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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식사 전 공양게 하기

내 안 불성과 뭇 생명체에 올리는 거룩한 의식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道業)을 이루고자 공양을 받습니다.”(공양게)

공양게는 오관게서 유래
깨달음 이루겠다는 다짐
음식에 대한 감사 담겨
공양게 하면 과식 않고
건강 유지에도 큰 도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이수영(47)씨는 식사 때면 꼭 합장을 하고 공양게를 왼다. 가정에서는 물론이고 일가친척들이 모일 때나 직장동료들과 밥을 먹을 때도 공양게를 잊지 않는다. 요즈음은 부득이 참여한 술좌석에서도 공양게를 빠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공양게를 하는 행위에는 자신의 신념이 반영돼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씨가 공양게를 시작한 것은 10여년 전이다. 불교에 심취해 경전을 읽고 교리를 배울 무렵이었다. 문득 자신의 불교공부가 이해의 차원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실천이 함께 해야 삶도 바뀌지 않을까 싶었다. 그때부터 술과 육식을 줄이고, 불자들을 만나면 합장으로 인사하려 애썼다. 어느 자리에서건 식사 전에는 공양게를 빠뜨리지 않으려 다짐했던 것도 이때부터다. 짧은 문구지만 세상의 이치와 삶의 목적이 뚜렷이 드러나 있는 점도 좋았다.

처음엔 머쓱하고 유난 떠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적지 않았다. 누군가로부터 교회에 나가냐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절에 다닌다고 해서 식사 전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일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이씨는 “공양게를 읊는데 걸리는 시간은 5~6초에 불과하지만 그 시간은 음식을 대하는 마음을 새롭게 만든다”며 “반찬투정하지 않고 과식하지 않은 덕에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공양게는 스님과 재가불자들이 식사 전에 읊는 게송이다. ‘소심경’에 포함된 ‘오관게(五觀偈)’의 핵심 내용을 현대적으로 풀어썼다. 이 짧은 공양게에는 어떤 음식이라도 대자연의 은혜와 수많은 이들의 노고가 스며있다는 연기적인 세계관이 담겨 있다. 우리가 음식을 먹는 목적이 탐냄, 성냄, 어리석음을 끊고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는 데 있음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음식은 우리 몸을 지탱해주는 필수 요소다. 부처님도 음식을 극도로 줄여 ‘뱃가죽을 만지면 등뼈에 닿고 등뼈를 만지면 뱃가죽에 닿았다’고 고백했을 정도로 혹독하게 고행했다. 그러나 최상의 깨달음은 수자타가 올리는 유미죽을 드시고서야 이룰 수 있었다. 그래서 부처님은 ‘증일아함경’에서 ‘모든 법은 먹는 것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음식이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갈파했다. 음식을 탐닉해서도 안 되지만 음식을 부정해서도 진리를 깨치는 일이 불가능함을 분명히 한 것이다.

불교의 음식문화는 수행과 깊이 관련된다. 공양게에서 음식을 ‘육신을 지탱하는 약’이라고 표현했듯 해탈의 길을 추구하는 이에게 음식은 곧 약이다. 출가자의 계율을 기록한 고대문헌인 ‘마하승기율’에는 스님들이 오전 중에 먹는 음식을 ‘시약(時藥)’, 오후부터 밤까지 마시는 과일즙의 종류를 ‘시분약(時分藥)’이라 부르고 있다.

또한 음식을 먹는 것은 부처님에게 정성껏 시주를 올리는 일로 간주한다. 부처님은 ‘불설십이두타경’에서 “(수행자가) 음식을 먹고자 할 때는 ‘몸속에 8만의 호충(戶蟲)이 있는데 이 호충이 음식을 먹어서 모두 다 편안하게 살아간다. 내가 지금은 음식으로 이 모든 호충에게 보시하지만 깨달음을 얻어서는 올바른 법으로 보시하리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교에서 8만이 대단히 많은 숫자를 상징하고, 호충이 박테리아와 같은 단세포 생물을 지칭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식사 행위가 곧 내 안의 불성에 올리는 청정한 시주인 동시에 내 몸 안의 수많은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도록 보시하는 일이다. 식사를 부처님에게 공물을 올린다는 의미를 지닌 ‘공양(供養)’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명석 조계종포교원 선임연구원은 “우리 불자들이 절 안에서는 공양게를 하면서 절 밖에서 하지 않는 것은 불교가 일상과 괴리됐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공양게라는 단순한 행위에는 온갖 존재에 대한 감사와 불자로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가겠다는 다짐이 담겼다”고 강조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338호 / 2016년 4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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