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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포교 16년월간 불광 남동화 편집장

기자명 김민경

“보현행자라서 행복해요”


그녀는 늘 기운이 넘친다. 아주 가끔, 남들이 알아챌 만큼 세월의 그늘과 피곤함이 묻어있는 낯빛을 하고 있을 때조차 씩씩함만은 잃지 않는다. 불교계에서 가장 많은 발행부수를 자랑하는 월간 잡지 「불광」과 불광출판부를 이끌고 있는 남동화 편집장의 밝은 웃음은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이다. 언제나 환한 웃음에 기운 가득 찬 목소리, 빠른 말투와 잰 발걸음으로 어디 부족한 곳은 없나, 어디 챙겨주어야 할 곳은 없는지 살피고 손을 내미는 그녀. 사람들은 그녀의 웃음에서 힘을 얻는다. 그녀는 왜 그토록 행복하고 기운 찬 것일까? 알아보니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 아침에 읽는 보현행원

남 편집장은 매일 아침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30분씩을, 언제 어디에서건 꼭 기도 한다. 얼마 전까지는 자세를 바로잡고 앉아서 명상에 들거나 화두를 챙겼으나 요즘에는 대전 연화사에서 펴낸 『보현행자의 서원』을 독송하고 있다.

이 작은 독송집은 근현대 불교사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대중교화 활동을 펼쳤던 광덕 스님이 보현보살이 설하신 10종 행원을 당신의 원으로 삼고 보현행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짐하면서 쓰신 글이다. 무량광 여래공덕을 바로 지금 여기, 우리의 일상 생활 에서 실현하겠다는 비원이 문장 마다, 단어 마다에 절절히 배여 있는 책이다.

남 편집장은 “명상과 참선이 참 나를 보게 한다면 내가 본래 지닌 불성을 중생을 위해 발휘하게 하는 데엔 『보현행자의 서원』이 큰 도움이 되어준다”고 말했다. 마음이 일으키는 분별심을 똑바로 보게 하고 결국에는 ‘나’를 변화시켜주는 활력소가 된다는 것. 그녀의 미소가 유독 빛나 보이고 행보에 힘이 넘쳤던 이유 중의 하나를 알았다.



# 그녀의 불심

남 편집장은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올해 3월에 돌아가신 어머니 - 주 대각심 보살님은 부처님의 도량을 손수 창건 할 정도로 신심이 깊으셨다. 과천 문천사 주지 보광 스님은 편집장의 둘째 언니. 제일 큰 오빠의 두 딸도 고모의 뒤를 이어 출가하여 열심히 수학 정진하고 있다. 이런 저런 영향 때문인지 어린 시절부터 ‘당연히’ 절에 발걸음을 두게 되었다. 집에서 가까웠던 원각회 법당에 다니다가 조계사 학생회(16기) 활동을 거쳐 81년 동국대 불교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불교계 잡지인 월간 「법회」에서 활동했다.

불광사와의 인연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85년 경 어느날, 가까이 지내던 한 법우가 “불광사에 청년회가 아직 없다고 하니 우리가 불광사에 다니며 만들어보자”고 제의해왔다. 별 이의 없이 ‘좋은 생각’이라고 말하고 시간을 내어 불광사에 갔다.

그녀로서는 첫 방문이었고 바로 그날 절 안 복도에서 광덕 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스님의 명성은 오래 전부터 전국 방방곡곡에 자자했지만 직접 친견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첫 번째 대면에서 스님은 남 편집장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 보시며 “나는 너를 믿는다”고 말씀하셨단다. 이게 무슨 말씀이신가 하면서도 청년회를 꾸려 나가는 일에만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월간 「불광」의 편집장 소임이 그녀에게 떨어졌다.

이후 그녀는 156권의 잡지와 비슷한 분량의 불교서적을 펴내는 문서포교의 최전선에서 13년이라는 긴 세월을 하루같이 보냈다.

결혼은 다소 늦게 선을 보고 하게되었다. 결혼을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는 ‘조계사에 다니는 분의 아들’이라서 란다. 몇번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편집장은 남편에게 한량없는 감사의 마음을 나타냈다. 그녀에게 있어 남편은 세상에 둘도 없는 ‘도우미’이다. 불교에 대하여 문외한이었던 남편은 지금, 수련회에도 참석하고 호흡법과 명상을 배우고 밤을 세워 절을 해야하는 지독한 수행도 거뜬히 소화하는 열렬 불자가 됐다.



# 광덕 스님

남 편집장은 문서포교 일꾼으로 16년 동안을 지내며 단 한번도 출판물과 잡지의 내용과 편집문제에 있어서 사건이나 사고를 일으키거나 겪지 않았다. 이것은 분명히 기록할 만한 일이다.

이를 두고 그녀는 “부처님의 힘이요, (광덕) 큰스님의 덕화로 여기고 있다. 특히 큰스님이 오래 전에 잡아둔 큰 길, 혹은 그림을 이제야 우리 같은 사람들이 조금씩 완성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절대로 내가 이룬 것이 아니라고 보며 스님을 따르던 수 만명의 보현행자들의 원이 이루어지는 과정이었기에 모든 것이 무난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기자는 광덕 스님을 단 한번도 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스님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남 편집장의 작용 때문이다.

그녀가 불광사 출판부의 일을 맡은 직후 스님이 쓰신 『보현행원품 강의』의 단행본 출판을 준비하게 되었을 때의 일. 원고를 인쇄하여 교정을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리더란다. 이미 10년도 넘게 절에 다녔으며 두어 달 가량을 절에서만 생활하기도 하는 등 어디 내어놓아도 빠지지 않을 수행이력을 지녔지만 단 한번도 갖지 못한 각별한 종교적 체험을 원고 교정을 보며 이루었다.

“그래 바로 이것이야, 그래 맞는 말씀이야”는 말이 원고를 교정보는 그녀의 입가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 일을 스님과의 특별한 인연을 느끼게 한 사건으로 마음속에 고이 담아놓고 있다.



# 그녀의 수행이야기

남동화 편집장이 도반들과 불교언론계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꾸준한 수행이력 때문이다. 화두를 드는 참선을 포함하여 며칠씩 계속되는 명상 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있는 시간, 없는 시간을 쪼개어 기어이 참가하는 열정은 말 그대로 ‘타의모범’감이다. 그곳이 어디건 특별한 수행처가 있다는 소식을 얻으면 가능한 주위의 인연 있는 이들과 함께 꼭 체험하는 기회를 갖는다.

그녀가 남보다 배는 바쁜 삶을 살아야하는 언론·출판일에, 아이를 키우며 며느리 - 아내 노릇까지 짬지게 하면서 이처럼 수행을 지나치지 않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실시되고 있는 모든 수행법을 체험하겠다’는 서원을 세워 놓았기 때문이다.

남 편집장은 “나는 불교의 핵심은 수행에 있다고 여긴다. 바로 그러한 핵심을 전달하는 위치에 있으면서 자기체험도 없이 불자들에게 그 세계를 전달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 아닌가”고 반문한다.(이 대목에서 기자는 정말 부끄러웠고 열두번쯤 참회했다)“이제는 공부길을 조금 알 것”같다는 그녀. ‘수박 맛을 모르고 수박을 권할 수 없지 않겠나’라는 생각에 시작했는데 이를 통해서 한가지 바람이 생겼다. ‘길’을 찾겠다는 사람들에게 그 길 - 행복의 길을 찾아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것. 문득 묻고 싶어졌다. ‘그 행복이 어디에 있는데요?’ 그녀의 대답. “당신이 서있는 바로 그 자리”.


김민경 기자 사진 황도 기자
mkkim@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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