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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대독하는 포교원장

“제 축사가 아닙니다.”

조계종 포교원장스님의 겸연쩍은 말이다. 부처님오신날 앞두고 열린 어느 행사였다. 사회자가 총무원장스님 축사 순서를 알렸고 단상에 오른 포교원장스님은 혹시 오해할까 싶어 꺼낸 말 같았다. 총무원장스님이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해 생긴 해프닝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총무원장스님이 참석하지 못한 행사에서는 포교원장스님이 종종 축사나 치사를 대독한다. 대부분의 경우 총무원 부장스님이나 기획실장스님이 대신하기도 한다. 총무원장스님은 1명이고 여러 업무상 모든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포교원장스님을 모셔놓고도 총무원장스님을 찾는 교계 단체가 적지 않다. 재가자가 주축인 단체에서도 승가나 종단 행사들 전례를 밟아야 하는 지 의문이다. 

불교계 어디든 총무원장스님을 내빈으로 모시고 축사를 듣고 싶어 한다. 실제 총림 방장스님 고불식이나 주지스님 취임법회 등 불교계 큰 행사에서 총무원장스님 축사는 빠질 수 없는 순서다.

그러나 재가 신행단체는 포교원과 긴밀한 협조체계 안에서 전법하고 수행하는 공동체다. 애써 총무원장스님을 초청하고 축사를 받았더라도 참석하지 못해 포교원장스님이 자리했다면 대독보다는 즉석에서 간단한 축하나 격려말씀을 청하는 게 도리다. 쓰지도 않은 글을 읽어 내려가는 포교원장스님은 총무원장스님이 아니다. 특히 행사에 참여한 대중들은 굳은 얼굴로 원고만 바라보며 읽는 축사보다는 눈을 맞추며 축하의 말씀을 전하는 모습에서 진정성을 느낀다. 부득불 불참한 총무원장스님의 축사는 총무부장이나 기획실장스님이 대신 낭독하고, 만약 동참하지 못했다면 사회자가 사정을 알린 뒤 요점만 소개하면 될 일이다.

힘겹게 준비한 행사들을 헤살 놓고자 함이 아니다. 형식상이라도 원장급에 있는 스님이 대독해야 행사가 빛난다는 의식에 공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 최호승 기자
1994년 개혁성과는 컸다. 총무원으로 일원화됐던 행정체계를 총무원, 교육원, 포교원으로 분리해 종단 행정, 교육, 포교 분야에 획기적인 변화를 꾀했다. 총무원장에게 집중되는 권력을 막는 행정적 조치이기도 했다. 별원으로 승격된 포교원은 1995년 1월20일 개원식을 갖고 포교원장에게 인사권과 예산집행권 등을 부여하면서 독립성을 보장받았다. 비구스님과 비구니스님은 물론 우바새와 우바이 등 재가자도 적극 동참해 이룬 개혁이었다. 그럼에도 재가 신행단체에서조차 부지불식간에 총무원장스님만 바라보는 현상이 일어난다.

축사나 치사를 대독한다고 해서 크게 잘못된 부분은 없다. 종단개혁 20년이 지났다. 행정상 독립됐음에도 여전히 총무원장스님만 바라보는 불교계 시선이 씁쓸하다. ‘화엄경’ 일체유심조를 언급하지 않아도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 보여 지는 형식에서 변화가 없다면 마음이 문제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1342호 / 2016년 5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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