호불호의 오랜 습성 때문에
여름부터  다가올 겨울 걱정

멀리 있는 행복 부러워하듯
매사 아쉬움과 실망의 연속

겨울 추위 당연히 여기는 자세
추위 이기는 진짜 비법일 것

추위를 좋아하신다는 말씀에 깜짝 놀랐습니다. 겨울을 즐기는 사람을 보면 정말 부럽습니다. 사실 제게 추위는 쥐약(?)이거든요. 전 추우면 꼼짝 못하는 사람이랍니다. 그 대신 뜨거운 한여름을 무척 좋아하지요. 그래서 큼직한 일을 마치는 계절은 대체로 한여름일 때가 많습니다. 대학 졸업 직후에는 번역을 무척 많이 했는데, 사전을 뒤적이며 원고지를 한 칸 한 칸 채우고 있노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름이 끝나갈 즈음 200자 원고지로 1000페이지가 훌쩍 넘는 번역을 마쳤을 때 찾아오는 탈고의 노곤함은 탈진의 나른함과 맞물려서 말할 수 없는 허허로운 행복을 안겨주었지요. 무더위 속에 저를 무장해제 시킨 후에 일감을 앞에 두고 앉으면 주르륵 흘러내리는 땀이 차라리 시원하고, 그 시원스런 느낌이 쾌감을 불러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보니 여름이 끝날 무렵이면 더위를 먹어서 기진맥진하는 때도 한 두 번이 아니었지요. 그래도 그 뜨거운 태양 열기를 만나고, 그 열기가 저 스스로 지쳐서 차츰 사위어가는 게 그리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하지만 겨울이면 무조건 이불 속으로!

그 추위 속에 나를 내놓는다는 것 자체가 엄두가 나지 않았지요. 그래서 어렸을 때는 겨울방학이 되면 아예 두툼한 솜이불 속에서 나오지 않았어요. 얼마나 움직이지 않았던지 겨울방학이 지나면 몸무게가 4~5킬로그램이나 불었던 적도 있었답니다. 어른이 된 지금은 일을 해야 하니까 아무리 추워도 집을 나서야 할 때가 많지요. 꽁꽁 싸매고 집을 나서면서 ‘내가 참 달라졌구나’ 하는 생각에 스스로가 기특해서 쓰다듬어주고 싶습니다. 요즘 아이들 말로 ‘궁디팡팡’이라도 해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추위를 좋아하시는 스님께선 이런 저를 이해하실 수 있을까요?

호불호가 아주 또렷하게 나뉘었던 저로서는 ‘여름이 좋다, 겨울이 싫다’라는 생각을 아예 1년 365일 가슴에 품고 지내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뜨거운 한여름이 찾아와도 ‘아, 난 여름이 좋은데…. 지금 이렇게 좋은데, 앞으로 찾아올 겨울을 어떻게 보내지?’하는 생각에 미리 걱정했고, 매서운 동장군 앞에서는 ‘이것 좀 보라니까. 난 겨울이 정말 싫어. 겨울이 없으면 안 되나’라며 짜증을 냈지요.

이런 생각은 계절에만 적용됐던 건 아니었지요. 매사가 나를 괴롭히려고 드는 것만 같았고, 행복은 아주 멀리 있어서 도저히 내 손끝이 닿을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가 간발의 차이로 나를 태우지 않고 떠나버려서 서운해 한 적도 많았습니다. 기다리는 버스는 오지 않고 다른 번호의 버스들만 자꾸 정류장으로 다가오면 그것도 짜증이 났지요.

‘에휴, 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내가 전생에 무슨 복을 지어서 원하는 걸 그리 척척 다 손에 넣을 수 있겠어. 지지리 복도 없어라.’

지금 생각해보면 어이없을 정도지만 이런 생각은 아주 오래 저를 지배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좀 일찍 정류장에 나왔을 때의 일입니다. 역시 간발의 차이로 버스가 저를 정류장에 버려두고 떠나갔지요. 그런데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너무 빨리 왔구나. 다음 버스를 타야 할 텐데 좀 일찍 나온 바람에 앞의 버스 꽁무니를 보게 된 거야.’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그렇게나 편해질 수가 없었습니다. 행운을 놓친 것이 아니라 앞선 사람들이 챙긴 행운을 살짝 맛봤다는 사실에 즐거워지기까지 했지요.

기다리는 버스는 오지 않고 다른 버스들만 자꾸 오면 ‘이 버스들이 지나가야 내가 탈 버스가 올 테니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번호의 버스가 오는 것이 오히려 반가워질 정도였습니다. 정류장의 다른 승객들이 차례로 타고 떠나가야 내가 탈 버스가 올 테니까요.

여름과 겨울에 민감하게 굴던 버릇도 사라졌지요. 거기에는 동산양개 스님의 말씀이 아주 큰 힘을 발휘했답니다. ‘벽암록’에 실려 있던가요?

“스님, 추위와 더위는 어떻게 피해야 합니까?”

이렇게 묻는 어떤 스님에게 동산 스님께서 대답하셨지요.

“추위·더위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요.”

하지만 인생살이에서 추위와 더위 없는 곳이 어디 있을까요? 그래서 그 스님이 다시 따져 물었다지 않습니까?

“아니, 이 세상에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이 대체 어디 있나요?”

이때 동산 스님께서 하신 말씀이 그야말로 무릎을 치게 만듭니다.

“추울 때는 추위가 그대를 죽이게 하고, 더울 때는 더위가 그대를 죽이게 하라.”

이 말은 추울 때는 추위와 하나가 되고, 더울 때는 더위와 하나가 되라는 뜻이라고 하지요. 차라리 그 속으로 풍덩 들어가 버리면 ‘춥다, 덥다’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저는 참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온 세상이 온통 추운데 자꾸만 ‘난 추위가 싫다’라고 되뇌면 그 자체가 오히려 나를 더 춥게 만든다는 이 빤한 사실을 얼마나 늦게야 깨달았는지요.

“지금은 겨울이야. 겨울은 추운 때야. 그러니 지금은 추운 게 맞아.”

이 당연한 생각을 자연스레 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입니다.

에펠탑에 관련해서도 비슷한 일화가 있지요. 1889년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이 철골 건축물에 대해 많은 예술가들은 혹평을 퍼부었습니다. 특히 소설가 모파상도 걸핏하면 에펠탑을 저주했다는데요, 그런데 모파상은 에펠탑 안에 있는 식당에서 자주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물었지요.

“그토록 흉측하다고 비난하면서 이 에펠탑에 왜 그리 자주 오시나요?”

그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파리에서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유일한 곳이 바로 여기이기 때문이오.”

가르지 말고 그 속에 풍덩 나를 던져 넣기, 이것이 가장 멋지게 한 생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는지요. 모파상과 동산 스님은 정말 현명한 분이셨구나 새삼 깨닫습니다. 추위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추위에 벌벌 떠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모질게 춥지 않은 올겨울이 오히려 걱정스럽습니다. 역시 사람마음이 참 변덕스럽네요. 스님, 이만 마칩니다. 늘 평안하시기를. 북칼럼니스트 이미령 드림.

이미령 북칼럼니스트 cittalmr@naver.com


[1329호 / 2016년 1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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