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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푸티상사의 지상법문] 32. 보살 인생으로 가는 길(2)

기자명 법보신문
  • 법공양
  • 입력 2016.03.22 11:30
  • 수정 2016.03.22 11:32
  • 댓글 1

진정 살아있다는 것, 정점 없는 대자대비 마음에 가득 품을 때

 
우리가 깨달음을 얻으면 우리 몸의 질병도 완전히 좋아질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도교 수행으로 신이 된 철괴 리는 신선이 되어도 지팡이를 짚고 있습니다. 저도 불가사의합니다. 가끔은 영원한 업이라는 것이 있어서 태어날 때부터 지팡이를 짚어야 하는 절름발이라면 어쩔 도리가 없겠지요. 그런 것은 고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절름발이의 몸으로도 금강불괴의 몸을 닦을 수 있으니 이것 또한 좋은 일입니다. 금강불괴의 몸이 될 수 있다면 쌍지팡이를 짚어도 좋습니다만 그런 경우는 드뭅니다. 일부는 바뀌지 않지만 그래도 바꿀 수 있는 것이 더 많습니다. 그러니 환경이 아무리 어려워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해야 하고 자신의 이상에 따라 살며 환경이나 빈부귀천에 따라 사람의 본질이 바뀌지 않아야 합니다.

깨달음 얻어도 질병 낫진 않아
절름발이 몸으로 태어났더라도
금강불괴 몸 닦을 수 있어 희망

행위 자체보다 목적 가장 중요
좌선하며 악한 생각 품는다면
수행으로 얻는 힘도 악한 기운

많은 돈 가져도 막다른 길 선택
끝없는 보살행에 막다른 길 없어

병을 치료할 때 독약을 포함하여 약으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독약이 아니라면 더욱 그러하겠죠. 불법과 자비 그것은 저의 생명입니다. 제가 사용하는 방법에는 별의별 것이 다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행자가 운전도 하나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기회가 있다면 비행기도 운전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재가인은 무슨 차든 운전하고 수행자는 걷기만 해야 하나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으로 무엇을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부처님께서 하신 이야기 중에 노인이 큰 우마차 이야기로 불난 집에서 아이들을 구하는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그것은 망언이 아니라 지혜입니다. 만약 솔직히 밖에 아무것도 없으니 빨리 나오라고만 했다면 아이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철없는 아이들이 화마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작은 거짓말로 아이들이 나왔습니다. 작은 거짓말로 큰일을 성취하였으니 얼마나 가치 있는 일입니까! 써야 하는 방법입니다. 물론 제가 꼭 거짓말을 가르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의 모든 일은 약으로 쓸 수도 있고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우리의 목적이 그 물건을 사용하여 목숨을 구하는 것이라면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약 중에 어떤 약은 그 자체가 극약입니다. 비상이 바로 극약입니다. 중국 이야기에서 나오는 무송의 형이 바로 비상에 독살되었습니다. 일곱 구멍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극약입니다. 그러나 요즘 암을 치료하는 약에는 이러한 약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으로 독을 치료하는 방법인데 서양 의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단독으로 사용할 수 없는 종류의 약도 혼합한 후에는 사람을 치료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어떤 방법이 불법일까요? 구체적인 방법은 없습니다. 좌선을 해도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복수, 살생, 저주, 멸망이라면 수행으로 얻는 힘도 악한 것이 되니 좋지 않은 일입니다. 당시 티베트의 밀라레빠 대사가 처음 배운 법이 바로 그런 법이었습니다. 좌선하면서 수행하면 다 좋은 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의 이야기처럼 많이 배우지 못한 부모가 아이의 책 읽는 모습을 보고 대견하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에로소설이었습니다. 책이라고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행위 자체에는 좋고 나쁨의 구별이 없습니다. 어떤 목적을 부여했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처세와 우리의 행위가 마음속의 지고 무상한 이치에 부합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고 무상한 이치가 겉으로 찬란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후세에 사람들이 우리가 지금 하는 이야기를 논할 때 찬란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실제로 보이는 행위는 바닥에서 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무술 실력이 아무리 강해도 낮게 깔린 전기 철조망을 만나면 기어서 지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기지 않으면 아무리 강한 무술이 있다 해도 전기에 맞서면 감전사 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만 몸을 일으켜도 적의 사격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어야 할 때는 기어야 합니다. 긴다고 부끄러운 것은 아니고 진 것도 아닙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넘어졌다고 해서 진 것은 아닙니다.

오늘 화를 내고 낭패한 모습을 보여주면 진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진정한 불제자는 관세음보살처럼 중생의 수요에 따라 바뀌어야 합니다. 중생의 수요에 따라 화장실 청소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온몸에서 악취가 나고 더러우며 파리 떼가 맴도는 더럽고 추한 노인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자신이 비천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외모가 낭패하고 더럽고 탁하고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수행자는 체면의 개념이 없습니다. 우스개처럼 말하자면 체면이고 뭐고 없습니다. 체면을 따지는 사람은 바른 일, 좋은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정말 진 사람은 마음이 이미 실패를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실직하고 일자리를 찾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은 아둔한 사람입니다. 저라면 ‘실직했으니 잘됐네. 더 좋은 일자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라고 했을 것입니다. 저를 생명의 강자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이치입니다. 마음이 죽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신분이나 이미지든 될 수 있습니다. 체면을 따지지 마십시오. 체면을 따지는 것이 가장 해롭습니다. 체면에 관한 이상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어떤 여자애가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입시를 봤는데 성적이 좋지 않아 엄마 아빠는 장사해서 어렵게 모은 돈으로 아이를 캐나다로 유학 보냈습니다. 이 아이는 자랄 때 늘 외할머니 집에서 함께 지냈습니다. 그들의 곁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외할머니 곁에서 자랐습니다. 자라는 과정에 잠자리가 바뀐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외국으로 나가자 말도 통하지 않고 부모님도 곁에 없고 생활비는 비싸고 공부 스트레스는 심하고 영어도 잘 못 하고 친구도 없고 친구도 잘 사귈 줄 모르고 운동할 줄도 모르고 어떻게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캐나다에서 2년 동안 유학생활을 하다가 어떤 일이 생기자 꼭 엄마를 만나야겠다며 못 견뎌 했습니다. 항공권을 사는데 그때는 매일 비행기가 오고 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항공편은 1주일에 한 편 있었습니다. 5일 전에 항공권을 구매하고 비행기를 타는 그 전날 결국 참지 못하고 침대에 목을 매 자살했습니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 견딜 수 없다며 자살했습니다. 자신이 갈 길이 모두 끊겼다고 생각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돈도 다 떨어지고, 친구도 없고, 집에 모든 사정을 다 이야기할 수도 없고 심리적으로 억압되어 있는 등 그 아이는 되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유학생활을 하는 모든 아이들과 이민한 사람들 또한 그렇습니다. 이겨내면 승리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나 그녀는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똑같은 일도 대하는 사람이 다르면 결과도 다릅니다. 수많은 젊은 아가씨가 이불 하나, 갈아입을 옷 몇 가지 들어 있는 가방 하나를 들고 나와 결국은 부자가 되었습니다.   

흔들림 없는 마음이 있을까요?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죽음은 생각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실패는 나와 아무런 인연이 없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강자이다.’ 그렇게 생각할수록 자신의 지혜로움을 자극할 수 있고 창의력 있는 생각을 할 수 있고 창의력이 있는 의지가 자연히 분출될 것입니다. 특히 부처님을 믿는다면 어디에 가든 부처님이 지켜주고 보호해준다고 믿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사람이 가지 못할 길은 없습니다. 자신의 마음이 갈 길을 잃은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당연히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여자아이가 유학 갔다가 겪은 일도 사람들은 이해합니다. 아마 모든 희망을 잃어서 죽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 이해하고 불쌍하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타이완의 큰 부자도 자살했습니다. 자살한 다음 자산을 통계해보았더니 본인 명의의 재산이 1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고 술을 마시고 즐기며 놀면 되는데 왜 죽었을까요? 그는 유언에 무엇이라고 적었을까요? ‘인생은 참 재미없다. 살 수 있는 건 다 있고 너무 짜증나고 의미가 없다.’ 그는 자신의 생명의 영광, 생명의 진정한 의미가 이미 다 지나갔다고 했습니다. 빈곤만이 사람을 막다른 길로 내몰까요? 그토록 부유해도 막다른 길을 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좋은 것’일까요? 마음속에 희망이 가득한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추구해도 얻을 수 없고 영원히 절대적으로 얻을 수는 없는 개념, 그것이 바로 대자대비입니다. 그것에는 정점이 없습니다. 대자대비에는 정점이 없습니다. 이 정도가 되면 대자대비일까요? 정점은 없습니다. 스스로 대자대비하다고 생각할 때 자신에게 질문해보십시오. ‘내가 대자대비하다면 내가 무언가를 해냈을까?’ 생각해보면 아직 해야 할 일이 더 많습니다. 해야 합니다. 앞에서 생긴 재난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들의 고통을 보면 자신이 한 일이 너무 적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천재(天災)가 발생하지 않은 곳에는 인화(人禍)가 넘쳐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고 그곳에 가서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다 도울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을 도와주었는데 몇 년이 지나면 도움을 받은 사람은 죽고 떠날 사람은 떠나, 다시 가난한 사람, 아둔한 사람, 고통을 겪는 사람, 아픈 사람이 나타나 다시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얼마 돕지 못하고 우리도 떠나게 되겠지요. 그래서 영원히 이상을 실현하고 있지만 끝은 없기 때문에 막다른 길에 들어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사업을 하고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은 도울수록 바쁘고 일은 끝이 없습니다. 제가 지금 그런 느낌입니다. 제가 한 달 동안 폐관 수행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이생에서 가장 큰 사치가 될 것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번역-정금주) 제공:보리선수 약사선원(T.1661-0803)

[1336호 / 2016년 3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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