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송광사 16국사 진영
4. 송광사 16국사 진영
  • 김규보 기자
  • 승인 2016.02.01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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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구멍으로 새어나간 보물 13점

▲ 도난당한 제3세 청진국사 진영.

1995년 1월27일, 겨울밤 깊은 어둠이 자욱하게 내려앉은 순천 송광사. 암흑 속에 몸을 숨긴 한 무리의 사람들이 경내에 잠입했다. 그들은 주변을 경계하며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푸른 안광과 하얀 입김만이 가물가물하게 흔들리고 있을 뿐, 누구도 이들의 수상쩍은 움직임을 목격하지 못했다. 국보 56호 국사전 앞에 당도하자 나지막한 탄식이 새어나왔다. 이 순간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해왔던 터였다. 이윽고 그림자들이 하나둘씩 국사전 뒤쪽으로 숨어들었다. 송광사는 다시 짙은 적막에 잠겼다.

한겨울 야음 틈타 경내 잠입
국사전에서 진영 모두 훔쳐
대대적으로 수사 진행했지만
현재까지도 회수하지 못해


다음날 새벽 A스님은 여느 때처럼 사시예불을 드리기 위해 국사전의 문을 열었다. 법당 내부로 들어가 고개를 든 스님은 믿을 수 없는 광경과 마주했다. 벽에 나란히 걸려 있던 보물 제1043호 16국사 진영이 사라진 것이다. 당시, 제1세 보조국사 진영과 제2세 진각국사 진영은 성보박물관에서 전시 중이었고 제14세 정혜국사 진영은 보존 차원에서 수장고에 있었다. 범인들은 국사전에 있던 13점 가운데 3점을 예리한 칼로 그림 부분만 오려내 가져갔다. 그리고는 시간이 촉박했던 듯 10점은 액자를 통째로 뜯어갔다. 한두 점도 아닌 13점을 몽땅 훔친 대담한 범인은 과연 누구였을까.

송광사 측의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항만과 공항에 검색 강화를 요청하는 한편 문화재관리국과 합동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국사전 내부에서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245㎜가량의 족적 4개를 채취할 수 있었다. 국사전 뒤쪽 흙벽에서도 지름 1m 정도 되는 통로를 확인했다. 석축 기와더미에서는 길이 90㎝의 걸개봉 23개와 면장갑 1켤레, 면도칼, 담뱃갑, 담배꽁초를 발견했다. 하지만 담배꽁초에서 지문을 채취하는 데 실패하고, 나머지 유류품에서도 이렇다 할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수사는 답보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더욱이 문화재 전문털이범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가 송광사 관계자들로 대상을 바꾸는 등 혼선을 빚으면서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범인들에 3500만원의 현상금을 내걸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한편 조계종은 사건 발생 직후 ‘송광사 성보도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자체적으로 현상금 포스터를 제작하면서 사건 해결을 위한 발 빠른 행보를 보였다. 또 종단 내에 ‘성보도난신고센터’ 설치를 결의했으며 성보 도난 방지대책 수립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예방책 마련에도 부심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체계적인 불교문화재 보존·관리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한 정부 역시 성보박물관 건립 예산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불교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불교문화재 도난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져갔다.

그러나 정작 도난당한 송광사 16국사 진영은 아직까지 되찾지 못했다. 정부는 지난 2010년 송광사와 함께 국제형사경찰기구인 인터폴에 이 사건을 등록하기도 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후 2013년 동산문화재 보존처리 사업의 일환으로 훼손상태가 심각했던 남은 3점에 대한 복원작업이 실시됐다. 더불어 잃어버린 13점에 대한 모사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송광사의 어둠을 가르며 유유히 보물을 들고 달아난 범인들은 지금 어디를 활보하고 있을까. 16국사 진영 13점은 영원히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혹, 어느 수집가의 집에 걸린 채 발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330호 / 2016년 2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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