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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꽃반지

자녀 돌보지 않는 무책임은 육식보다 비리다

오후 6시경 전화벨이 울려 받아보니 정혜사 주지스님이시다. 보내드린 연하장을 잘 받으셨다며 안부를 물으신다. 평소 존경하던 분이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스님이 돌보고 있는 여자아이 생각이 났다. “스님! 신미는 많이 컸지요?” “고등학교 2학년 됐어요. 그래선지 꽤 바쁘네요.” 스님을 몇 년간 찾아뵙지 못한 사이에 신미가 고등학생이 되었다니 아이들의 빠른 성장이 놀랍다. 처음 신미를 본 것은 아마 4살경인 것 같다. 손가락마다 예쁜 플라스틱 꽃반지 낀 손을 내 앞에 자랑스럽게 내밀며 행복한 미소를 짓던 아이, 이를 지켜보시던 스님. ‘요즘 이런 반지가 애들한테 유행한다면서요?’라며 맑은 표정으로 설명하던 스님이 떠오른다. 신미가 초등학생일 때는 피아노를 배운다며 스님이 만들어준 피아노건반 위에서 손 연습을 했다. 스님은 아이를 지켜보시며 자상한 엄마처럼 손을 교정해 주었다. 이렇듯 온갖 정성을 다해 아이를 돌보았는데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시겠단다.

16kg 소녀, 감금·폭행서 탈출
게임중독 아빠에게는 사랑 없어
정혜사 스님들 보살행 배워야

정혜사는 비구니스님들 수행도량으로 오래전부터 부모가 없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가정에서 키울 수 없는 여자아이들을 돌봐왔다. 1980년대 무렵까지는 10여명의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정도로 많았으며,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그리고 능력에 따라서는 대학교육도 감당하였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자기의지에 따라 선택한 삶을 살도록 자유를 주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우리나라 아동복지를 선구적으로 실천한 사찰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혈육이 아닌 타인을 자비와 연민으로 베푼 스님들의 훈훈한 인간애와는 비교되는 사건이 지난해 12월을 뜨겁게 달구었다. 인천에 사는 11살 소녀 이야기다. 아빠에게 감금과 폭행을 당하던 소녀가 16kg의 깡마른 몸으로 집에서 탈출한 일이 세상에 알려진 사건이다. 아빠는 32살로 21살에 이 아이를 낳은 것이다. 현재 부인과 이혼상태라니 아마 아빠가 될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아이부터 낳았던 것 같다. 게다가 온라인게임 중독이라니 아이에 대한 사랑이 있을 리 없다. 원하지 않은 자식이거나 부모의 성품이 바르지 못하다면 태어난 아이는 이미 사랑의 결핍을 안고 생을 출발하니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이 사례를 통해 우리는 인간의 무책임한 행동, 성윤리나 도덕의식 결함이 다른 인격체를 어떻게 학대하고 괴롭히는지를 다시금 실감하는 것 같다.

‘숫타니파타’에 “살아있는 것을 마음대로 지배하고 배반하고 부당한 행동을 하고 항상 나쁜 짓을 하는 자는 죽어서는 암흑에 빠지며 머리를 거꾸로 처박고 지옥에 떨어진다. 이런 사람들이 비린 것이지 고기를 먹는 것이 비린 것은 아니다”라는 부처님 말씀이 있다.

여기서 비린 것으로 은유하여 표현된 말의 의미는 외적인 물질이 아닌 생명을 함부로 대하고 학대하는 인간성과 그 행동이다. 한 아이의 인권을 마음대로 지배하고 유린하며 공포로 몰아넣는 등 부당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부모는 비린사람, 즉 사람들이 피할 정도로 역겹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들이 갈 곳은 지옥이다. 법의 심판을 받고 가야할 감옥은 바로 살아생전의 지옥이 아니겠는가? 아빠 역할을 왜 이런 악행으로 하게 되었는지 실로 안타까울 뿐이다. 정상적인 부모라면 내 자식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사랑이 샘솟게 되어있다. 그것은 본능이다. 그래야만 어린 생명이 부모의 품안에서 안전하게 생존할 수 있으며 광의적으로는 인간의 후대가 지속된다. 그런 점에서 스님들의 무주상 보살행은 더욱 거룩하고 빛나 보인다. 세상이 혼탁하다지만 사회를 밝히는 이런 밝은 분들로 인해 그나마 사회가 잘 유지되는 것 같다.

황옥자 동국대 명예교수 hoj@dongguk.ac.kr
 


[1329호 / 2016년 1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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