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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와 미황사

기자명 법보신문
홀린 듯 찾아들어간 절에서 노루처럼 산행…

내 인연 속 어딘가에 금샘 있을 것






금샘을 찾지 못하였네

제주에서 배를 타고 완도에 왔다. 갈 곳도 없었고 오라는 데도 없었다. 한겨울인데도 눈이 보이지 않았다. 역시 남도(南道)였다. 파릇한 보리싹이 먹음직스러워 보여서 이상하게 여겼는데 그 지방에서는 보리싹을 뜯어 된장국을 끓여먹는다고 했다. 땅끝 해남의 미황사로 가는 보리밭 사잇길로 나는 홀린 듯 넋을 앗긴 듯 들어갔다.

동백이었던가, 차나무였던가. 잎새가 새파란 나무가 팔을 벌리고 나를 맞았다. 요사채에 공부를 하는 학생들 틈에 끼여들었다. 아침 여섯 시에 공양을 하고 대웅전의 차디찬 마루바닥에 머리를 대고 엎드려 있었다. 이따금 눈이라도 오면 노루가 내려온다고 했다. 노루처럼 절에 기대었다. 노루처럼 달마산으로 뛰어올라가 금샘을 찾았다. 인연이 닿는 자에게만 보인다는 금샘은 나와는 인연이 없는 모양이었다. 과학기술원에 들어갈 공부를 한다는 학생은 금샘이 사리 때에 바다의 수준(水準)이 올라가면 지하수가 밀려올라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그건 인연이 아닌가.

개울물이 흘러오는 동굴에 어느 노승이 면벽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달마의 참뜻을 깨우치려고 화식을 끊고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동굴에 혼자 머물고 있다는 것이었다. 달마가 그의 금샘인가. 노스님은 금샘을 찾았을까.

차맛을 알게 되었다. 물을 달이고 식히는 과정이 신기했다. 알맞게 식히지 않으면 떫다. 너무 식히면 맛이 제대로 우러나지 않는다. 물이 끓어오르는 소리를 들으면서 조급해진 마음이 물을 식히면서 따라 식었다. 매일 수십 잔의 차를 마셨다. 차만 마시다시피 했다. 만약 금샘의 물로 차를 달일 수 있다면, 완당(阮堂) 옹이 말한 ‘묘용시수류화개(妙用時水流花開)’에 미칠까 못 미칠까. 궁금했다.

산에서 내려오기 전에 눈이 몹시 왔다. 몇 년만에 처음으로 대설주의보가 내렸다. 보리싹이 눈 속에서 더욱 새파래졌다.

내 몸 어딘가에 금샘이 있을 것이다. 아니라면 내 인연 속 어딘가에 금샘이 있을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머물렀다 가는 삼라만상이 언젠가 수준을 높여 금샘을 드러나게 해줄 것이다.

그 금샘을 아직 찾지 못하였다. 그 금샘이 어디 있는 줄은 알게 되었다. 땅끝, 해남, 미황사.



소설가(1986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 "새가 되었네"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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