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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경쟁의 시대, 기다림의 의미를 묻다

  • 불서
  • 입력 2016.02.01 18:06
  • 댓글 0

‘기다린다는 것’ / 와시다 기요카즈 지음·김경원 옮김 / 불광출판사

▲ '기다린다는 것'
바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세상은 무한경쟁 시대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속도를 내야한다. 회사도 진득하게 기다려주지 않는다. 당장 성과를 내지 않으면 가차 없이 폐기처분된다. 남보다 앞서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 그런데 무언가 잃어버린 느낌이다. 발효음식의 깊은 맛 대신 간편하고 자극적인 즉석음식이 빠르게 우리 입맛을 점령하듯 깊은 숙성의 시간을 가지지 못한 우리의 삶 또한 급하고 자극적이긴 마찬가지다.

숙성은 기다림이다.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는 것, 어쩔 수 없는 것,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는 것, 이런 기다림에 대한 감수성을 어느 순간 잃어버렸다. 기다리지 않는 사회, 기다릴 수 없는 사회에서 우리의 삶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기다린다는 것’은 이렇듯 희미해져 가는 기다림의 의미를 철학적인 관점에서 고찰한 책이다. 기다림은 어딘가 애틋한 측면이 있다. 그리움이라는 정서와 이어질 때 그렇다. 모든 기다림에는 어느 정도의 기대나 바람이 내포돼 있다. 기다리는 사람은 그 기대와 바람만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견뎌낸다. 상상만으로도 세상은 장밋빛으로 물든다.

연인에게 쓰는 편지는 떨리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편지를 쓰고 우체통을 거쳐 연인에게 전달되기까지의 과정은 초조하고 불안하지만 행복의 나래가 펼쳐지는 시간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시간과의 감촉을 잃어버렸다. 쉽게 묻고 대답하면서 기다림 없는 즉흥적인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된다. 그러나 기다림에 애틋한 면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냉혹한 승부에도 기다림은 필요하다. 승부의 세계에서 기다림은 초초함으로 연결된다. 상대를 예기치 않은 기다림에 밀어 넣어 스스로 무너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를 기다리게 만드는 것 또한 힘겨운 기다림이다. 기다리게 하는 것과 기다림을 당하는 것은 누가 더 기다림에 익숙하냐에 대한 겨룸이다. 저자는 일본 최고의 무사 미야모토 무사시와 20세기 일본 대표작가 다자이 오사무의 일화, 요양원에서 치매 노인을 보살피는 과정 등을 통해 기다림의 철학적 의미와 삶에서의 모습을 두루 살폈다.

현대사회는 변화와 속도가 생명이다. 그러나 황금거위에게서 황금을 얻기 위해서는 거위 배를 가르는 대신 진득하게 기다려야 한다. 세상에는 떡잎 때부터 될성부른 나무도 있지만, 대기만성인 경우도 많다. 기다림은 속도 경쟁에 지친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일깨우는 오래된 미래일지도 모른다. 1만3000원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330호 / 2016년 2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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